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존재를 견디게 하는 정신의 무기’
Ⅰ
‘책’이란 하찮은 물건?
“책이란 분명 하찮은 구석이 있는 무용한 물건일지 몰라도 우리 생각 이상으로 훨씬 중요한 물건이기도 합니다.”
앞서 억압과 금지가 빚어내는 비극의 몇 가지 단면을 엿보았다.(제4화 『금단의 유혹』, 제5화 『페르시아의 여인』) 특히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는 지적(知的) 억압, 금서(禁書)가 불러일으킨 비극을 경험했다. 그리하여 과연 책이란 것이 ‘우리 생각 이상으로 훨씬 중요한 물건’ 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그렇다면 책에서 비롯된 비극도 있겠지만, 정반대로 책이 희망이요 생명이 된 사연은 왜 없겠는가?
여기 인류 최악의 수용소가 있다.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나치 독일의 수용소다.
소련의 ‘굴라그’(강제수용소)가 인간 존엄을 짓밟는 곳이었다면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나치 수용소는 거기에 더해 물리적인 존재마저 말살하는 곳이었다. 아우슈비츠는 나치 독일이 처음부터 ‘학살’을 위해 만든 수용소다. 그 대상은 유대인과 반나치주의자, 전쟁 포로 등이다. 피해자 수는 정확하지 않다. 처음에 이 수용소를 해방한 소련군은 이곳에서 학살당한 사람 수는 약 400만 명이며 그중 약 250만 명이 유대인이라고 발표했다. 이 수치가 과장되었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 유대인 피학살자 수는 110만 ~ 150만 명 정도라는 주장이다. 110만 명이든, 250만 명이든 엄청난 숫자임에는 변함이 없다. 악명 높은 독가스실이 처음 가동된 것은 1941년 9월이었고,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것이 1945년 1월 27일이었으니 3년 반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어갔다는 것은 끔찍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독가스실 화장장 등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시신을 처리하는 시스템을 갖췄으니 인간의 악(惡)은 상상을 초월하는 짓까지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무서운 사례라 하겠다.
이 정도면 ‘사유하는 수인(囚人)’이니 뭐니 하는 것은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 죽음의 수용소에도 ‘생각’이란 것이 존재했을까? 갇힌 사람들, 그리고 학살당하는 사람들은 물론, 가둔 사람들, 학살하는 사람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생각’이라는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한쪽에는 ‘공포’, 다른 한쪽에는 ‘살의(殺意)’라는 양극단만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안다. 학살로부터 한 사람이라도 구해내려고 노력하는 한 독일인 사업가의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러나 2024년 국내에서도 개봉됐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있다. 「존 오브…」에 그려진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은 수용소 내부의 ‘지옥’과 대비되는 ‘섬뜩한 평화’를 보여준다. ‘악(惡)의 일상화’다. 관련해서 ‘악(惡)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책,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한 보고를 통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는 책/한길사/2006)도 있다.
철조망 바깥이 그렇다면 그 안은 어떠할까? 지옥 속에도 ‘삶’이란 것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누리는 그런 ‘삶’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그 ‘삶’ 속에서 ‘책’을 발견한다. ‘하찮은, 무용한’ 물건 같지만,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이란 그야말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지옥 속에서 한줄기 가느다란 삶의 끈을 이어주는 ‘엄청난’ 물건이 될 수 있었다.
영화, 다큐멘터리, 소설 등 아우슈비츠를 다룬 기록물은 많다. 그러나 너덜너덜한 책 몇 권이 죽음의 문턱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우슈비츠의 수인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더해준 스토리는 특별하고 특별하다.
Ⅱ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 아우슈비츠의 사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안토니오 이투르베/북레시피/2020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실존 인물 디타 크라우스(Dita Kraus)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저자인 스페인 언론인 출신 작가 안토니오 이투르베는 이 소녀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BIIb 블록, 즉 ‘가족 수용소’에서 어떻게 책을 숨기고 아이들의 학습을 도왔는지를 정교하게 복원해 낸다.
디타 아들러(디타 크라우스의 작중 이름)는 10대 소녀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살던 프라하를 떠나 ‘테레진 게토’로, 거기서 다시 아우슈비츠로 옮겨진다. 게토에서 잠시 도서관 사서 보조로 일했던 경력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사서’로 승격한다. 수용소의 정식 사서란 이야기가 아니라, ‘비밀 도서관’의 숨겨진 책을 맡은 비밀 사서다.
그녀가 맡은 임무는 비밀도서관의 책을 몰래 숨기고 관리하는 것이다. 물론 대출과 회수도 이뤄진다. 책은 단 8권. 누군가 몰래 숨겨 들어와 기적처럼 들키지 않은 책이다. 수용소 책 반입은 사형이다. 당연히 디타의 사서직도 발각되면 사형이다. 모든 독재가 그러하듯, 나치도 자유를 숨 쉬게 하는 책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 비밀 도서관 장서에는 어떤 체계도 원칙도 없었다. 프랑스어로 된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 있는가 하면, 지도책도 있고, 러시아어 문법책도 있다. 표지가 떨어져 나간 것도 있고, 너무 낡아서 너덜너덜 해진 천 조각 같은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책’이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하다.
학교도 있다. 가족 수용소이므로 부모들이 강제 노역을 하는 동안 아이들을 통제할 수단이 있어야 했다. 게다가 인권 탄압 논란에 맞설 방패막이로 학교도 있다는 것을 선전할 필요도 있었다. 뜻있는 수인들이 수용소 당국을 이렇게 설득해서 ‘학교’랍시고 한 곳에 모여 나름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8권짜리 도서관은 비밀을 지켜야 했다.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책’ 6권도 있다. 책 내용을 잘 기억하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6명 있다는 뜻이다.
책은 저항할 수 있는 총도 아니고, 육신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음식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책은 아이들에게 ‘내일’이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책은 단지 지식이 아니라, 존엄과 존재를 회복하는 도구였다. 내일도 살아있을지 모르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교육을 포기하지 않은 어른들과, 글을 통해 세상을 꿈꾸고 싶었던 아이들, 그리고 그 희망의 중심에 선 디타가 있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존재할 수 있었다.
디타는 말한다.
“나는 책을 숨긴 게 아니라, 희망을 숨긴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살아남아 체코로 돌아갔고,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해 평범한 교사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잊히지 않았고, 이 책은 그 기억의 증언이자 경고로 남는다.
디타 크라우스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아우슈비츠에 필적할 만한 또 다른 비인간적인 수용소, 소련의 ‘굴라그’를 그린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제일권』에는 남편을 수용소에 보내고 홀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아내가 나온다. 힘들 때마다 ‘벨로모르;란 담배 한 모금에 시름을 날리던 그녀 - 나쟈의 이름 ‘나제즈다’가 바로 희망이란 뜻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희망’이 사람을 살게 한다. 그러므로 디타 크라우스가 지켜낸 책은, 아우슈비츠에서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존재를 견디게 하는 정신의 무기였다. 어떤 이는 좌절하고, 어떤 이는 타협하고, 어떤 이는 배반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책’은 삶을 지탱하고 존재의 존엄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 역할을 했다. 책은 희망이었다.
이 대목에서 세상의 모든 책이 금지되고 불태워지는 디스토피아가 문득 떠오른다. 『화씨451』(레이 브래드버리의 판타지소설/황금가지/2009). 우리는 지금 책이 넘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 자유 속에서 우리는 책을 과연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Ⅲ
책 훔치기 - 나의 인생 책
내게도 존재를 견디게 하는 정신의 무기가 되어준 ‘인생 책’이 있었다.
당신의 ‘인생 책’이 무엇이냐는 말에 선뜻 답변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책 저자는 누구이고 내용은 어떤 것이며, 거기에서 내 인생을 바꿔 놓은, 또는 언제까지나 잊을 수 없는 감명을 준, 그런 구절이나 문장 몇 개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인생 책’에 대하여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책은 내가 생애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아우슈비츠에서 디타 아들러가 지켜낸 책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떤 책인지, 누가 쓴 것인지를 잊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기억하고 있는 단어나 표현, 또는 구절이나 문장도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나의 인생 책이다.
그것은 내가 훔친 책이다.
책 살 돈이 없으면 어떻게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된다. 요즘은 워낙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없는 책은 거의 없다. 그러니 보통은 책을 훔칠 이유가 별로 없다. 책을 읽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책을 훔쳐서 되판다 해도 효율적인 도둑질이 못되기 때문이다. 무슨 대단한 희귀본이라면 몰라도.
나의 인생 책은 시골 한 구석의 허름한 책방에 꽂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훔쳐 읽었다. 한 권이 아니었다. 숫자는 기억 못 하지만, 아마 20~30권은 족히 될 것이다. 그 책들은 나의 인생, 나의 청춘 가장 암울한 시기에 한 줄기 빛처럼, 숨 막히는 감옥에 불어오는 한 가닥 신선한 바람처럼 생기를 불어넣어 주어 삶을 이어가게 해 주었다. 아우슈비츠 비밀 도서관의 책처럼. 그러므로 그것은, 그 책들은, 나의 인생 책이다.
나는 70년대 후반 최전방에서 육군 졸병으로 근무했다. ‘신성한 국방 의무’와 같은 뻔한 슬로건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에게 그 3년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기간은, 악몽 그 자체였다. 사생결단으로 이를 악물고 견뎌내야 하는 시험이었다.
대한민국 남자 모두 하는 군대생활에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이유가 있다. 어릴 때 당한 교통사고로 몸이 ‘온전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의학적으로’ 몸은 온전했다. 그러나 나는 생활의 모든 면에서 불편을 겪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몸의 모든 상태가 보통 사람의 60~70%밖에 안 되었다고 하면 대략 비슷한 표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생활여건도 열악했다. 전기, 수도는 없고 하루 종일 땅 파고, 뭔가 파묻고, 돌덩이 지고 나르고, 땔감 나무하고, 도로 보수하고… 도시의 막노동자와 옛 농촌의 머슴을 합친 것 같은 일과였다. 야간에는 근무 서고 시도 때도 없는 비상에는 참호에 뛰어들고… 도시 한복판에서 태어나 자란 데다 몸까지 성치 못한 내게 이런 일과는 하루하루가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 하는 극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부대 이동이 있었다. 후방으로 빠지니 그나마 민가와 가게도 있는 시골 마을이 부대 앞에 있어 더욱 좋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그 시골 구석에 기적처럼 서점이 하나 턱 하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다 부대 밖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보통 병사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일탈’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술집을 찾는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갈 곳이 딱이 없었다. 그런 내게 그 ‘기적의’ 서점이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요, 천국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외출에서 책방을 발견한 날의 기쁨을 아직도 기억한다. 삭막한 군 생활에서 새로운 안식처를 찾은 것이다.
최전방 말단 군부대에 도서관은커녕 자체 문고조차 있을 리 만무했다. 누군가 책을 가지고 오거나 우편으로 받아도 그걸 공유하는 것도 쉽지 않고, 있어 봤자 대중 잡지나 선정적인 주간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빈약하더라도 서점이란 곳이 있으니 이것은 당시 나에게는, 극단적으로 과장하면, 국립중앙도서관이 통째로 굴러온 셈이다.
당시 육군 병장 월급이 1천5백 원 전후. 고급 담배 한 보루 값의 절반 정도나 됐을까? 단행본 한 권 값은 1,000원 내외였다. 그러니 월급 다 털어도 채 2권을 못 산다. 물론 집에서 돈을 가져다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쓸데없는 고집으로 돈을 가져다 쓰지 않았다. 게다가 그때는 3년 복무에 특별한 끗발이 없으면, 휴가란 것도 1년에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그러니 책 구경은 꿈꾸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그 시골 서점은 나의 전용 도서관이 되었다.
책을 고른다. 구석에 자리 잡고 읽는다. 귀대 시간이 되면 읽은 곳 페이지를 기억하고 책을 제자리에 꽂는다. 물론 책을 절대 훼손해서는 안 된다. 나는 지금도 책을 아주 곱게 읽는다. 절대 어떤 표시도 하지 않고 책장을 접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때 그런 버릇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 외출 때, 다시 서점에 가서 이어 읽는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책을 읽는다.
처음엔 그것도 너무 좋았다. 그러나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인지상정. 가끔 나가서 읽는 것이 감질나는 일이 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때 당시엔 문고본이 유행했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로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과 서민층에 인기를 끌었다.
겨울에는 두툼한 옷을 입는다. 뭔가를 숨기기 좋은 것이다. 하루는 문고본 책을 슬쩍했다. 두툼한 데다 주머니가 큰 야전 점퍼를 입었기에 티 나지 않게 가지고 나올 수가 있었다. 처음이라 심장 박동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손발은 물론 몸까지 떨렸다. 아마 얼굴도 벌겋게 상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책을 한 권 훔쳐 나오는 데 성공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두 번째는 훨씬 쉬웠다. 그리고 회가 거듭될수록 편안하고 대담해졌다. 처음 느꼈던 양심의 가책도 사라졌다. 고이 읽고 제자리에 갖다 두니까 도둑질은 전혀 아니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대출 전용 도서관이 생기니 고달픈 병영생활도 한결 윤택해진 느낌이었다. 책방 주인아저씨는 안경 너머로 가끔 둘러볼 뿐 나의 존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다. 완전 범죄의 희열이랄까, 그런 비슷한 느낌까지 들어서 독서의 기쁨은 배가되었다. 단언컨대 단 한 권도 반납하지 않은 책이 없었으며, 단 한 권도 낙서하거나 훼손하지 않았다. 요컨대 절대 서점에 금전적인 손해는 끼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성의 표시로 책을 몇 권 사기도 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나의 강변은 그랬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특출 나게 잘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애서가나 장서가도 아니며, 인문학 등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아니다. 그저 책 읽는 것을 즐기는 지극히 평균적인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20대 초반, 내 인생 최악의 암흑기,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 속에서 살아갈 힘을 잃었던 그 한 시기를 무사히 살아낼 수 있게 해 준 것은 바로 그 시골 서점의 문고본 책이었다. 읽은 책 제목과 내용은 다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아기에게 건강을 선물한 모유처럼 내 정신 밑바닥에 잘 저장되어 있다.
수십 년 만에 이토록 달콤한 추억을 되새기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도 책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내 손에 잡힌.
그리고 오늘, 그 즐거웠던 ‘책 도둑질’을 회상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주인아저씨는 정말 몰랐을까?"
Ⅳ
『책 도둑』
『책 도둑』/마커스 주삭/문학동네/2022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군대 시절 책 도둑질을 일깨워준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에서 『화씨 451』을 거치면서 책에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만나 보았다. 그것이 나를 이 책, 『책 도둑』으로 이끌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아우슈비츠의 사서 디타 아들러는 수용소에 갇힌, 나치 인종 청소 범죄의 피해자다. 그런데 여기서 만나는 동년배 소녀는 가해자, 전범국 나치 독일의 국민이다.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두 소녀의 대비가 흥미로워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물론 ‘책 도둑’ 리젤 메밍거는 디타 아들러에 비하면 훨씬 좋은 상황이다. 위험 부담은 있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젤의 책과 디타의 '책'은 다르지 않다. 아니다. 리젤도 목숨을 걸었다! 독일인이어서 생활 여건은 더 나았지만,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위험부담이 더 컸을 수도 있었다. ‘조국에 대한 배신’이었으므로.
작가 마커스 주삭은 독일계 호주인이다. 이 책은 그가 자라면서 들었던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뮌헨 공습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실제 그것은 이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마커스 주삭은 소재, 스토리를 끌어가는 방식, 세부적인 묘사 등에서 매우 독특한 면모를 보여주는 작가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맛도 쏠쏠하다.
우선 화자가 '죽음'이다. 그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영원의 컨베이어 벨트에 싣는” 일을 한다. 말하자면 '저승사자'인 셈이다. 그런데 그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자기가 데려가는 사람과 그 주변을 잘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며, 때로는 많은 부분을 공감하기도 한다. 이 책의 스토리는 두 가지를 뼈대로 한다. 하나는 바로 이 '죽음'이 관찰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인공인 '책 도둑' 리젤 메밍거가 기록한 것이다.
리젤 메밍거의 기록, 즉 '책'은 그렇다면 어디서 난 것일까? 소설의 첫머리는 리젤 메밍거의 동생이 죽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때 '죽음'은 리젤 메밍거를 처음 알게 되었고, 연민을 가지고 지켜본다. 훗날 리젤 메밍거가 나이가 들어서 죽을 때, '죽음'이 데리러 온다. 그는 리젤 메밍거를 알아보고 리젤이 떨어뜨린 책, 즉 그녀의 기록을 슬쩍 '훔친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리젤은 왜 '책 도둑'인가? 무대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뮌헨 인근의 ‘몰힝’이라는 소도시의 ‘힘멜’이라는 거리다. 리젤은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함께 그곳으로 가는 여행 중이었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부모와 헤어지게 되었고, 어머니가 이들을 위탁가정에 맡기러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행 중에 6살 배기 남동생이 죽는다. 기차에서 내려 동생을 매장한다. 이때 일을 마치고 가던 일꾼 하나가 책을 떨어뜨린다. 제목은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리젤은 그 책을 주워 돌려주지 않는다. 첫 번째로 훔친 책이다. 그래서 리젤은 ‘책 도둑’이 된 것이다.
리젤은 10살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글을 읽는 것이 서툴다. 전쟁 통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다. 여행은 계속된다. 그리고 리젤은 한스와 로자 후버만 부부에게 인계되고, 어머니는 떠난다. 양부모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가슴이 철렁했다. 아주 기가 세고, 강인한 인상을 주는 양어머니 로자가 보자마자 대뜸 리젤을 “자우멘슈”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암퇘지”란 비속어다. 그러니까, 우리말 식으로 옮기면 “야, 이 돼지 X아!” 이런 식으로 불렀다는 뜻이다. 가슴이 철렁한 것은 ‘아 여기서 이제 리젤의 힘겨운 더부살이가 시작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우였다. 로자는 그렇게 거친 듯했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이었고, 양아버지 한스도 글 읽는 것을 가르쳐주고, 같이 연습하는 등 리젤을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리젤은 또 절친도 생겼다. 장난꾸러기 같은 이 녀석은 틈만 나면 리젤에게 “뽀뽀 한 번 어때, 자우멘슈?”라고 추근대지만, 리젤이 하는 모든 것을 지지해 주고 함께 하며 도와주는 단짝이다. 녀석은 어느 날 폭격으로 결국 ‘뽀뽀 한 번’ 숙원을 이루지 못한 채 ‘죽음’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난다.
양아버지 한스는 1차 대전 참전 용사다. 거기서 유대인 전우들과 격의 없이 지내고 함께 싸웠으며, 서로에게 목숨을 빚졌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나치에 조용한 저항을 이어간다. 예컨대 독일인들이 유대인의 집 담벼락에 페인트로 표시를 하고, 저주의 욕을 낙서처럼 써 놓으면, 유대인들이 한스에게 덧칠을 해서 그것을 안 보이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한스는 페인트공이다. 그러면 두말없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칠해준다.
어느 날 한스의 집에 유대인 청년이 찾아오고, 한스 네는 그를 지하실에 숨겨준다. 로자와 리젤까지 모두 공범이 되어 비밀을 지키느라 애를 쓰는 것은 물론이다.
리젤의 본격적인 책 도둑질은 시장의 집에서 이뤄진다. 세탁부인 한스의 양어머니 로자에게 시장 부인이 세탁물 맡기는 것을 중단한다고 통보한다. 다른 이유는 없고 단지 전쟁통에 살림이 어려워져 모두들 세탁물 맡기기를 그만두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젤은 그 집 책을 훔치는 것으로 보복한다. 시장 부인의 서재는 다양한 책으로 가득했다. 물론 금서도 많았다. 리젤은 ‘뽀뽀 한번 어때, 자우멘슈?’의 도움을 받아 수시로 시장 집에 침투해 책을 훔친다. 그동안 읽기 실력도 크게 늘었음은 물론이다.
마침내 지하실에 숨은 유대인 청년과 리젤은 책을 쓰기 시작한다.
‘분서’의 삽화도 있다. 나치 독일은 대대적으로 ‘불온서적’을 불태우는 행각을 벌였다. 리젤이 사는 곳에서도 ‘분서’ 행사가 열렸다. 이때 리젤은 불더미 속에서 채 불이 붙지 않은 책을 슬쩍 또 ‘훔친다’. 『화씨 451』에서 주인공 가이 몬태그가 불타는 노파의 집에서 책을 한 권 슬쩍하는 장면과 같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도 같으리라.
리젤에게 책은 하나의 기념비다. 사실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그런 책이 실제로 있을 법하지도 않지만)라는 것이 리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리젤은 말한다. 의미가 있다고.
…무슨 말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 책이 무슨 내용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책이 의미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p.58)
그렇다. 리젤에게 그 책은 어머니와 동생의 영혼이 담긴 일종의 그녀 만의 ‘성물(聖物)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죽어 나가고, 저마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다. 리젤 메밍거는 책을 훔쳐 읽고, 숨겨준 유대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며 책을 쓴다. 리젤 메밍거에게 책은 살아 있음의 증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시장 부인은 늘 서재로 침투할 수 있도록 문을 잠그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서 한스 후버만과 리젤 메밍거 양부녀는 나치에 대한 소리 없는 저항을 이어 나간다.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역사, 특히 전쟁의 잔인한 수레바퀴가 어떻게 섬세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을 무신경하게 무너뜨리는지,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피어나는 인간애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작가는 ‘죽음’의 눈을 빌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커스 주삭이란 작가 이름도, 『책 도둑』이란 제목도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내 눈에 띄어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이란 책이 다음에 읽으라고 추천해 준 것처럼 내 책상에 놓였다. 그리고 수십 년 전 나의 책 도둑질을 일깨워 주었다. 그때 서점 주인아저씨는 이 책에 나오는 시장 부인처럼, 내가 책을 가져갈 수 있도록 활짝 열어 놓으셨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극도의 무기력 속에 한없이 고꾸라지기만 하던 나를 일으켜 세워준 그 시골 서점의 책들.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나는 행복하다.
여러분은 책과 관련된 어떤 멋진 추억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