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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정 Sep 29. 2024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표면 — ESFJ 빌런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등장인물 박형식 MBTI

드라마 영화 속 등장인물 성격 유형 분석

박형식(배우 공정환 분) 성격 유형 ESFJ

국회의원 예영실의 10살 연하 남편. ‘무천사랑병원’ 원장이자 정신과 전문의. 수트가 어울리는 모델 같은 외모지만 이 도시에 소외되는 여성이 없도록 사회에 공헌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 같은 남자다. 이런 그의 행보가 얼마만큼 진심인지, 부인 영실에 대한 외조인지, 본인의 이미지메이킹인지 모르겠지만...(중략)... 이런 그를 누군가 은밀히 협박해 오는데...

–MBC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박형식의 첫인상 - 오로지 표면만 보이는 남자


드라마 내내 박형식의 캐릭터를 보면서 Fi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Fe 뿐. 그는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데 소극적인 인물이다. 사회적 가면 뒤에 숨은 인격의 얄팍함에만 시선이 갔다. 극의 중반이 넘어갈 때까지도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그의 사회적 지위, 깍듯한 말투와 에티켓뿐이었다. 표면 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


 (오해는 말자. Fe가 얄팍하다는 말은 아니다. 현실 속 대개의 ExFJ들은 외향형으로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적극 드러내고 관계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전혀 납작하지 않다. 박형식이 허구의 인물이고 드라마가 이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식에는 의도와 의미가 강하게 투영돼 있음을 감안해야.)


박형식은 공기처럼 떠 있으면서 그 무엇도 거스르지 않는다. 타인의 뜻을 앞세우고 그에 따라 자기 행동의 반경을 정한다. 늘 상대에게 ‘맞춰가면서’ 스무스하게 살아간다. 개인정비 시간을 활용해 사회적 연극의 무대 뒤쪽에서 은밀히 사적 욕망을 추구하긴 하지만 말이다.


박형식의 상호작용 방식 - <비침습적>


박형식은 매너가 좋다. 늘 사회적 필요에 맞춰 더함도 덜함도 없이 경제적으로 행동한다. 에티켓에서 벗어나는 언행도, 눈에 거슬리는 태도도 없다. 늘 정갈한 몸가짐. 패션 센스도 좋다. 상황에 맞춰 보수적으로 옷을 잘 입는 타입 ('옷을 잘 입는 사람'에는 여러 계열이 존재한다).


무천사랑병원 박 원장의 키워드: 번듯한, 훤칠한, 그럴 듯한.


그는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타인의 의사를 우선시한다. 줏대가 없어서? 아니다. 그렇게 해도 충분히 윈-윈의 상황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모두에게 부드럽게 말하고 모두를 존귀하게 대한다. 경찰서장, 부인, 환자와 간호사는 물론이고 봉사활동 온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결코 고압적이지 않다. 상대 면전에 억지로 자기 '자아'를 ‘들이미는’ 태도가 1도 없는 것. 흐르는 강물처럼, 그는 언제나 유동적이다. 마치 공기처럼  있지만 없는 듯.


한마디로 박형식의 성품은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침습적이지 않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박형식의 성격 유형 추정: 엣프제(ESFJ)


나는 박형식을 ESFJ로 본다. 외향적 감정형(Fe)으로서 박형식에게는 두 개의 행동 원칙이 있다:

1) 타인의 기분을 상하지 하지 않는 것

2) 분위기 싸하게 만들지 않는 것


박원장의 화법: 정말 완벽하게 실크 코팅을 한 화법. 이거야말로 Fe 화법이다.


극 중 수오 친구인 하설(김보라 분)이 두 번이나 병원으로 그를 찾아온다(6화). 주치의인 그에게 수오 면담을 부탁하러 온 것. 박 원장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수오를 통해 자기 치부가 드러날까 걱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하설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수오는 왜 하설이란 친구의 존재를 자기에게 감췄을까? 하설은 왜 기를 쓰고 수오를 만나려 하는가?

박원장에게는 꽤 중요한 의문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놓고 묻지 못한다. 조심스럽게 에둘러서 의중을 파악할 뿐이다. 그는 직선적으로 의문점을 파고들기보다는 정보가 자연스레 드러나길 기다리는 쪽이다. 결코 족적을 남기지 않는, 닌자 같은 남자.


그의 '소심한' 면이 드러나는 증거가 하나 더 있다. 직전 방문 때 하설은 별 모양 야광 스티커를 떨어뜨리고 갔었다. 그걸 발견한 박형식은 깜짝 놀라는데, 그 스티커가 살해당한 자신의 내연녀 다은의 것이었기 때문. 그렇다면 이제 하설의 정체가 심하게 의심되는 상황— 그런데 그는 직접 캐묻지 않는다. 그녀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찻잔 트레이에 스티커를 슬쩍 떨어뜨리고는 그녀 스스로 발견하도록 '넛지'한다.


하설이 스티커를 알아보자 박형식 왈,

"아. 어제 퇴근하려고 불 끄는데 뭐가 반짝거리더라고요. 누가 떨어뜨리고 갔나 봐요."

이런 뭉근한 소셜 테크닉은 ESFJ 유형의 특성과 부합한다.


상대에게 어떤 부담도 지우지 않는다. 모든 모서리에 문콕 방지 스폰지를 대놓듯이.


ESFJ유형 프로파일


엣프제 ESFJ 타입은 융의 인지기능 중 외향적 감정(이하 'Fe'로 통칭)을 주기능으로 하는 유형. 타인의 감정 데이터에 예민하게 감응하고 집단 내 조화를 추구한다.


관계에 헌신하는 ESFJ


ESFJ는 관계 안에서의 ‘신의’를 중요시하는데 이들이 말하는 ‘신의’는 해당 관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큰 영향을 받는다.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을 다 하는 것, 지역 공동체 안에서 지도자 계층에 요구되는 덕을 체화하는 것, 사회적 체면을 수호하는 것.


외향형이기에 속마음은 꺼내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현재 속사정이 어떠하든 간에, 대외적으로는 만사가 잘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보이는 게 전부’이기 때문.


완벽한 부부의 모습을 연출하고,  '사회가' 기대하는 말만 정확하게 할 줄 안다.


팀 플레이어 - 타인의 인정이 중요하다 (Fe)


이런 ESFJ에게 사회적 시선은 단순히 ‘중요하다’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Fe 타입에게 사회적 시선은 만능 잣대이자 최종 도달점이다. 뭔가가 진짜로 좋다면 사회적 눈에 좋아 보여야 하고, 남들에게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


지역 명문가에 장가를 갔고 아내는 지역구 국회의원, 자신은 지역 최대 병원 의사이자 병원장으로서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센터를 설립하고 지역경찰서와 협력하는 등 폼나게 공동체에 기여하는 삶. 지위와 인정에 민감한 사람이니 자신의 성취가 자랑스럽고, 그에 걸맞는 인정이 받고 싶을 것이다.


헌데,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혼인 관계에서 정작 나의 부인은 내 역할을 축소시키고 있다. 어린 남편을 자기 보호가 필요한 '작은 남자'로 바라보는 부인 예영실(배종옥)의 태도에 박형식은 상처를 받았다. 그걸 이겨내고 자존을 회복하기 위해 (부인과 다르게) 자신보다 약자인 '젊은 여자'들과 스쳐가는 사랑을 쉬지 않고 이어온 박형식. 그러던 중 10년 전, 큰 사고를 치게 됐고(우발 살인), 그로 인해 더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져버렸다. 사건 이후 부인은 나를 한없이 미약하게 볼 뿐이다. ‘철없고 무능한 범생이’


그럴수록 형식은 더욱 집착적으로 젊은 여자들과의 관계에 탐닉한다. ExFJ 최대의 열망이자 현재 삶 속에서 가장 결핍된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나 협조적이었어요. 알잖아요. 우리 부부 관계에 불필요한 부담을 지울 생각이 1도 없는 저랍니다.


변질된 '의리'— 박형식의 정당화 논리


나는 우리 팀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나의 파트너는
더 이상 나를 (남자로) 봐주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팀에 계속 머무를 것이다. 거기에 필요한 자존감은 외부에서 충당하겠다.


박 원장은 현재의 부인과 관계가 100% 만족스럽진 않다. 하지만 결혼을 깰 생각 같은 건 하고 있지 않다. 간간이 피우는 바람도 어디까지나 결혼 생활 지속을 전제로 한 부수적 일탈.


그는 예영실과의 혼인 관계에서 느끼는 안정감이 좋고, 부인의 야망과 권력으로 인해 현재 가지게 된 것들이 퍽 마음에 든다. 이 관계가 장기적으로 나에게 주는 종합적 만족감이 크기 때문에, 일시적 기분 따위를 내세워 결혼 생활을 위태롭게 할 생각이 없다. 아쉬운 게 있으면 혼자서 뒤에서 풀고 말지.


Fe유저의 독특한 의리 해석, 혹은 그 의리가 부패하기 시작할 때의 정당화 논리라고도 봐도 무방하지 싶다. 부인 예영실 또한 같은 Fe 타입으로서(enfj로 판단 중) 둘 사이에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묵시적 컨센서스가 존재하고 있을 것.  


내담 환자와 피지컬 본딩(bonding)을 시도하는 박원장(공정환 분).  


ESFJ의 발작 버튼은 어떻게 눌리나?


ExFJ 유형들은 나를 작게 보거나 내 성취, 노력과 희생을 당연시하는 말과 행동에 큰 모욕감을 느낀다.


그는 부인으로부터 자잘한 모욕을 받고 산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고, 나아가 이 관계가 자신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의 내부에서는 계산이 맞는다. 그래서 부인이 환자와의 관계를 비꼬고, 전화기를 빼앗고, 미행을 시켜도 절대로 판을 깨지 않으면서 버텨 낸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이 나를 모욕한다면?


11년 전 그날 밤, 내연녀 다은은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결혼 관계를 비웃고 부인 눈치만 보는 나약함을 조롱했다. 그 말을 들은 박형식의 퓨즈가 끊어진다. 자기보다 사회적으로  한참 '아래‘에 위치하는 한낱 ‘여자 고삐리’로부터 모욕을 당하자 야마가 돌아버린 것.

탁월한 외교관 엣프제(ESFJ)의 가면을 벗길 수 있는 건 고삐리의 방자한 태도 뿐. 잃을 거 없고 눈에 뵈는 거 없는 고삐리의 공격에 박형식의 눈이 돌아가던 10년 전 그날 밤


ESFJ 타입들이 사근사근한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속마음에서까지 활짝 열린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은 F 1번 타입이다. 선과 악, 힘의 우열, 지위 고하에 대한 가치 판단이 아주 뚜렷하다.


 ’'아랫것'의 거친 도전에 감정이 상한다. 그런데 ‘아랫것‘ 주제에 내가 가장 신성시하는 가치를 능멸한다? 게다가 내 사회적 평판을 망가뜨리겠다고 협박까지? ESFJ의 버튼이 세게 눌리고, 우리는 점잖은 사회적 가면 뒤에 숨어 있던 야수의 쌩얼을 보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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