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와 코끼리 이야기
내 태몽은 두 개다. 하나는 진짜 커다란 구렁이, 다른 하나는 흰 코끼리였다. 불교 공부를 할 운명이었을까. 엄마는 생전 가본 적도 없는 인도의 길거리 행진에서 흰 코끼리가 엄마 품으로 돌진해서 깜짝 놀라 주저앉았다고 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태몽이 많은데. 딸 태몽으로 예쁜 복숭아 꿈도 있고, 사과나 딸기 같은 과일 꿈도 있는데 하필 커다란 구렁이에 코끼리라니. 꿈값을 하듯 어릴 때부터 존재감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연주 쟤는 어릴 때부터 애 같지 않았어. 안에 어른이 들어앉은 것 같았어.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영희랑 철수 옆에서 알파벳도 지 혼자 따라 불렀잖아. 내가 사촌 언니 오빠들 옆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고 고모는 말했다.
아무래도 연년생으로 동생을 봐서 일찍 철이 들기를 강요받았다. 나랑 동생은 고작 한 살 차이인데 나는 항상 엄청나게 언니고 동생은 언제나 엄청나게 동생이었다. 니가 언니니깐, 니가 우리 집 기둥이니깐, 니가 대표니깐,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그만큼 칭찬도 많이 받고 대신 그만큼 또 많이 혼났다. 엄마는 나를 완벽한 애어른으로 키웠다. 엄마와 그래도 사이가 좋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엄마말을 안 듣고 내 마음대로 살아서 그렇다.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 그건 참 다행이었다.
그런 성격과 환경은 나를 다른 사람들도 이해해 주고 감싸줄 줄 아는 어른으로 만들었다. 물론 나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또라이들을 여러 번 봤다.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정말 세상엔 다양하게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처럼 어느 집단에 가도 조금씩 특이한 사람은 늘 있었다.
내가 스물다섯 살, 국제기구에서 일할 때 내 밑으로 들어온 서른두 살의 인턴은 나와 처음 만난 날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밝히자마자 내 혼삿길을 걱정해 줬다. 연주 씨는 근데 이렇게 외국 나와서 일해도 돼요? 저는 이미 집도 다 증여받았고 외동딸이라서 결혼 같은 건 안 해도 되는데, 대부분의 여자들은 시집가야 되잖아요. 결혼하려면 연주 씨 지금 나이가 제일 깡패인데 여기 나와 있어도 괜찮아요? 나한테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깜빡이 없이 훅 들어왔다. 그녀는 도피 유학에 실패하고 변변찮은 대학 학위 하나 들고 교수 엄마 빽을 써서 온 인턴이었다. 성인이 된 후에 처음 만난 이상한 사람이라서 여전히 그녀의 이름 석 자를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그런 하수쯤은 상대하기 쉬웠다. 어차피 일머리도 없어서 나중에 인턴 기간도 못 채우고 3개월 만에 한국으로 쫓겨난 그녀를 싫어할 가치도 못 느꼈다. 대신 신기하다는 감정만 가졌다. 돌이켜보면 세상엔 이상하고 재밌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 직장을 5년 넘게 다니면서 기분이 태도가 되어 팀원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예민한 팀장도 겪었고, 평소에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남이 한 일까지 다 자기가 한 척하는 뻔뻔한 사람들도 봤다. 그럴수록 인간애를 잃고 인류 혐오를 겪는 게 먼저일 텐데 나는 이상하게도 타인에 대한 이해도만 높아졌다. 고통을 견디는 역치만 올라갔다. 너 그러다가 몸에서 사리 나오겠다. 물론 내가 사람 스트레스를 전혀 안 받았다는 건 아니었다. 나도 퇴근하고 분해서 소주를 깐 날도 많았고, 어차피 그런 성격 파탄자들은 자기 업보를 쌓는 중이라 나중에 딱 그만큼 불행하게 살 거라고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성격 예민한 팀장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거나 인사 이동을 한 사람들만 5명이 넘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그녀 앞에서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 남이사. 어차피 성격이 팔자. 니 인생 니 업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흘려보냈더니 그녀는 결국 리더십 결격 사유로 팀장을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조용히 노자의 강물을 떠올린다.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아라. 그럼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 올 것이다.
다른 사람도 강가에 앉아 나를 기다릴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한 번 더 참고 조금 더 손해를 보는 게 결국 멀리 보면 내가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삶의 태도가 내 결혼에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 참담하다. 고작 사랑인데. 내가 한 건 사랑일 뿐인데. 나는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해서 이해하고 포용해 준 건데 결과가 어떻게 이래?
요즘 도가 철학에 관한 책을 읽는다. 삶이 내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겠다가도 이내 모르겠다. 얼마나 더 깎이고 내려놓고 부서져야 나는 비로소 이 슬픔에서 자유로워지는 걸까. 엄마의 태몽값을 해내고 싶은데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뱀도 코끼리도 지혜를 상징한다고 한다. 나는 꿈값을 하나도 못하듯 어떤 게 지혜로운 건지 아직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