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곁에 두면 바다가 될 수 있을까)
바다는 아무리 비가 와도 넘칠 줄 모른다.
햇빛이 수직으로 쏟아져도 증발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산 같은 사람이고 싶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긴 시간 그토록 되고 싶은 건 바다였을지도.
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날 위해 춤추는 바다를 두고
돌아앉아 세월을 뒤로 내팽개칠 수가 없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달력을 세지 않아도
지난날들이 밀물처럼 쏟아졌다.
바닷물이 다 마르면 그때는 바닥에 뭐가 드러날까.
햇살이 파도 위에 잘게 부서지다 못해 미끄러진 윤슬은
미처 빠져나올 줄 몰라 그대로 사금이 되어버렸고,
울다가 떨어트린 진주는 어디에 꽁꽁 숨어있을지.
강남역 빽빽한 빌딩숲 어느 건물 화장실 한 칸 차지하고 숨 참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었다.
시골이라고 볼멘소리 해도 바다가 있는 건 정말로 다행이었다.
아무리 펑펑 울어도 넘치지 않고
악쓰며 욕을 퍼부어도 마르지 않아서.
밀려와서 다독여주고
쓸려가며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져가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