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비밀을 품고 살아간다. 특히 사랑할 때는 더욱, 말하지 못할 비밀을 기억 속 깊은 곳에 숨겨두며 시간을 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을 사랑할수록 내가 아닌 나를 보여주고 싶게 된다. 이렇게 비참하고 미련하지 않은, 더 멋지고 쿨한 사람으로 나를 봐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비밀은 하나씩 늘어간다. 네가 이해심이 넓어 좋다고 하는 나는, 사실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 마음에 담아두는 찌질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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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피드에 올려져 있는 누군지 모를 사람이 찍어 준 사진들. 나의 피드에도 너의 피드에도 전 애인이나 전 썸남이 이쁘게 찍어줬던 사진들이 올려져 있겠지. 궁금하지만 굳이 묻지 않는다. 때로는 모르는 게 더 편하기에, 나의 짐작이 사실이 되길 바라지 않기에. 네가 환상 그대로의 여자로 남아있기를 바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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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이력을 따지자면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꽤 친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만큼 방탕한 생활을 즐겼었던 과거가 있기에. 화려하지만 부끄러운 그런 시절을 지냈었기에. 물론 네가 나를 만날 때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고, 나 역시 부끄러운 과거는 숨기고 싶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기에 형식적으로 이런 적이 있다 저런 적이 있다 과거를 얘기하던 때에, 너도 원나잇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꽤나 놀랐다. 나의 상상 속에 너는 누구보다 순수한 아이였기에. 기분이 나쁘면서도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동등한 조건에서 시작하는 것 같은 합리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나이의 정상적이고 매력적인 성인이라면 누구든 경험할 수 있는 행위임에도 너는 그러질 않았길 바랬지만, 나만 바라봐주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이기를 바랬지만, 과거는 과거인걸 하며 그냥 넘겼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과거는 훨씬 심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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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너의 전 남친 얘기를 듣게 됐다. 아니 전 썸남? 전 파트너? FWB? 모르겠다 암튼 그런 관계. 솔직히 알고 싶지 않았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중요하지 않다 생각했다. 그러나 불현듯 꺼내진 주제에 나의 호기심은 도저히 잠재워지지 않았다. 설마 하며 물었지만 역시나였다. 그래도 과거는 과거인걸. 뭐 어떡해. 너는 그래봐야 한두 번 이겠지만, 나는 꽤 많이 그런 관계를 가져왔기에. 내가 했다고 너도 했어도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했지만 너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할 수도 없기에.
질투 난다. 물론 너도 나의 전 여자들을 질투한다. 그래서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질투 난다.
사랑과 질투는 정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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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하는 사랑의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양쪽 모두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이 처음이기를 바라고, 나를 가장 사랑했기를 바랬지만, 분명히 다른 누군가와 같은 데이트를 하고 같은 사랑을 했었던걸 알기 때문에, 미래에는 내가 또 다른 남자도 대체되지 않을까 두렵다. 내가 처음이었었으면 좋겠고, 내가 마지막이 되고 싶다.
그래서 모두가 마음속에 비밀을 품고 사랑을 한다.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사랑을 한다.
참으로 잔인한 행위이다.
얼른 시간이 지나 너의 전 남자들은 잊히길 바랄 뿐이다. 너에게서도 나에게서도.
모순적이다. 모두가 비밀을 품고 살아가지만, 너를 더 잘 이해하고 싶기도 하지만, 모르는 게 더 좋을 거 같기도 하다. 이것도 현실 도피인가. 당당히 마주해야 하는가.
그래도 사랑하기에, 너의 사랑이 주는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기에. 나와의 아름다운 추억이 전 애인들과의 기억을 지워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