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리는 선택은.
사회생활을 하며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평일은 일에 치여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기 바쁘니 주말이 되면 밀린 집안일을 한 번에 처리한다. 그마저도 피곤해서 잠만 자거나 약속이 있어서 외출을 하면 2주 연속 빨래가 쌓인다. 벌써 옷정리를 몇 주째 못하고 소파며 의자에 켜켜이 쌓아두고 있다. 어릴 때를 떠올려보면 아빠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로 아빠의 회사 생활은 나보다 5배는 더 바빴다. 어린 마음에 아빠는 왜 그렇게 맨날 일만 하는지 야속하기도 했다.
엄마는 어린 우리를 오로지 홀로 키워냈다. 그 시절 엄마들은 원래 결혼하면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믿었을지 몰라도 요즘은 왕성한 사회생활을 한 여자들일수록 산후우울증을 세게 겪는다. 그 시절 엄마들도 산후우울증이라고 미처 자각하지 못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나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그 우울감이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아빠는 일을 얼마큼 좋아했을까. 아빠는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일을 공부하듯이 즐기며 평생 한우물을 팠다. 한 분야의 대가가 되는 과정은 즐기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아빠를 보고 배웠다. 그렇지만 아빠 역시 그 과정이 마냥 즐겁기만 하진 않았으리라. 가정과 회사의 기로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어떤 순간이 올 때면 아빠는 항상 가족을 택했다. 아빠 어깨에는 자식들이라는 책임감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나는 회사생활이 힘들 때마다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가 지금의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떠올린다.
지금 나에게는 어차피 가족이라는 선택지도 없으니 일에만 원 없이 미칠 때다. 홍길동이 떠난 자리에 커리어가 남았다. 원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게 인생이라는 회사 선배의 말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