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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un 12. 2024

“니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돈을 좇지 말고, 돈이 쫓아오게 일하는 마음가짐의 차이



부잣집 외아들로 자란 외삼촌은 스물다섯 살에 첫 취업을 한 내게 대뜸 연봉 얼마 받냐고 물었다. 국제기구에서 시작한 첫 사회생활이라서 대기업 간 친구들의 절반밖에 못 받았다. 당시 초봉 2800만 원으로 기억한다. 최저 시급보다는 높았지만 주변 ‘엄친딸’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쓰고 남은 돈을 가끔 저금하면 다행일 정도로 철이 없던 사회 초년생이라서 돈을 모으는 재미나 중요성도 깨닫지 못했다. 그저 내가 돈을 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월급날이 오면 쇼핑하고 여행 경비로 다 쓰기 바빴다. 당연히 매달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갔다.




그 해 삼성전자 신입 사원 초봉이 성과급에 인센티브까지 다 더해서 6000만 원에 가까웠으니 정말 친구들에 비하면 딱 절반밖에 못 벌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잘 찾아내고 만족하면서 열심히 다녔다. 그래서 1년 만에 본 삼촌이 다짜고짜 연봉 얼마냐고 묻는 게 몹시 불편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받아요.”

“에이 그래서 얼만데? 말해봐. 4000? 5000?”

“3000 정도요.”

“에게 겨우 그거 벌면서?! 니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그걸 비밀이래. 어이구~ 난 또 엄청 벌어서 비밀인 줄 알았지. 야 그걸로 생활이 되냐?“


삼촌 자식들은 얼마 버는지 두고 보자고 분한 마음에 혼자 씩씩대기엔 사촌동생들은 아직 취업은커녕 대학 입학도 한참 남은 어린이들이었다. 무엇보다 외삼촌은 모태 부잣집 아들이라 평생 돈 걱정 없이 여유 있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 엄마 아빠는 물론 다른 어른들도 없었던 게 분했다. 다른 친척 어른들이 있었으면 일부러 다 들으라는 듯이 당돌하게 말대꾸라도 했을 텐데. 자리엔 삼촌과 나밖에 없어서 대충 말을 씹었다. 어차피 평소에 삼촌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고 삼촌은 그저 배려심이 부족해서 조카에게 말실수한 ‘꼰대’일 뿐이었다.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귀하게 자란 외삼촌이라서 그 말이 크게 기분 나쁠 이유도 없는데 이상하게 내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그리고 비슷한 말을 듣는 상황이 되풀이될 때마다 그 말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결혼 전 홍길동은 내 전 직장 연봉이 얼마인지 묻고, 그 정도 연봉이면 회사도 오래 다녔는데 그만두고 좀 쉬어도 된다고 말했다. (내가 본인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외국까지 따라가는데 고마움은 1도 없었다.) 시어머니도 내심 결혼하면 내가 전업주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심지어 우리 엄마는 지금도 내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이 고생을 하냐며 회사를 그만두고 쉬기를 바란다. 마음을 다친 우울증 환자한테는 일하는 게 안 좋다고 믿고 있는 눈치다.


일하는데 돈이 뭐가 중요한 걸까? 내 연봉이 1억 3천이었으면 안 그만두고 계속 다녀야 하는 일이고 ‘억대연봉’이 아니면 그깟 푼돈이라서 대충 다니다가 관둬도 되는 허접한 일일까?




오늘도 당연하게 야근을 하면서 문득 전업주부를 꿈꾼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과거에 습관처럼 했던 말들이 지금의 나를 살려준 걸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고, 그저 돈을 좇으며 일했거나 꿈이 고작 취집이었다면 결혼 후 돌변한 홍길동으로부터 피습 당한채 무방비하게 죽음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니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그 말은 곧 내 자존심이 되어 나를 아득바득 살려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탐구해 본 사람은 일에서 월급 이상의 의미를 찾는다. 일을 과정의 즐거움으로 대하면 처우나 보상은 따라오고, 노동으로 대하면 받은 만큼만 일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은 그런 내게 뼛속까지 노예 마인드라고 말하지만, 어차피 노예로 태어났다면 이왕 즐겁게 일하는 게 자기 효능감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노예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에 차서 결국 노예 신분에서 제일 빨리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든 쿠팡맨을 하든 ㅈ소기업에서 최저시급을 받고 단순사무보조를 하든 노동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금도 건강하고 아름답다. 나는 노동과 일의 차이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자기 삶을 탐구해 나가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좋다. 그런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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