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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ul 22. 2024

수도권을 떠난 1인 가구

"왜요? 혼자 사는 사람 처음 보세요?"

 2022년 1인가구 10 가구 중 4 가구(42.6%)는 서울과 경기도에 거주함

(출처: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604676#pressRelease)



새 회사에 출근한 첫 주에 무려 30명 이상의 (뻥 아니고 진짜) 사람들이 내게 결혼했냐고 물었다. 나는 '했다, 안 했다, 해봤다.'라는 대답 대신 '혼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처음 보는 사이에 첫 질문으로 이것도 충분히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기까지는 나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나를 당황케 하는 질문은 1단계에서 끝나지 않고 기어이 2단계로 넘어갔다.


"왜요?"


'왜가 왜 궁금하세요?'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앞으로의 무탈한 회사 생활을 위해 허허실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듯이 물렁한 대답을 택했다. "글쎄요…"


"그럼 연애는 하고 있어요?"


이들은 대체 어떤 권리로 내게 사적인 질문을 쏟아내는지 화를 넘어서서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저 이 회사만의 꼰대 문화인 것인지 지역색인지 혹은 둘 다일지 헷갈릴 정도였다. 앞서 이사를 한날부터 편의점 사장님이나 만나는 동네 사람들마다 모두 내게 결혼을 했는지, 혼자 사는지 따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회사에서 결혼했냐는 질문 다음으로 많이 들은 질문은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였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매너 좋은 면접 경험만 있었는지 한 번도 부모님에 대해 물어보는 상사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 만나지 못했던 상사들의 총합을 여기서 한 번에 채우듯이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 다 빠짐없이 물어봤다. 심지어 처음 그 질문을 한 사람한테 전해 들었다며 먼저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아무개 상사는 그랬다. "오~ 있는 집 따님~ 우리 회사 힘든데 잘 버틸 수 있겠어?"


내 동생이 어느 대학 나왔는지도 스스럼없이 물었다. 마치 나에게 질문을 맡겨놓은 것처럼 사생활의 영역을 야무지게 침범했다. 왜 요즘 MZ들이 힘들게 들어간 대기업을 금방 뛰쳐나가는지 그 이유를 고작 1주일 만에 알 것 같았다.




나는 <서울에서 내려와서, 원룸에 자취하지 않으며, 혼자서 강아지를 키우며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순식간에 재력가의 여식이 되었다. 지방은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수도권에 비해 가족 구성단위가 단조롭다는 걸 깨달았다. 확실히 부동산을 돌아봐도 대부분의 아파트가 소형 평수가 아닌 방 3개 이상의 대형 평수 위주였다.


이 땅의 많은 1인 가구들은 이런 단조로움을 피해 다 수도권으로 집결한 것일까? 물론 표면적으로는 지방에 압도적으로 부족한 양질의 일자리가 있겠지만, 환경적 특성과 더불어 뒷받침해 주는 문화적인 요소도 꽤 클 것이다.




지방 소도시로 이사 온 뒤에 날 보러 처음 놀러 온 동생에게 여기서 겪은 문화 충격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아마 내가 과장을 반 보태서 앓는 소리 하는 줄로만 알았을지 모른다. 동생은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래도 퇴근하고 집에 와서 이런 뷰 보면 우울증 싹 나을 것 같은데?"


그건 동생 말이 맞다. 세상은 공평해서 서울이 싫어서 서울을 떠난 자에게 비로소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여유로운 출퇴근길을 선사하셨도다. 그러니 이런 사소한 문화 차이쯤이야 당연히 웃어넘길 줄도 알아야지.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현관문만 나서면 바다가 코앞인 이곳이 얼마나 축복인지 감탄하는 '서울 사람' 동생을 보며 마음을 다시 한번 고쳐먹었다. '그래 내려오길 잘했어. 맞아. 정말 오길 잘했어. 여기 잘 적응해 봐야지. 다시는 영원히 서울 안 갈지도 몰라. 홍길동 덕분에 매일 바다를 보면서 살게 됐네.'


동생과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계산하려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거셨다.


"시집갔어?"

"아뇨"

"아니 시집가서 애를 낳아야지, 아가씨가 결혼도 안 하고 개를 키우고 있네."


내 하소연이 과장도 유난도 아니라는 걸 마침내 깨달았다는 듯 동생의 놀란 표정이 꽤나 은근했다.




(아무리 서울이 싫어도)

역시 집 떠나면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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