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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Mar 03. 2024

개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강아지 육아도 육아는 육아였다.

황금연휴가 삭제되었다. 눈뜨고 잠들 때까지 강아지만 돌봤다. 견생 3개월 차. 지금이 견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 밥상머리 예절부터 배변 교육까지 하나하나 놀아주며 하루종일 함께했다. 같이 놀아주지 않더라도 혼자 알아서 잘 놀아서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태생이 소심하고 겁이 너무 많은 아이는 내가 분리수거하러 나간 5분이라도 집에 사람이 없으면 내내 하울링을 했다. 사흘간 집을 비운 적이 고작 5분인데도 강아지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흘렸다. 당연히 너무 어린 시기라서 아직은 혼자 있는 게 두렵고 무섭겠지만 이대로라면 앞으로 갈 길이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크면 괜찮아지겠지, 유치원 보내면 다 괜찮겠지,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하는 문제 보호자가 되고 싶지 않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이 이 아이의 20년 견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인 건 틀림없다.


3일 동안 유튜브의 온갖 고립불안 고립장애 퍼피 예절 교육 영상을 섭렵했다. 동배 형제들 중에 유일하게 성격이 소심하고 쭈구리 같은 우리 집 아이는 늘 주눅 들어있는 모습이다. 자기 집에서 배를 드러내놓고 자다가도 금세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본다. 그런 모습이 왠지 나 같아서 안쓰럽고 짠하다. 아가야 너도 세상이 무섭니. 나도 다시 혼자가 되는 게 무서워. 이혼이 옆집 개이름처럼 흔해진 세상에 이혼녀 타이틀 그게 뭐 어떻다고. 그깟 이혼녀 아무렇지도 않아. 다 괜찮아! 열심히 주문을 외치다가도 멈칫한다. 사실 내가 무서운 건 이혼녀 타이틀 따위가 아닌데. 다시 의기소침해진다. 사람 사랑하는 방법을 까먹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사람의 인연이고 자연의 이치인데. 이렇게 마음이 찢어지게 아픈 이별은 처음이다. 내가 두려운 건 감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나 봄에 결혼해. 주변에 조심스레 결혼 소식을 알렸을 때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똑같은 대답을 했다. "와 진짜 축하해!" 모두들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적인 축하와 축복만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세상에 이혼 소식을 밝히면 내게 쏟아질 반응은 다음과 같겠지. "왜?" "왜 이혼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결혼에 이유를 묻지 않지만 다들 이혼에선 이유를 찾는다. 저쪽이 개새끼였는지 아니면 내가 나쁜 년이었는지. 그다음에 위로나 응원이나 축하든 뭐든 해주려나. 어 잠깐, 근데 이 세상에 자기 이혼 사유에 대해서 '내가 개새끼거든. 바람 폈어. 그리고 주식 빚도 있고.'라고 말하거나 '내가 나쁜 년이야. 맨날 술 마시다가 남편을 때렸어. 양극성 장애래.'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들 중 하나는 사실대로 말하거나 숨지만 나머지 하나는 성격 차이로 포장하겠지. 남편은 이미 나한테 우리 이혼 사유가 성격 차이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남일에 관심도 없던 내가 이제는 사사로운 것들에 신경 쓰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어도 사람들 만나기가 싫다.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고 싶은데 이미 그러고 있는 건 내가 많이 상처받아서 위축된 거겠지. 심약해지니깐 안 하던 생각들이 많아졌다. 108배 얼른 해야 되는데. 강아지 뒷바라지하느라 며칠 째 108배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동생이 도와준다고 해도 1인 가구에서 덜컥 강아지를 입양한 건 아닐까 이미 저질러 놓고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 어차피 연이 닿아 이제 내 아이가 됐는데. 우리는 이미 가족이 되었는데. 혼자 강아지를 키우는 게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이 대목에서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게 우습다. 그 사람 머릿속에는 온통 나를 제거하고 엿 먹일 방법밖에 안 들어있는데 난 강아지 똥 치워주면서도 그 사람 생각을 하네. 남편과 함께 키우던 개는 노견인 데다 워낙 영리해서 흡사 사람 탈을 쓴 것 같았다. 실외 배변만 고집하던 아이라서 매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3번씩 산책을 나갔다. 덕분에 우리는 더 부지런해졌고 신혼집 동네를 더 빨리 좋아하게 됐다. 하루하루 남편과 강아지와 산책하는 일상이 내 행복이었다. 남편은 강아지를 해병대처럼 키웠고 나는 처음 키워보는 강아지가 예뻐죽어 내 새끼처럼 애지중지했다. 엄격한 아빠와 다정한 엄마 뭐 그런 그림처럼. 이제 나는 그 역할을 혼자서 다 해내야 한다. 그러니깐 강해지자. 강아지도 잘 키우려면 사람 새끼만큼 어렵다. 싱글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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