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건배를 [1]

흥겨운 축제 분위기 뒤에 남겨진 무거운 이야기

by 제이슨

『나의 투쟁』- 아돌프 히틀러

『파우스트 박사』 - 토마스 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하인리히 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악의 해부』 - 조엘 딤스데일


호프브로이하우스


저녁 8시,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 밴드가 어떤 곡을 연주하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건배! 외침과 함께 울려 퍼지는 합창, 환호, 술, 흥분.

발까지 구르면서 따라 부르는 노랫소리는 고조되었고,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도취된 듯 모두 하나가 되었다. 알 수 없는 섬찟한 느낌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군중 속에서 나만 소외된 느낌.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 그렇게 노래는 끝나고 사람들은 술을 들이켜고 자리에 앉았다. 곡예하듯 맥주잔을 대여섯 개씩 양손에 잡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민속의상 입은 아가씨들이 다시 나타났고 분위기는 이전으로 돌아갔다.


뮌헨 시내에서 버스를 타면 묘한 느낌을 받는다. 망토처럼 생긴, 아래로 퍼진 스타일의 짧은 코트에 깃털 꽂은 모자.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자세로 질서 정연하게 앉은 모습이 이상한, 때로는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독일 병정’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하고, 로봇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두 모습은 내게는 독일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이것은 내가 1980년대 전반 뮌헨에 잠시 살 때 형성된 것이다. 이후 여러 번 뮌헨을 방문했지만 다시 그런 감정을 느낄 기회는 없었다. 관광객으로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호프브로이하우스.

뮌헨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역사는 깊다. 1589년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5세가 당시 뮌헨의 맥주 품질에 실망한 나머지 직접 양조장을 개설한 것이 효시다. 어지간히 술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런 만큼 호프브로이하우스는 뮌헨 맥주의 질을 한 차원 높여 놓았을 것이다. 순도 높은 맥주를 생산하고, 그래서 독일식 라거 중 헬레스(Helles)와 둔켈(Dunkel)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양조장에서 오늘날과 같은 맥주홀로 거듭난 것은 1828년. 당시 군주였던 루트비히 1세가 양조장을 일반 시민에게 개방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897년 지어진 것으로 바이에른식 바로크 양식의 3층 규모로 3,000명을 수용한다.

북부 유럽의 겨울 날씨는 음울하다. 뮌헨은 독일 남부에 속해 기후가 좋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다.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별로 없지만, 습도가 높아 추위가 스멀스멀 뼈에 스며든다. 기분 나쁜 추위다. 게다가 해가 일찍 진다. 일단 오후만 되면 거의 저녁 느낌이고, 대여섯 시면 벌써 밤 분위기다. 거리도 한산하고, 가게들도 식당이나 주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일찍 문을 닫는다. 한마디로 을씨년스럽다.

호프브로이하우스 외관.jpg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 앞 거리 모습

그런 분위기에서 호프브로이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신천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웬만한 실내 체육관보다 큰 느낌의 드넓은 실내에 흥겨운 민속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수백 명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즐거운 공기가 높은 천장까지 가득하다. 나는 술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술맛도 잘 모르지만, 이곳 맥주는 신선했다. 분위기와 맥주 맛… 가히 뮌헨의 관광명소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 곡이 연주되기 전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밴드가 어떤 곡을 연주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잔을 들고 건배를 외치며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일어서고, 발을 구르기도 했다. 순식간에 그 큰 홀은 우렁찬 노랫소리, 발 구르는 소리로 가득 찼다. 압도적인 분위기였다. 모두가 흥겨워했다. 하지만 나는 잔뜩 위축되었다.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차례 ‘광풍’이 몰아치고, 분위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때 전통 복장의 민속 밴드(Blaskapelle)가 연주하는 곡은 ‘Ein Prosit(건배)’. 가사는 “Ein Prosit, ein Prosit der Gemütlichkeit…(건배! 건배! 이 즐거운 분위기를 위하여!)”로 시작된다. 특이할 것이 없는 흥겨운 권주가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축제다. 많은 관광객이 그렇게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호프브로이하우스 서빙걸.jpg 맥주홀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내부

그러면 나는 왜 그것이 불편했을까? 내가 술을 즐기지 않아서? 그것 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마치 어떤 적을 향해 돌진하는, 전투를 앞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구호와 출정가와 같은 느낌이었다. 웃고 떠들면서 건배를 외치고 술을 마시는 것…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유쾌한 해방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어쩐지 일사불란한 기계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거기서 전체주의의 냄새, 나치의 냄새를 맡았다면 지나친 과민이었을까?

그 느낌의 실체를 깨달은 것은 한참 후였다. 호프브로이하우스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바로 이 자리가 100여 년 전, 한 사내가 "우리의 적은 유대인이다!"라고 외친 곳이었던 것이다. 그 사내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고, 그 말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악의 서막이었다. 그 현장은 바로 이 호프브로이하우스 2층 연회장이며, 그 장소는 지금도 그대로 있다. 당시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정치 모임의 중심지 중 하나로 식사와 음주를 겸한 연설 공간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뮌헨은 1차 대전 패전으로 불만과 혼란이 큰 도시였고, 그런 불만을 해소하는 장소가 또한 맥주홀이었던 것이다.

1920년 2월 24일 호프브로이하우스 2층 연회장에서 열린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NSDAP)의 집회에서 당시 31세의 무명 정치인이었던 아돌프 히틀러는 25개 조항의 강령을 발표한다. 그 핵심 내용은 △독일인의 피를 지닌 자만이 국민이라는 선언 △유대인의 권리 제한 △전승국에 대한 복수와 재무장△강한 국가와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성 등이었다. 이렇게 히틀러는 대중 정치무대에 본격 등장했고, 이로써 이곳이 나치당의 정치적 출발점이 된 것이다.

오늘날 이곳에는 이와 같은 역사적 표식은 없다.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나치와의 철저한 단절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 투어를 요청하면 가이드가 이 같은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그곳에서 나치의 숨결을 느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하다. 아마도 사람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함께 외치는 구령 같은 건배 소리, 높이 쳐든 맥주잔, 행진곡 풍의 권주가… 이런 것들이 전체주의적인 동원령 같은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시내버스의 일사불란하고 질서 정연한 승객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더욱 섬뜩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거기서 내가 되뇌었던 것은 “이 사람들 또 한 번 일을 저지르는 것 아냐?”라는 것이었다. 친절하고 지성미 넘치는 지금의 독일인들을 보면 그럴 일은 없겠다 싶기는 하지만…


누가 피해자인가?

우리는 앞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책을 희망으로 부여잡고 살아낸 두 소녀를 만나보았다.(제6화 「책 지킴이와 책 도둑」) 유대인 소녀 디타 아들러는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용감하게 책을 지킴으로써 희망을 지켜냈다.(『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안토니오 이투르베/북레시피/2020) 독일인 소녀 리젤 메밍거는 '책 도둑'이 됨으로써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삶의 온기를 잃지 않았다.(『책 도둑』/마커스 주삭/문학동네/2022) 한 사람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 유대인이고, 또 한 사람은 가해자 독일인이다.

호프브로이하우스의 경험을 떠올리면, 이들 두 소녀를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을 느낀다. 가해자는 광기 서린 이데올로기다. 전범국과 피해국은 극명하게 나눠진다. 그러나 각각의 나라 국민 대중으로 시선을 돌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해국 국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치 독일의 전사자는 500만 명, 제국주의 일본은 24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한다. 전쟁 중 공습 등 연합군의 공격으로 막대한 민간 피해도 입었다. 전후에도 잿더미가 된 도시에서 온갖 곤욕을 치렀다. 그들이 일으킨 전쟁, 그들이 저지른 학살을 생각하면 당연한 형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진다. 나치와 일제의 전체주의 정권은 국민을 소모품으로 만들고 전장으로 내몰았다. 말하자면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하기 전에 먼저 독일인들의 양심을 죽였고, 결국은 굶주림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일제도 마찬가지다. 결국 전체주의는 자국민을 먼저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기라고? 아니다.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마스, 이슬람공화국인 이란 등이 극명한 사례다. 하마스의 경우, 이스라엘의 과잉 공격은 비난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 하마스는 병원 학교 등을 이용해 공격기지를 구축하고 민간인을 방패막이로 삼는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발생하는 민간인 피해를 내세워 선전전을 벌인다. 전쟁을 위하여 지하기지를 구축하고 온갖 무기를 구입한 막대한 자금을 민생에 투입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역으로 대(大)이스라엘을 꿈꾸는 쪽에도 해당될 수 있다.

여기서 각국 지도자들이 내세우는 것은 이른바 ‘위대함’ 내러티브다. 중국, 러시아, 인도, 튀르키예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 정부도 궤를 같이 한다. 일부 두드러진 나라만 열거했지만, ‘위대한 과거’를 재현하겠다는 나라는 지구상에 수없이 많다. 아니 어쩌면 모든 국가 모든 민족에게 이 욕구는 잠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과잉이다. 자칫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신념에 휩쓸려 비극적인 상황에 빠져들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국가나 민족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정치인들의 호언장담은 십중팔구 국민의 희생을 초래한다. ‘위대함’은 대가를 요구한다.

권주가가 울려 퍼지고 모두가 술잔을 높이 드는 순간, 우리의 주의력은 마비될 수 있다. 그 결과 전체주의적 광풍에 휩쓸리면 깨닫지 못하는 새 희생자가 되고, 마침내 가해자가 된다. 그 대가는 참혹하다.


‘가장 효과적인 선동’의 비극적 결과


『나의 투쟁』/아돌프 히틀러/동서문화사/2014

맨 손으로 오물을 주무르는 느낌이다. 그러나 왜 독일이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보기 위해 역겨움을 참고 읽는다.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표지

호프브로이하우스에 깃든 망령? 그 울림을 기록한 책이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 폭동이 미수에 그친 후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고 란츠베르크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감옥에서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 이념과 그 실현 전략과 계획을 세세하게 기록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번역본은 1,1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노고를 무시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없지만, 번역이 쉽게 읽히지 않는다. 독일어가 워낙 사변적인 특징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 많았다. 게다가 내용 자체도 기분이 나쁘다. 그러므로 읽는 데 매우 큰 인내력을 요구한다.

어린 시절, 그리고 젊은 시절의 삶과 정신적인 모색을 묘사하는 첫 부분부터 신빙성이 높지 않은, 자화자찬의 느낌이 강한 글이 거부감을 준다. 또 논리적이고 깊은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증오와 왜곡, 피해망상의 덩어리가 툭툭 불거진다. 독서 평을 보면 히틀러의 의지와 그 실천력에는 ‘경의를 표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옳다고 보지 않는다. ‘경의’라니!

핵심은 독일 민족의 쇠락은 자본 금융 의회 언론을 장악한 유대인 때문이며, 따라서 유대인을 박멸하고 독일 민족의 생존 공간 확보를 위해(레벤스라움/Lebensraum) 이웃 나라를 점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동쪽의 슬라브족도 노예화 또는 제거 대상이 된다. 그 이론적 근거는 이른바 ‘사회진화론적 세계관’, 즉 인류는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을 지배하며 발전해 왔다고 믿는 것이다. 약한 자를 도우면 사회 전체가 병이 들기 때문에 약한 자, 약한 민족, 악한 민족은 절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장애인 안락사, 인종청소 등으로 이어짐은 물론이다.

이 같은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며, 국가 그 자체인 유일한 정당이 선전선동을 통해 전 국민을 강한 투쟁으로 결속시켜야 한다. 의회는 일사불란한 국가 동원체제를 해치는 ‘유대인의 음모’이다. 개인은 무가치하며 민족의 보존 도구인 국가 공동체의 목적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동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 된다. 히틀러의 선전 전략은 단순한 메시지와 하나의 타깃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타깃은 유대인이다.

이것은 히틀러가 만들어낸 자기도취적 서사이자 광기와 증오, 피해망상을 결합한 ‘감정 기반 이념’이다. 급류는 모든 것을 휩쓸어간다. 숱한 지성인, 철학자, 교양 시민… 잠시 멈춰 돌아보고 생각할 틈이 없다. 도피하거나 침묵하거나. 그러나 침묵은 곧 휩쓸려가는 것을 뜻한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공범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솔제니친식 저항은 이랬다.

“같이 거짓말 하자!”

“나는 빼고 해라!”

그래서 그는 수용소로 끌려갔다. 스탈린과 히틀러는 각각 좌우 양 극단의 대척점에 있었지만, 논리는 같았다. 그래서 이 둘은 ‘전체주의’란 개념으로 함께 묶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독일 국민 모두는 히틀러의 광풍에 휩쓸려 들어갔다. 어떤 이는 적극적으로, 어떤 이는 마지못해 나치 당원이 되고 독일군 병사가 되었다.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시민들은 그렇게 해서 먼저 피해자가 되고, 그다음에는 공범자가 되었다.

히틀러의 망령은 지금도 살아있다.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 모든 공동체에게는 ‘유대인 같은 놈’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에게 그 ‘유대인’은 ‘이민자’다. 이는 가장 손쉬운 배제의 논리다. 피해망상의 논리로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그는 속삭인다.

“네가 힘든 것은 저 놈 때문이야.”

그러면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리는 듯하다. 생각한다. ‘그래 어쩐지 이상하게 일이 안 풀린다 했더니, 저 놈이 방해를 했군.’ 나의 잘못, 무능, 실수 등은 모두 가려지고, 따라서 자존감은 올라간다. 다 필요 없고, ‘저 놈’만 없애면 만사형통이다. 그래서 『나의 투쟁』을 읽고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니 읽을 필요도 없다. 이성과 논리보다 감정은 손쉽게 전이되므로. 움베르토 에코가 옳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겠지만, 군복은 입지 않을 것이다.” 파시즘은 영원하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도처에 ‘독일인도 아니면서(!)’ 한 팔을 쳐들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족속들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파우스트 박사』/토마스 만/민음사/2010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표지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악마에게 영혼을 판 천재의 이야기다. 그것은 곧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먹은 나치 독일의 은유다.

전쟁이 끝나고, 나치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를 바라보는 독일인들은 처참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전쟁 피해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양심적인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엄청난 죄악에 경악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반성’이란 표현이 사치스러울 정도였을 것이다. 독일인은 유럽에서도 양심적 지적 수준이 높은 민족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이토록 비인간적인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왜?’라는 답이 없는 물음을 끊임없이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는 바로 그런 자괴감에서 나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토마스 만(1875~1955)은 20세기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작가로 192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강한 휴머니스트 성향으로 1차 대전 당시부터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등으로 국내 여론에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그의 기질은 당연히 나치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났고, 결국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3년 프랑스를 거쳐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다. 망명 중에는 영국 BBC를 통해 반나치 독일어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마의 산』, 『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등이 있다.

토마스 만은, 전후 ‘나치 부역자’로 밝혀진 많은 지식인들에 비하면 일관된 반나치 투쟁으로 존경받을 만하다. 양심적인 지식인들로 알려졌던 사람들이 나치에 동조하고 협력했던 사실이 밝혀져 우리에게 충격을 준 사례는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전후 독일의 양심으로 추앙받았던 루이제 린저는 아들의 폭로로 나치 부역사실이 드러났고,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는 뒤늦게 청년 시절 나치 친위대 SS 근무 사실을 고백했다. 독일 철학계의 거두 마르틴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 재임 중 나치당에 가입하고 학생과 교수들에게 충성 맹세를 독려했으나 전후에는 "정치에는 어울리지 않았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해 논란이 되고 있다.

장편소설 『파우스트 박사』의 부제는 ‘한 친구가 이야기하는 독일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이다. 부제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작중 주인공은 천재 작곡가 레버퀸이며 화자는 그의 어릴 적부터 친구인 차이트블룸 박사다. 제목인 ‘파우스트 박사’는 레버퀸의 마지막 작품 ‘파우스트 박사의 비탄’에서 따온 것이다.

파우스트는 독일 문학에 종종 등장하는 소재다.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괴테의 『파우스트』다. 파우스트는 신학과 마술에 몰두하면서 예언자 노릇을 했던 종교개혁기의 실존 기인(奇人)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같은 행적이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서는 악마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에 따라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인물로 형상화되어 민담과 전설로 굳어진 것이다. 즉 이 작품 속 레버퀸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천재적인 음악 작품을 창작해 내는 것이다.

차이트블룸과 레버퀸은 함께 성장하면서 아름다운 이상을 꿈꾼다. 레버퀸은 어릴 때부터 천재성으로 남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오만하고 고독하며 주변의 모든 것은, 친구와의 우정까지도,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 희생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창작을 위하여 사랑과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버린다. 그 대가로 그는 처절하게 몰락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마지막 순간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지만, 토마스 만의 레버퀸은 스스로 그 구원의 가능성마저 차단한 채 나락으로 떨어진다.

레버퀸의 음악은 전위적이다. 12음기법, 무조 음악, 복잡한 캐논과 다성음악 양식의 현대적 재구성 등 기성 음악과는 확연하게 다른 기법을 선보인다. 모든 음악적 전통을 극단적인 냉정함으로 재구성해 불협화음 속에서 엄혹한 수학적 지성 체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음악의 파괴를 통한 창조라고 할까? 이것은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 즉 파시즘이 득세하는 상황과 맞물려 ‘독일 정신의 몰락’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레버퀸뿐만 아니라 작중 인물들에게서도 그런 점을 느낄 수 있다. 신학도 음악도 사랑도 모두 왜곡되고 타락한 형태로 묘사된다. 모두가 이상을 추구하지만, ‘위대함’이란 허구에 매달려 인간 정신을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다.

음악적인 지식이 부족한 데다 글로 표현된 것이어서 나로서는 그 음악을 음악으로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쇤베르크의 음악을 모델로 했음은 바로 알 수 있다. 실제 토마스 만도 그렇게 밝히고 있다. 이는 소설의 작품성과는 별도로 윤리적인 논란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오스트리아계 유대인으로 파시즘의 피해자다. 그런 그의 음악을 차용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레버퀸의 음악으로, 타락한 독일 정신의 상징으로 묘사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토마스 만은 이에 대해 쇤베르크에게 “음악적 장치로 사용했을 뿐, 당신을 모델로 한 것은 아니며 당신의 철학이나 윤리와는 무관하다”라고 해명했지만, 쇤베르크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파우스트 박사』는 독일 파시즘에 대한 처절한 고백이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에 답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참회도 아니다. 다만 독일 정신의 철저한 타락을 낱낱이 밝혀 보임으로써 참회를 대신하고 있다고 할까…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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