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건 없었다. 다 내 착각이었다.
가만 보면 인생은 항상 증명의 연속이었다. 학생 때는 내가 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 애초에 공부에 욕심이 별로 없어서 중상위권에만 들면 스스로 만족했다. 엄마는 옆집 전교 1등이랑 비교하면서 너는 똑같은 밥 먹고 똑같은 교복 입는데 분하지도 않냐고 잔소리를 했지만 천만의 말씀. 왜 분해야 하는 지를 몰라서 전혀 분하지 않았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욕심부린 건 겨우 독서였다. 책깨나 읽는다는 애들보다 더 많이 읽고 싶어서 방학 때마다 도서관에 틀어박혔었다. 책벌레라는 별명을 너무 갖고 싶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매년 다독상을 줬는데, 나는 학업우수상보다 다독상이 더 받고 싶어서 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마저도 어린 마음에 책벌레라는 별명이 내 거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노력이었던 것 같다. 그게 습관이 되어 중고등학교 때도 남들은 학원 다니고 문제집을 볼 때 나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끼고 살았다. 살면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때가 고2, 고3 시절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걱정했고 수학 선생님은 나를 싫어했고 국어 선생님은 그런 나를 아주 예뻐했다. 글자가 빼곡한 책만 읽다가 눈이 답답해지면 종종 일탈하는 심정으로 보그걸을 읽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취업 시 서류 탈락한다는 학점 3.5 이상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 시각 누군가는 성적 우수 장학금을 위해 노력했겠지만, 어쨌든 나는 내 나름의 기준을 증명해 내기 위해 애썼다.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선 토플 점수로 증명해야 했고, 원하는 복수 전공을 하기 위해선 학업계획서로 증명해야 했다. 나중엔 이력서에 한 줄 더 넣기 위해 방학마다 각종 대외활동과 인턴을 했다. 신입은 신입이니깐 경력이 없는 게 당연한 건데 신입 같지 않은 신입임을 증명해야만 했다.
어쩌면 인생도 한 편의 긴 RPG게임인 것처럼 때때로 주어지는 퀘스트를 처리하면서 나를 증명했다. 신용카드 한도, 대출 우대 금리, 청약 통장 사용 조건, 청년 지원 정책. 평생 증명해 오는 삶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30대쯤 되자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증명하는 게 당연했다. 회사에서는 내 연차에 맞는 경력을 증명하기 위해, 몸값을 높이기 위해 성과로 증명하는 게 당연해진 삶.
증명하는 게 이제는 지겨워서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하고 내 마음을 증명해 달라는 사람들과는 시작도 않았다. 애초에 불안한 사람들한테 뭘 더 노력하면서까지 증명해 줄 에너지가 없었다. 나로 인해 야기된 불안이 아니라면 본디 타고난 불안은 스스로 달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상대방에게 바라지 않아도 저절로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의 사랑처럼 말이다. 나는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비로소 증명으로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이미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도 읽었겠다, 연애에 있어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남편은 애정 표현과 공감을 해주진 않았지만 대신 자기가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애정을 보여줬다. 나는 그를 지지해 주고 인정해 줬다. 꼭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나만 2개 국어 능통자였다. 이해는 전적으로 나만의 일방적인 행위였다.
엄마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명해주지 않아도 내게 와닿듯이, 내가 동생을 얼마나 아끼는지 증명하지 않아도 서로 느끼듯이 나는 남편과 서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틀렸다. 나는 이제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이 이혼을 왜 해야 하는지 그를 상대로 증명해야만 한다. 가슴을 도려내서 속이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는지 직접 보여줄 수도 없는데 이를 증명하라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좋아했지만 결국 제 발에 도끼를 내려찍듯 다시 증명해야만 한다. 삶이 나를 얼마나 시험하려는 걸까. 내 증명은 끝이 없다.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