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힘겨운 건지 역겨운 건지 어쩔 줄 몰라 헛구역질만 해댔다.
남편은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대학병원 정신과 진료를 다니고 있다. 치료를 거부하고 해외로 가출한 줄 알았는데 다행히 한국에 돌아왔다. 예정대로 병원 예약일에 맞춰 갔고 병원에서 준 약도 먹고 있다고 들었다. 보름 뒤면 풀배터리 검사도 받는단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솔직히 아예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자폐 스펙트럼? 성격장애? 반사회적 인격장애? 진단명은 전혀 쓸모없다. 내게 필요한 건 남편의 자기 인지일 뿐이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건 뒤틀린 그의 인지왜곡이 잠시라도 멀쩡히 돌아오는 것.
그래서 자기가 저지른 짓이 살인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깨닫고 괴로워하길 바란다. 죄책감에 시달리다 마침내 평생 불행하고 외롭게 최후를 맞이하면 좋겠다. 그래도 내 허망함은 해갈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땐 정말 내가 더 지옥이겠지. 더 이상 원망할 대상이 없어진 나는 남편보다 더한 괴물이 되겠지. 아니 난 이미 어쩌면 괴물인지도 모른다. 옛날의 내가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파란 하늘을 봐도 신나지 않는다. 한때는 단순한 날씨파 인간이었는데 나도. 직장에서 동료들과 시시껄렁한 스몰톡을 하지도 않는다. 파묘를 보면서 쫄거나 깜짝 놀라지도 않았다. 겁이라는 것도 감정이 말랑말랑한 사람들이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니 나한테는 사치일 뿐이다. 웃는 방법을 영영 까먹을까 봐 가끔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억지로 활짝 웃어본다. 거울 속에 나 말고 조커가 들어있다. 나 웃는 게 참 예쁘다는 소리 엄청 많이 들었는데. 그때는 무표정을 어떻게 짓는지 모를 정도로 맨날 웃는 얼굴이었는데. 그랬었는데. 다 지난 일이다.
나는 이제 그저 남편이 성실히 치료에 협조해 주길 바란다. 남편이 치료받는 동안 그 기간을 내가 고스란히 견뎌내면 지금까지 내가 버티고 무너져 내린 마음의 곱절까지 더해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할까. 과연 그도 죄책감을 느낄 수 있을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고 어리석은 게 아무리 불교 공부를 하고 참회를 되뇌어도 겨우 내 마음 하나가 쉬이 포기되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은 양초 끝을 겨우 붙잡고 늘어져서 불씨를 살려놓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이야기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내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열심히 사는 것. 이 결혼은 교통사고였으니 이혼이라는 뒷수습을 잘 해내는 것. 나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멋있는 사람. 나도 다 안다. 매일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인생에 정답을 알았다고 더 이상 마음이 슬프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다면 내가 성인(Saint)이거나 사이코패스였겠지. 나는 우연히 들려온 노래에 쉽게 부서질 정도로 약해빠졌다. 아까 낮에 우리 결혼식 2부 축가곡이었던 남성 사중창 ‘Il libro dell’amore’를 우연히 듣고 몇 시간째 계속 고장 난 로봇처럼 울었다. 알고리즘은 악마 같고 나는 기억 앞에 꼼짝 못 할 만큼 나약하다. 추억은 아무 힘이 없어서 더 지독하다.
남편의 치료가 진행될수록 공교롭게도 내 우울증은 더 심각해지는 기분이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괘씸하고 화가 난다. 내 등에 칼을 쑤셔 넣고 유기한 채로 자기는 유유히 치료받는다니. 차라리 그가 치료 불가능할 정도의 미친놈이라야만 내 마음이 조금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편도 자기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스스로 진심으로 몰랐어야만 나는 조금 평화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벌써 완벽히 지옥 한가운데 서있을 뿐이다. 애석하게도 남편을 원망하다가 남편보다 더한 괴물이 되었나 보다. 부디 그게 아니길 바란다. 오늘은 그저 큰 파도가 찾아온 날일 거야. 우연히 들은 우리 축가 때문에 커다란 파도가 날 휩쓸고 갔을 뿐이기를. 이 풍랑이 지나가면 내일은 잠잠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