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아닌 낯선 도시에서의 첫날밤
혼자서 고속도로를 달린 적은 작년 여름 지리산 화엄사 이후로 처음이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강아지가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만이 이따금씩 차 안의 적막을 깬다.
한참을 달리고 분기점에서 국도로 빠져나와서도 한참 동안 더 들어가는 곳.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 살러가는 길.
기분이 어때?
떠나기 직전에 만난 친구들이 물었다.
글쎄 아무렇지도 않아. 너무 바빠서 아직 감정을 느낄 새가 없는 것 같기도 해.
짧게 다닌 회사를 도망치듯 급하게 퇴사하고 잠시 외국에 다녀와서 또 야반도주하듯 짐을 싸고 이사 가는 스케줄. 그 와중에 틈새를 비집고 정신과도 갔고 이비인후과도 갔고 변호사를 만났다. 촘촘한 일정 사이에 숨 한번 고를 여유 없이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다.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번갯불 콩 굽듯이 후다닥 짐을 정리하는데 어딘가 허전하다.
평생 서울 밖을 벗어나본 적 없는 사람이 서울을 다 버리고 떠나는 길인데 생각보다 뭐가 별로 없다. 용달 아저씨는 베테랑처럼 순식간에 짐을 싸더니 먼저 출발했다. 보통 아가씨들은 잔짐이 많은데 아가씨는 옷도 별로 없고 화장품은 하나도 없네? 용달 아저씨도 인정한 단출한 살림살이.
배낭 여행자들에게 배낭의 무게는 전생의 업보라는 말이 있다. 나는 3박 4일의 여행을 가든 한 달 살이 여행을 가든 언제나 기내용 캐리어나 배낭 하나에 모든 짐이 다 들어갔다. 여행의 습관이 일상에도 묻어난 걸까. 아니, 생각해 보니 내 짐들은 거의 전부 홍길동에게 있다. 아직도 못 찾았다. 이미 그가 다 버렸을 거라고 포기하는 게 빠를 것 같다. 강제 미니멀리스트가 된 지 어느덧 1년이 넘으니 몸도 익숙해졌나 보다.
이곳은 맥도날드도 없고 이마트도 없는 시골. 근데 나름 그 지역의 작은 관광지라고 스타벅스는 있다. (스세권 굳) 집 앞 항구에 가서 막회 한 접시를 포장하고 와인을 사러 근처 와인 가게에 갔다.
샴페인 있어요?
없어요.
그럼 소비뇽블랑은 있어요?
저기서 찾아보세요.
선반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내 마음에 드는 와인은 없다. 근처 펜션에 놀러 온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파는 저렴한 와인 위주. 12,900원짜리 소비뇽블랑 한 병을 들고 새 집에 돌아왔다.
혼자서 와인 반 병에 막회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나니 이제야 드디어 실감이 난다.
내 뜻대로 오롯이 혼자 고독해졌다.
엄마 아빠를
동생을
친구들을
정신이 아픈 (soon to be) 전남편을
모든 걸 다 서울에 버리고 왔다.
나만의 새로운 시작.
앞으로 온전하게 즐길 외로움이 기대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