내가 엄마의 꿈 그 자체가 되었으니 더욱 이혼을 결심했다. 엄마를 위해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엄마가 꿈이었던 적이 없다. 꿈이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바뀌었던 초등학생 때도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연주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른들이 꿈을 물어볼 때는 나중에 하고 싶은 직업을 물어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업이 엄마라는 말은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딸도 직업이 아니라 역할인 것처럼 엄마도 아빠도 역할인데 왜 엄마는 직업이 없지? 내가 자랄 때는 회사원 엄마가 거의 없었다. 친구들 엄마 중에는 더러 선생님도 있었고 약국이나 미용실을 하는 집도 있긴 했다.
엄마, 엄마는 왜 직업이 없어? 내 친구 누구네 엄마는 일한대. 엄마는 처음부터 그냥 엄마였어?
왜냐니. 엄마는 너희를 키워야 하잖아.
맞다. 엄마는 할머니의 도움 없이 애 셋을 혼자서 키웠다. 아빠는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아빠는 돈을 벌었고 엄마는 우리를 돌봤다. 그래도 여전히 뭔가 이상했다.
근데 엄마도 공부 잘했잖아. 아빠랑 똑같은 대학교 나왔잖아.
엄마가 아빠보다 학점 더 높은 수업도 있었어.
엄마는 엄마 되기 전에 원래 꿈이 뭐였는데?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없었어?
엄마의 꿈은 언론사에서 일하는 거였다. 엄마는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괜찮은 잡지사에 취업을 했다. 하지만 엄마가 취업했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 난 할아버지는 그 길로 회사에 찾아가서 뒤집었다. 편집장을 만나서 당장 엄마를 관두게 하고 끌고 나왔다.
그 시절에 모든 딸들을 대학까지 다 보냈지만 공부시킨 이유가 시집 잘 보내기 위해서였던 외할아버지는 참 알쏭달쏭한 분이었다. 여자가 공부해서 어디다 쓰냐던 그 시절에 딸들을 공부시켜서 모두 명문대에 보낸 건 분명 굉장히 깨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공부가 고작 똑똑한 남편감을 얻기 위해서였다는 고루한 관습에 갇혀 있는 옛날분이셨다. 아마 할아버지의 시대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여자는 꿈도 꾸면 안 되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차례로 우리를 낳았다.
엄마는 나와 다르게 몹시 여성스러워서 지금도 뜨개질을 하고 집을 예쁘게 꾸미고 메주로 장도 직접 담근다. 자기 살림에 남의 손 타는 걸 끔찍이도 싫어해서 제발 도우미 좀 쓰라고 해도 매일 손수 걸레질을 한다. 그래놓고 매일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온몸에 파스를 붙인다. 엄마, 엄마도 아프다 타령할 시간에 운동 좀 하면 안 돼? 내 친구들 엄마들은 골프도 치고 여행도 다니는데. 왜 엄마만 사서 고생해?
나는 그런 엄마가 미웠고 아쉬웠다. 아빠는 사회에서 성공해서 인정받는데 엄마는 왜 그냥 엄마야? 엄마 공부 못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그래서 절대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나중에 혹시나 애를 낳아도 딱 한 명만 낳아야지. 애를 낳아도 나는 계속 일할 거니깐. 절대 내 일에 지장이 가지 않게끔 하나만 낳아야지. 친한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다. 결혼이 꿈이고 목표인 애들이랑은 말이 영 안 통해서 친해지기 힘들었다.
너는 일하는 걸 좋아해서 애 낳아도 한 달 만에 회사 복귀할 것 같아.
당연하지! 나 있고 애 있지, 애 있고 나 있냐? 애 낳아본 적도 없으면서 큰소리 떵떵 쳤다.
한편 시어머니는 엄마와 달리 결혼 전에 사회생활을 해보신 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대기업 공채 출신이셨다. 어머니, 어머니는 왜 그 회사에 들어가셨어요? 나는 외국에 나가고 싶었어. 그때 한창 회사에서 외국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직원들을 해외 파견 보내줬어. 여자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꿈을 꿨지. 그런데 막상 다녀보니 여자는 기숙사 문제도 그렇고 이래저래 현실적으로 나갈 수가 없더라. 사회 분위기가 그랬어. 그래서 해외는 못 나가고 계속 회사 다니다가 길동이 아버지 만나서 결혼하고 회사를 그만뒀지.
엄마도 시어머니도 꿈이 있었다. 엄마들은 나를 낳고 남편을 낳아서 많은 기쁨을 누렸지만 분명 소녀 시절 가졌던 그 꿈들은 이뤄보지 못한 채 마음 한편에 접어뒀을 것이다. 나는 확실히 엄마의 꿈을 뺏어서 대신 그 꿈을 먹고 자랐다. 엄마는 한 번도 나한테 자기의 꿈 타령을 하지 않았다. '너희 때문에'라는 자식 탓을 한 적도 없다. 정말 엄마 인생에는 우리가 전부였다. 그래서 안쓰러웠고 미안했고 가끔은 숨 막히게 부담스러웠다. 엄마의 인생과 바꿀 만큼 내가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서 더 착한 딸이 되고 싶었다. 내가 만약 엄마였다면 자식한테 결혼하지 말라고 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엄마는 항상 진심을 다해서 내게 제발 결혼을 하라고, 아빠처럼 좋은 남편 만나서 자식 낳고 평범하게 살라고 했다. 나중에 엄마가 늙어서 죽고 없는데 너 혼자 가족도 꾸리지 않아서 외로운 모습은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엄마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됐지만 나는 확실히 엄마랑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이기적이라서 내 꿈이 더 소중했다. 그래서 결혼을 항상 최우선 순위로 두지 않았다. 선택과 집중이라면 나는 나를 포기하고 억지로 상황에 맞춘 결혼을 하느니 차라리 결혼을 포기하고 나로서 살래. 나는 내 이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누구 엄마, 누구 와이프 사모님으로 불리고 싶지 않아. 그래서 결혼 생각이 없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랬던 내가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겠다고 엄마에게 보여줬을 때 엄마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그동안 엄마한테 정말 불효했나 싶을 정도로 엄마는 너무 기쁘고 행복해 보였다. 처음 만난 어색한 자리에서 남편에게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그저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존재 자체를 반겨줬다. 아빠는 팔짱 끼고 까칠하게 남편을 위아래로 훑으며 압박면접을 보듯 꼬치꼬치 캐물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와 분위기가 더 대조되어서 유난히 더 밝아보였다.
진료에 가서 선생님께 이런저런 근황을 전하다가 남편의 풀배터리 검사 소식을 말씀드렸다.
-연주 씨 처음 병원에 왔을 때만 해도 남편이 잘못 인정하고 무릎 꿇고 제정신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던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도 그래요? 요즘 마음은 어때요?
-아뇨, 이제는 정말로 아무런 기대 없어요. 안 변할 것 같고 솔직히 안 변했으면 좋겠어요. 이제 와서 변하면 그게 더 억울할 것 같아요.
-그럼 이제 연주 씨 마음이 이혼으로 확실해졌어요? 물론 이혼을 결심해도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과 이혼을 끝까지 잘 해내는 건 결코 쉽진 않을 거예요. 갈 길이 만만치 않을 거예요.
-선생님 저 이런 생각도 했어요. 인터넷이나 미디어에서는 조현병에 대해서 되게 무섭게 말하잖아요. 조현병 환자들이 끔찍한 사고를 치기도 하고 그런 게 뉴스에 많이 나오니깐요. 근데 제가 도대체 내 남편은 누구지, 뭐가 문제인 건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알게 된 건데 조현병은 약만 잘 먹으면 아무 문제없더라고요. 그냥 병이더라고요.
-맞아요 조현병은 오히려 치료 쉽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들도 있어요. 약 효과가 좋거든요.
-검색해 보니깐 당뇨처럼 평생 관리하듯이 약만 잘 먹으면 일상생활에 지장 없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조현병이길 바랄 만큼 간절히 빌어본 적도 있어요. 웃기죠. 남들은 기피하고 색안경 끼고 보는 조현병인데. 저는 조현병이면 부러울 정도라는 게 웃겨요. 오빠가 진짜 조현병 같은 거면 내가 그냥 데리고 살 텐데. 꼭 조현병이 아니더라도 뭐 아무 병이어도 다 괜찮아요. 근데 만약에 자폐 스펙트럼이라면 그건 병이 아니라 장애잖아요. 고칠 수 없잖아요.
-네 그렇죠. 장애는 질병과 다르죠. 근데 제가 연주 씨 남편을 직접 본 건 아니라서 제가 이건 대답할 순 없어요. 연주 씨 남편이 자폐 같다고 한 선생님은 남편분을 직접 본 거예요?
-네, 직접 보셨고 저한테 그런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대학병원에서 남편 진단명이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지만 저는 진짜로 자폐나 나르시시스트일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둘 다 약으로 치료가 되거나 증상이 완화되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기다리면서 스스로 희망고문 할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 이혼을 결심한 게 아니라 그냥 제 현실을 받아들인 거예요.
이혼을 결심해서 하는 거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서 이혼하는 거나 그게 그거지. 이혼이 거기서 거기지 뭐가 다르다는 거야. 어차피 이혼이라는 결과는 똑같은데.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엄마를 위해서. 엄마의 꿈을 빼앗아 자랐기 때문에. 내가 엄마의 꿈이 되어버렸으니깐. 나는 사랑에 내 목숨까지 바쳐가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짓은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엄마의 자랑이고 꿈이니깐. 엄마의 인생 후반부를 괜히 구슬프게 만들지 않기 위해 이혼을 간절히 원한다. 그래서 그의 진단을 숨죽이고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