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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ul 15. 2024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

그럼에도 서울과 많이 다른 점 세 가지

첫 번째. 대부분 인사성이 밝다.


생각해 보면 서울에 살 때는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늘 인사를 하는 사람은 특정 인물들뿐이었다. 엘리베이터를 열 번 타면 그중 아홉 번은 서로 인사를 안 했다.


여기서는 엘리베이터에 탄 모두가 인사를 한다. 한 명도 빠짐없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처음에는 이 아파트만의 좋은 문화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비행기를 타고 집을 보러 왔을 때 다른 아파트에서도 똑같았다.


내가 사는 이곳은 시골이지만 나름 작은 신도시처럼 새로 조성된 마을인데, 이 동네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서너 개와 여러 동네를 방문했으니 나름 이 지역 특성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두 번째. (그래서) 개인주의자는 피로해지기 쉽다.


서울에선 옆집 사람이 뭐 하고 사는지 전혀 몰랐고, 심지어는 남자가 사는지 여자가 사는지도 몰랐다. 출근 시간대가 달라서 그런지 오며 가며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스치듯 만난 사람들조차 불쑥 너무 쉽게 내 선을 넘어온다.


이사 온 첫날, 종량제 봉투를 사러 단지 앞 편의점에 갔다. 편의점 사장님은 날 보며 “안녕하세요, 새로 이사 왔나 봐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라고 말을 건넸다. 아니 500 가구가 넘게 사는 이 아파트 반경에 편의점만 브랜드별로 세 개가 있는데 누가 새로 이사 왔는지를 안다고?!


그러고 보니 부동산 사장님도, 숨고를 통해서 부른 소파 청소 업체 사장님도, 혼밥 하러 간 중국집 사장님도 모두가 스몰톡의 달인들이었다.


“혼자 사세요?”

“네”

“아니 왜 결혼을 안 하셨어요? 좋은 사람 만나서 빨리 결혼도 하셔야지.”

“??”


물론 다들 친절한 분들이었다. 특히 부동산 사장님께는 집을 알아보기도 전부터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알고 보니 이 지역 사람들은 원래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그래서 오히려 서울 사람들은 깍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걸까.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안 하고 남에게 관심 없는 게 내 성격인 줄만 알았는데 어쩌면 나도 ‘서울깍쟁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이 동네 제일 맛집은 집밥이다.


세계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보다 서울에 있는 그 집이 더 맛있는데…’ 타코의 본고장 멕시코시티에서 구글맵 평점 4.8점의 타코집에 갔을 때도 나는 이태원 하시엔다가 훨씬 맛있다고 생각했다. 이태리 음식은 또 어떻고. 요즘 한국의 F&B는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을 만큼 수준이 높아졌다. 나는 그걸 이 동네에서 새롭게 느꼈다.


‘이 세상 맛있는 건 전부 다 서울에 모이는구나.’


차 타고 동네를 오며 가며 곁눈질로 보더라도 프랜차이즈 치킨집 몇 개 말고는 외식할 곳이 별로 없어 보인다. 네이버맵을 켜서 근처 맛집을 찾아봐도 영 시원치 않다. 나중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놀러 오면 뭐 먹으러 가야 되지 생각했을 때 막막하다. 물론 여기에도 소문난 맛집이야 있겠지만 차 타고 한참을 나가야 한다. 배달앱을 켜면 유명 맛집이 지천에 널려있던 서울과는 딴판이다.


결국 난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신혼살림으로 마련했던 좋은 주방집기와 가재도구들이 다시 한번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아직 새로운 곳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모든 게 낯선 적응 기간이다. 그동안 한국은 작은 나라라서 문화적 특성에서 오는 차이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태국이나 베트남의 북부와 남부처럼 아예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른 경우도 아니니깐. 특히 내가 여행을 많이 다녔기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다르다. 이 지방 고유의 지역색은 물론이고 도시 규모에서 오는 차이나 문화적 특성도 분명 있을 것이다.


서울이 싫어서 떠났지만, 어쩌면 여기 있는 동안 뜻밖의 서울의 장점을 찾으면서 서울을 다시 사랑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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