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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이 아니라 희망이야."

파혼할 수 있었던 기회. 도망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

by 은연주

주말 내내 드라마 더글로리를 다시 봤다. 작년 봄 더글로리 파트 2가 공개되었을 때 나는 남편이 사는 나라에 있었다. 남편이 출근한 낮에 혼자 집에서 더글로리를 봤다. 결혼이 코앞이었지만 남편은 이미 해외 발령을 받았고 그 나라에서 출근해야 했다. 나는 그 나라에서 다시 세팅할 신혼집을 알아볼 겸 막바지인 결혼 준비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어차피 우리 결혼식은 어른 손님들 위주의 스몰 웨딩이었고, 결혼하고 남편 따라 해외에 가는 마당에 회사에 결혼 소식을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뿌린 축의금이 아깝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결혼식까지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면서 축의금을 회수하고 홀랑 외국으로 먹튀 하는 건 더 싫었다.


쿨하게 결혼식 몇 달 앞두고 조용히 퇴사를 했다. 그래도 5년 넘게 다닌 회사라서 갑자기 자유인이 되니깐 매우 후련했다. 결혼을 앞두고 미리 맞이하는 잠깐의 봄방학 같았다. 어차피 이제 결혼식이 끝나고 그 나라에 완전히 정착하면 어학원도 다녀야 하고, 현지에서 취업 준비도 할 것이니 정말 봄방학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남편이 회사 출근 일정 때문에 먼저 출국하는 건데 나까지 미리 같이 갈 필요가 있나? 한국에서 강아지랑 놀면서 같이 쉬엄쉬엄 결혼 준비하고 엄마 아빠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 되지 않나? 조금 망설이고 있을 때 부모님이 먼저 내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남편은 내게 말했다. "너 5년 동안 쉬지도 못했는데 결혼식 앞두고 한 달 정도만 미리 나가서 한 달 살기 하는 기분으로 있는 건 어때? 그동안 고생했잖아."


"어차피 결혼식 끝나면 앞으로도 계속 거기 살 건데?"


"그래. 그때는 사는 거고, 지금은 한 달 살기처럼 여행 온 기분으로 쉴 수 있잖아. 니 말대로 그때 되면 너도 어학원 다니면 바빠질 텐데, 차라리 쉬는 김에 좋아하는 카페나 맛집도 찾아다니고 미리 거기에 정 붙이면 좋지. 친구 사귀어도 되고. 나 회사 가있는 동안은 넌 집에서 혼자 밀린 드라마도 좀 보고. 심심하면 밖에 혼자 좀 돌아다니고. 그리고 주말엔 우리 같이 근교로 여행 가면 좋을 것 같은데."




남편의 제안은 솔깃했다. 그는 그렇게 내 입장을 먼저 배려하며 같이 출국하자고 했다. 그래서 그를 믿고 결혼식보다 두 달 일찍 퇴사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나만 남편보다 몇 주 먼저 들어오는 딱 4주짜리 한 달 살기 일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남편은 그때도 조금 이상했다. 이제는 내가 마치 자폐 스펙트럼 전문가라도 된 것처럼 그때 남편이 왜 이상했는지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들은 낯선 환경에 노출되면 불안도가 쉽게 높아진다.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거나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변화를 싫어하고 늘 일정한 루틴, 반복적인 일상의 패턴을 선호한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연애 시절은 안정적이었다. 남편은 평일에 퇴근하면 나랑 저녁을 먹고 강아지 산책을 했고, 주말이면 항상 같이 캠핑을 갔다. 거기서 특별히 싸함이나 강박이 느껴지진 않았다. 꽤 짜임새 있게 안정적인 30대 커플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회사를 미리 관두고 남편과 함께 비행기에 타고 그 나라에 갔을 때, 우리 둘 다 첫날과 이튿날은 몹시 고무적이었다. 긴 비행에 피곤한데도 둘이 손잡고 집 근처를 산책했다.


"오빠 우리 강아지 데려오면 이 코스로 산책 다니자."


"그래. 앞으로 우리 잘 살아보자. 옛날에는 이 나라 진짜 싫었는데 그래도 너랑 같이 돌아오니깐 좋네. 외국에서 신혼생활 하는 거 좋을 것 같아.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여유롭게 살자."




하지만 남편이 며칠 뒤 회사에 출근하면서부터 이상해졌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다. 남편의 불면증이 다시 도진 것 같았다. 평소에 불면증이 심각했던 남편이 나를 만난 뒤부터는 왠지 모르게 잠을 잘 잔다고 좋아했었다. 나는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 더 챙겨주고 잘해주려고 했다. 그의 성격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예민해진 남편은 내게 자꾸 시비를 걸고 짜증을 냈다. 본인 스트레스를 묘하게 내 탓을 하며 자꾸 내게 뒤집어 씌웠다.


"너 여기 온 지 1주일 동안 뭐 했어? 하루종일 집에서 더글로리밖에 더 봤어? 너 여기 오더니 변했어. 한국에선 못 봤던 그런 니 게으른 모습 진짜 깬다. 실망이야. 나 이제 너 안 사랑하는 것 같아. 이제 와서 파혼하기엔 너무 멀리 왔으니깐 앞으로 쇼윈도 부부로 살든지 하자."


남들이 들었으면 싸대기를 백 번 후려치고도 남았을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쿵 떨어진 내 심장을 겨우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미성숙한 어린애를 보는 것 같았다. 남편은 고3 유세 떨듯 수험생 스트레스를 엄마에게 마구 쏟아내는 애새끼 같아 보였다. 그런 남편에게 "뭐? 미친놈아 그걸 말이라고 해? 그래 차라리 파혼하자!"라고 받아치거나 "너 미쳤니? 난 지금 너 때문에 회사까지 그만두고 오빠 따라왔는데? 나한테 밀린 드라마 보라고 한 거 오빠였잖아!"라고 따지지 않았다. 대신 그를 토닥여줬다.


"그래 그래. 오빠 나는 지금 그런 거 안 중요해. 나는 그냥 오빠가 요 며칠 잠을 설치는 게 너무 안쓰러워. 내 소원은 오빠가 오늘밤엔 좋은 꿈 꾸고 제발 푹 잤으면 좋겠어. 토닥토닥"




남들 같았으면 난리부르스를 쳤을 말이었지만 나는 남편을 마치 엄마처럼 품어줬다. 남편은 내 말을 듣고서야 며칠 만에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다. 불면증 때문에 며칠을 밤새 뒤척이며 한숨을 푹푹 쉬던 그가 내 옆에서 신생아처럼 통잠을 잤다. 나는 그날 밤새도록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착잡했다. 평소에는 무던하고 상남자 같더니 이렇게 회복 탄력성이 없는 남자랑 평생을 같이 살 수 있을까. 미성숙한 남편을 믿고 살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남편이 항상 이런 사람은 아니었으니깐. 사람은 누구나 힘드니깐. 회복 탄력성이 높은 내가 차라리 그를 다독여줘야지. 나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끔 힘든 날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남편이 그런 나를 달래줬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저녁을 차려줬고 아이스크림도 사다 줬다. 그렇게 사는 게 부부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그를 달래줄 때인 거야. 그래서 그를 안아주고 진심으로 달래줬다.




아니. 차라리 그때 달래주지 말걸. 그때 도망갈걸. 그때 파혼할걸. 그때 결혼하지 말걸. 그때 도망가지 않았더니 이 지경이 되어버렸다. 지속되는 후회와 책망. 자책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나를 갉아먹는 괴로운 감정. 하지만 도망이 아니라 희망이라던 드라마 속 문동은의 대사처럼 나는 희망이 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른다. 희망을 위해 쓰린 심장을 부여잡고 계속 글을 쓴다. 희망이 되고 싶다. 희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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