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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Mar 09. 2024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찬탄

내 남편은 약하지 않고 악하다.

내 강아지는 움직일 때마다 귀가 팔랑팔랑거린다. 그 모습을 보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아기 코끼리 덤보가 떠오른다. 작은 귀를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내게 달려오는 걸 보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짜리 몽땅한 다리에 내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네 개의 발바닥은 또 어찌나 하찮고 귀엽던지. 나보다 약한 존재를 보면 나도 모르게 보호 본능이 마구 일어난다. 최소한의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내심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 대학생 시절 국제기구에서 인턴을 했다. 남들은 인턴 하나를 하더라도 제일 잘 나가는 기업, 번쩍번쩍한 대기업에서 하는데 나는 월급도 안 주는 NGO로 출근을 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책을 읽고 세상은 왜 이렇게 어지럽고 엉망일까 안타까웠다. 종종 궁금했다. 어른들은 왜 인생이 원래 불공평하다는 걸 당연하게 말하는지. 그렇게 말하는 가해자도 싫었고 그런 말로 자위하는 피해자도 야속했다. 물론 그렇다고 꼭 인생이 공평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불공평하다는 걸 세상의 대단한 이치라는 듯 말하면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도 덜 죄책감이 드는 걸까.




옛날 어느 날 심심해서 전화 사주를 봤을 때 사주 아저씨가 그랬다. 아가씨 사람 조심해야 돼. 근데 그중에서도 약한 사람들을 조심해. 아가씨 정이 너무 많아서 불쌍한 사람들도 잘 도와주고 그러지? 딱 강강약약 사주야. 센 사람들한테는 오히려 성질부릴 줄 알고 말이야. 근데 혹시라도 아가씨가 사람 때문에 울 일이 생기면 그건 꼭 약한 사람들 때문일 거야. 아가씨 사주가 너무 신약해. 마음이 너무 여려. 똑똑해서 사람 꿰뚫어 보는 눈은 있는데 정작 본인은 눈뜨고 당해. 그것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한테.


남편은 내게 씻을 수 없는 깊은 배신의 상처를 남겼다. 그는 악하다. 약하다의 오타가 아니라 악이다. 죽여버리고 싶다. 고통스럽게 살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라고 저주를 내리고 싶다. 남편은 3년의 연애와 동거 기간 나를 속였다. 사실 나만 속인 게 아니라 평생에 걸쳐 자신을 숨기고 스스로를 속였을 것이다. 자신이 누군지 자기가 뭘 원하는지 그는 지금도 모르고 있다. 남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답답함, 자기 세계에 혼자 갇혀있는 것 같았을 공포감,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꼈을 소외감.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근데 이제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걱정하는 꼴이 참 한심하다.




내가 만약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바보같이 남편의 치료를 기다렸을 것이다. 남편을 향한 연민과 동정으로 내 인생을 아깝게 허비했을 것이다. 사주 아저씨말대로 남편을 또 이해해 주고 불쌍하게만 여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글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뭘 써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소싯적 백일장에서 상을 좀 받았고, 국어 시간에 매번 선생님들한테 너는 꼭 국문과나 국어교육학과 가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왠지 가슴속에 숨겨둔 이야기가 많은 사람, 늘 잔잔하게 우울하고 섬세한 사람, 상상력이 월등히 뛰어난 사람, 타고난 재능이 있는 천재들이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들은 마치 모차르트나 피카소 같아 보였다. 내 인생은 대체로 무탈했고 대부분 즐겁거나 심심해서 나는 생각이 짧았다. 대상을 골똘히 관찰하고 깊게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나보다 남편이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전업 작가도 아닌 내가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나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절대 남편을 기다리지 않기 위해. 남편이 증발해 버리든 폭발해 버리든 그건 이제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남편의 진단명은 솔직히 궁금하고 새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의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솔직한 내 마음은 그렇다.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 용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구원하지도 못했는데 그의 구원을 지지하고 기다려준다는 것은 지나친 어불성설이다. 그도 알맹이는 착한 사람이고 나이에 맞지 않는 순수한 영혼이라고 믿었다가 오히려 내가 지옥으로 떨어졌다.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쓰레기라고 생각해야만 내가 조금이라도 강해지고 맞서 싸울 수 있다.


사주에도 보통 고집이 아니라고, 신강한 사주들 중에서도 유독 고집이 너무 세서 남의 말을 절대 안 듣는다는 남편 사주. 나무가 너무 꼿꼿하다 보면 부러지기 쉽다던데 나는 더 이상 부러진 나무에 붕대를 감싸주기 위해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약하지 않다. 약한 건 내 마음이다. 내가 깊이 애정을 쏟고 돌봐야 할 것은 내 마음이다. 앞으로 나는 작고 하찮고 가여운 나의 말랑한 마음씨에만 찬탄하리다. 들판에 핀 이름 모를 작은 풀꽃, 사랑이 가득한 내 강아지의 눈빛, 조용히 손가락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산들바람, 나뭇가지에 청승맞게 걸려있는 초승달, 손잡고 걸어가는 다정한 노부부의 그림자 그런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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