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현실을 투영하는 내면의 거울이다.
사방이 뚫린 투명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잘 올라가다가 갑자기 꼭대기층으로 가면서부터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철컹철컹 심하게 한 번 흔들리더니 결국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추락했다.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나는 내가 죽는다는 걸 인지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가는구나.
식은땀으로 잠옷이 축축했다. 맨날 덮는 구스이불이 유난히도 무거웠다. 어릴 때 엄마가 감기 걸리지 말라고 목화솜이불에 담요까지 꽁꽁 싸맸을 때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눈을 뜨자마자 네이버에 해몽 검색을 했다. 현실의 불안을 반영하는 꿈이라고. 당연한 소리를 굳이 찾아본 내가 바보지.
오늘은 회사에서 내내 유부녀 페르소나를 연기하느라 힘들었다. 우연히 전 직장 동료가 지금 회사로 이직을 했다. 그분은 나를 보고 대체 왜 여기에 있냐는 듯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업무 일정상 하루종일 내 옆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능청스럽게 입을 털었다. 짧게 지내본 그 나라 생활은 어쩌고 저쩌고.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릴 때면 스스로가 역겹다. 이렇게까지 메소드 연기를 쓸데없이 잘하는 내가 진절머리 난다.
역시 세상은 너무 좁다. 전 직장 동료를 현직장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그러니 사람은 항상 착하게 살아야 한다. 현남편이자 전남편인 홍길동도 알고 있을까. 세상은 너무 좁고 자기가 한 짓은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라도 언젠가 다시 돌려받을 거라고. 사실 남편은 정신이 아파서 자기가 잘못한 걸 진심으로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 세계에 갇히면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저능아도 아니고 그 천재적인 IQ를 갖고 자기 잘못이 뭔지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그저 너에게 사랑이 아니라 소유였던 거겠지. '니 기준에'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어져서 버린 거고.
구원은 자기 자신만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네 구원을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나에게 용서를 받는 일이겠지. 남편이 내게 용서를 구하는 일도 없겠지만 내 용서를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걸 카르마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