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떻게 악마가 되었나?
제8화(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건배를 [1] 흥겨운 축제 분위기 뒤에 남겨진 무거운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나의 투쟁』- 아돌프 히틀러
『파우스트 박사』 - 토마스 만(이상 제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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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하인리히 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악의 해부』 - 조엘 딤스데일
Ⅰ
피해자에서 공범자가 된 사람들의 침묵
독일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 그곳에서 느낀 알 수 없는 불안감, 또는 불편함을 이야기했다.(제8화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건배를 [1]) 그것은 전체주의 악몽의 그림자였다. 호프브로이하우스는 그냥 단순한 맥주홀이 아니라 독일은 물론 세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사건의 한 장면을 품고 있는 곳이다. 물론 여러분이 관광지로서 그곳을 방문했다면, 그런 이유로 유쾌하고 흥겨운 그곳에서의 시간을 망칠 필요까지는 없다.
“함께 거짓말하자”라는 꼬드김에 “나는 빼고 해라”라는 일종의 소극적 저항도 소개했다. 솔제니친은 그렇게 거짓말 대열에서 빠짐으로써 스탈린시대 악명 높은 소련의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고초를 겪는 피해자가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침묵하는 다수를 무대로 끌어내어 가해자로 만들어버린다. 전범국에서 태어나 그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 만으로, 자신의 의사에 관계없이, 전쟁범죄라는 기계의 한 부속품 역할을 한다. 그들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인리히 뵐/열린책들/2011
197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하인리히 뵐은 2차 대전 독일군 ‘참전용사’다. 1917년 쾰른에서 태어나 쾰른대학교 독문학과에 입학했으나 곧 전쟁에 징집된다. 프랑스, 루마니아, 헝가리, 러시아 등지의 전선을 전전하면 4차례 부상, 탈영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미군에 포로가 되어 종전을 맞이한다. 그의 집안은 반(反)나치 성향이었고, 그가 탈영한 것은 ‘히틀러 때문에 죽을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징집을 피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치 군복을 입고 싸웠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자신의 신념에 관계없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전체주의, 국가주의에 의해 먼저 희생자가 된 전형적인 사례인 것이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바로 그 강요된 침묵을 겪은 이의 기록이다.
제목은 미국 흑인 영가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and he never said a mumbling word…” 성경에서 예수가 체포되어 심문을 받을 때 침묵하는 구절을 모티브로 한 곡이다. 그렇게 ‘침묵’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심 주제가 된다.
프레드와 캐테는 가난한 부부다. 세 들어 사는 집, 정확히는 방이 너무 좁아 캐테와 세 아이는 집에 살고 성당의 전화교환수로 일하는 프레드는 떠돌아다닌다. 부부 관계는 가끔 싸구려 호텔이나 인적 없는 으슥한 곳에서 만나서 이어간다. 삶은 무미건조하고 아무런 희망 없이 그냥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전부다. 1장의 화자는 프레드, 2장은 캐테…이런 식으로 번갈아 가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프레드는 술꾼이다.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싫어해서 전쟁 중 포로들을 가혹하게 취급하는 데 대해 저항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시끄럽게 군다고 아이들을 때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심하게 자책하고 있다. 캐테가 묘사한 프레드는 ‘다른 남자들은 진지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모든 것을 일찍부터 무관심하게 여기는 남자의 얼굴.’(p.58)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종종 전쟁 중에 알게 된 사람이 일하고 있는 역 수화물보관소 의자 아래 나무판자 사이에 기어들어가 온갖 소음 속에서 잠을 잔다. 그리고 “캐테와 아이들 생각이 나면 나는 가끔 그 아래서 울기도 한다. 술꾼의 눈물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양심의 가책이 아니라 그저 고통이라 부르고 싶은 무언가를 느낀다…. 사람들은 날 보고 ‘저 사람은 전쟁에 나갔다 왔다’고 말하면서 내 심각한 도덕적 상태를 관대하게 보아준다.”(pp. 36,37)
스토리는 밋밋하다. 프레드와 캐테 부부가 만나서 하룻밤을 지내는 1박 2일을 그린다. 그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프레드는 돈을 꾸러 다니고, 캐테는 아이들을 간수하면서 새 립스틱을 외상으로 산다. 캐테는 힘겨운 가난과 프레드의 침묵에 지쳐 있다. 둘의 대화는 늘 겉돌기만 할 뿐, 정작 듣고 싶은 이야기는 없다. 프레드는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견디고 있다. 전쟁터 포화 속에서 시신에 뒤섞여 누워있던 때가 살아 돌아와 동료들과 함께 있게 된 것보다 훨씬 편하고 좋았던 기억을 더듬는다. 마침내 두 사람은 만나서 식사를 하고, 성당에도 가고,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싸구려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둘은 서로 사랑한다. 캐테는 임신을 한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두려워한다. 캐테는 프레드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가난한 부부가 힘겨운 삶에 지쳐 끝없는 감정 소모 끝에 파경에 이르는 단순한 서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이다. 캐테는 프레드가 어디 사는지 모른다. 그가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만남에서 프레드는 자기가 사는 곳에 대하여 긴 이야기를 한다. 허구와 과장이 뒤섞인 이야기다. 거기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정원이 있지만, 프레드 네 아이들이 오면 안 된다. 싸구려 호텔방 밖에는 밤새도록 광고판이 비친다.
“드로기스트를 믿으세요.”
부부가 만나는 날에는 시내에서 가톨릭 축일 행진이 벌어지고, ‘드로기스트 대회’가 열리고 있다. 드로기스트란 “특별한 양성 교육을 받고 처방이 필요 없는 약, 화학제품, 치약, 화장품, 세제 등을 파는 상점의 주인이나 점원을 가리킨다”(역자 주) 프레드 앞을 지나는 축일 행진은 화려하지만 위선적이고 공허하다. 그 공허함 속에서 시내 곳곳에서 불쑥불쑥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온 드로기스트들을 마주친다. 프레드는 성당에 여러 번 들어간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지 못한다. 캐테는 성당에 들어가 신부에게 고해를 한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지는 못한다. 캐테가 고해한 증오에 대해 신부도 스스로 자유롭지 못함을 고백하면서 면죄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신앙에서 멀어진 프레드도, 신앙에 매달리는 캐테도 신의 응답은 받지 못한다.
드로기스트는 의미심장하다. 나는 여기에서 메스암페타민을 떠올렸다. 그렇다. 속칭 ‘히로뽕’이라고 하는 마약 필로폰의 주성분이다. 하인리히 뵐은 전선에 있을 때 집에 편지를 보내 페르비틴(Pervitin)이라는 약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페르비틴은 바로 메스암페타민 성분의 각성제다.
나치가 유럽을 침공할 때 많은 나라를 속수무책으로 무너뜨린 전술은 유명한 ‘전격전’(Blitzkrieg)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진격 속도로 상대방이 미처 대응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대부분 나라는 나치의 침공 계획을 알아차리고 진격 속도를 감안해 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군은 늘 하루이틀 일찍 쳐들어왔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속도였다. 그 비밀 중 하나가 바로 페르비틴이다. 이 약으로 병사들은 쉬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맹렬하게 진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페르비틴은 또 감정을 무디게 만들어 병사들을 무감각한 전투기계로 만들었다. 여기에 중독된 병사들은 전방에 약이 부족해지자 후방의 가족들에게 편지로 약을 요청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 약이 불법도 아니었고, 처방 없이 판매가 되었다고 한다.
하인리히 뵐은, 그리고 작중의 프레드도, 바로 이 페르비틴에 의존해 전쟁을 하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약을 파는 사람이 바로 드로기스트다. 이 약은,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된다. 당장의 통증을 잠재워 줄 뿐이다. 그러므로 “드로기스트를 믿으세요.”라는 광고 문구는 전쟁과 전후의 고통을 잠재우는 ‘마취적’ 처방이다.
프레드는 아직 마취 상태다. 아니 마취와 각성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다. 반면 캐테는 헤어질 결심을 한다. 마취 상태를 거부하는 것이다. 한편 둘 다 근원 치료를 염원한다. 그러나 프레드는 신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캐테는 신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의 별거는 이런 간극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흐름이 빠르다. 극적인 전환이 이뤄지면서 프레드는 무너진다. 아니 드로기스트의 약이 구축해 놓은 마비의 장벽이 무너진다.
프레드는 집으로 돌아갔을까?
캐테는 그를 받아들였을까?
Ⅱ
상이용사의 눈물
읽은 지 하도 오래돼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서 이 글을 쓰기 위해 붐비는 카페에 앉아서 다시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는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옆 사람 몰래 눈물을 훔쳤다. 공감일까?
1960년대 아직 내가 어릴 때 기억이다. 가끔 상이군인들이 대거 시내 중심가로 몰려나와 행패를 부린 일이 있었다. 구걸하는 상이군인도 있었고, 그들이 행패를 부리는 일도 드물지 않던 시대다. 그러나 가끔은 집단으로 ‘난동’이라 할 정도로 시내를 발칵 뒤집어 놓는 일도 있었다. 그들은 휠체어 탄 사람, 쇠갈고리 모양의 의수를 착용한 사람, 다리 한쪽이 없이 목발을 짚은 사람 등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들이 쇠갈고리 의수나 목발을 휘두르면 정말 무서웠다. 길가에 진열해 놓은 가게의 물건들이 산지사방 흩어지고 쇼윈도 유리창이 깨지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는 정말 아무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럴 때면 가게 문을 닫고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의 좌절과 분노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꽃다운 청춘에 전쟁에 나가 불구의 몸이 되었다. 성한 몸으로도 먹고살기 힘든 그 당시에 이들의 삶은 어떠했겠는가? 당시 나라가 가난해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상처는 절망이 아니었을까?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절망적 상황. 그것이 어떤 일, 예컨대 현충일이나 6.25 같은 추념일, 또는 어떤 관련 이슈가 터졌을 때,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는 늘 나의 아버지가 오버랩된다. 일제 말기 징용에서 한차례 중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회복한 아버지는 다시 전쟁에 나가 또 중상을 입으셨다. 다행히 불구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 상처의 후유증으로 늘 힘들어하셨다. 상이군인들의 난동에서 늘 우리 가게는 보호를 받았다. 아버지가 나서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한 덕분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 우리 가게를 건드리려 하면 다른 누군가 나서서 “전우의 집”이라고 방패막이를 했었다.
이들 상이군인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프레드와 캐테의 아픔이 생생하게 살아 나왔다. 아팠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나치 군 병사로서 프레드는, 또는 뵐은, 거기에 또 다른 아픔도 있었다. 전범국의 패전 병사로서 침묵할 수 없는 고통.
사실 지금 이 작품을 읽고 선뜻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다.
이 작품의 시점은 1952년이다. 발표는 1953년. 아직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고,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던 시기다. 그러므로 당시 독일인들에게는 이 작품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자기 일처럼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시대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다. 당연히 경험도 다르다. 공감이 쉽지 않다. 심지어 독일에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작품과 하인리히 뵐에 대한 평가도 한때 잊혀 가다시피 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본토인 독일에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우리나라에서는… 나도 책을 읽는 동안 무덤덤했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서 갑자기 떠오른 우리 젊은 상이군인들의 기억이 겹치면서 비로소 깊은 공감이 이뤄졌다. 그래서 울컥했던 것 아니었을까?
Ⅲ
그들은 어떻게 악마가 되었나?
이것이 모두 지나가버린, 그래서 박제된 역사의 한 장면일 뿐일까?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제 봐도 늘 새로운, 인상 깊은 뉴스의 장면이 있다. “미국에게 죽음을! 이스라엘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는 분노한 군중의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이란 같은 경우, 무슨 일만 있으면, 시민들이 몰려나와 이렇게 시위를 벌인다.
그들이 이슬람 국가의 국민이고, 상대가 미국이나 이스라엘이기 때문이 아니다. 도대체 저 분노는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 하는 것이 궁금한 것이다. 열정이 없으면 분노도 없다. 우리나라나 일본 유럽 여러 나라 등의 시위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그 차이는 단지 역사적 민족적 종교적 배경 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오래전 이집트에 갔을 때(당시는 이집트가 이런 분노의 중심이었다)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런 분노의 현장이었다.(보지 못했다)
그러한 분노의 이면에는 그것을 조종하는 손이 분명 있다. 앞서 히틀러의 저작에서(제8화 중 『나의 투쟁』 아돌프 히틀러) 그 전략과 전술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그렇게 대중의 분노를 조종하는 이 사람들은 악마일까? 아니면 악마가 된 사람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악마가 되었을까? 그것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목격한 인류에게 제기된 가장 심각한 물음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한길사/2006
‘악마’인 줄 알았는데, ‘괴물’도 아니고, 그냥 시시한 중년 아저씨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무고한 사람 수백만 명을 학살한 인류 역사상 최고 ‘절대악’ 아돌프 히틀러는 자살해 버렸다. 즉 그의 심리 정신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헤르만 괴링을 비롯한 많은 나치 거물들이 연합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물론 도망쳐서 숨어버린 거물들도 많았다. 그러나 어쨌든 인류는 이 ‘절대악’을 해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었다. 종전 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전범 재판이 그 첫 번째 기회였다. 그리고 15년여 후 또 한 번의 세기의 재판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다. 아이히만은 6백만 유대인 학살의 핵심 주범으로 꼽히던 인물이다. 치밀하게 계획되고 주도면밀하게 실행된 이 전대미문의 기계적인 학살을 지휘한 인물은 필시 ‘괴물’ 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고, 그래서 그 재판은, 어떤 면에서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보다 더 관심을 끌었다.
독일 태생 유대인 정치철학자이자 사상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이 바로 이 재판을 통해 ‘절대악’을 분석한 책이다.
한나 아렌트(1906~1975)는 독일 하노버 근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철학과 문학에 몰두했고,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에게 배우다가 후에 칼 야스퍼스의 사상으로 옮아갔다. 1933년 나치 집권 후 체포되었다가 풀려나 프랑스를 거쳐 1941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을 발표하면서 ‘전체주의’라는 학술적 개념을 만들어냈다.(전체주의의 개념은 후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칼 프리드리히에 의해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모델로 정립된다/1956/Totalitarian Dictatorship and Autocracy). 한나 아렌트는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를 비교 분석하면서 전체주의를 공포, 선전, 이데올로기, 비밀경찰, 대중조작, 인간 조건의 파괴 등 6대 요소로 분석하고 전체주의를 기존 독재와는 차원이 다른 “현실을 초월해 허구적 세계를 만드는 체제”라고 정의했다.
아이히만 재판은 1961년부터 1962년 예루살렘에서 열려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절멸을 뜻하는 나치의 이른바 ‘최종 해결책’의 실무 총괄 책임자였다. 직책은 나치 친위대(SS) 중령으로 SS 산하 국가보안본부 유대인문제 담당국 (IV-B4) 책임자이고 역할은 유럽 전역의 유대인을 수용소로 기차로 강제 이송하는 계획과 실행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종전 후 도피에 성공해 아르헨티나에서 리카르도 클레멘트란 가명으로 숨어 살다가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체포돼 예루살렘으로 이송,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재판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수많은 학살 피해자들이 증언해 나치의 만행을 세계만방에 생생하게 전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나 아렌트는 미국 「뉴요커(The New Yorker)」의 특별 취재원 자격으로 이 재판을 직접 참관했다. 그 기록이 바로 1963년에 나온 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여기서 한 가지 꼭 지적해야 할 것은 한나 아렌트의 성향이다. 그는 비시온주의적·문화적 유대인 전통을 따르는 사람이다. 즉 유대민족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유대 민족주의 편향 우려는 크지 않다는 뜻이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제목에 나와 있듯이,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다. 아이히만은 재판 과정에서 줄곧 자신은 명령에 따라 맡은 바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재판정에 ‘악마’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모습을 드러낸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또는 ‘시시한’ 중년 남자였다. 한나 아렌트는 이런 아이히만의 모습과 재판에서의 진술 등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다. 아이히만이 특별히 사악하거나 광적인 성향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관료였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일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어떤 일이든 '생각'과 '책임 있는 판단'이 필요하며, 병역에 따른 것이든 관료적인 것이든 그 의무가 도덕을 대신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아무 생각 없이’ 일했다는 것은 그 일이 초래하는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비극인지를 두 눈으로 보면서도 자신이 처한 위치, 입장에 안주해 악에 휩쓸려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아이히만이 주장한 대로 그냥 관료적으로 일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도 ‘악마’가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그것이 ‘아무 생각 없음’의 결과다. 그러므로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악이 특별한 인간만이 아니라 사유 없이 순응하는 '보통 사람'에게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경고라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이런 관점은 당연히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앞서 그는 뉴요커에 쓴 글에서 수많은 도발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예컨대 수용소 수감자들이 저항을 했더라면 희생자가 훨씬 줄어들었을까, 생존자의 일부는 불명예스럽게 행동했는가…등등. 물론 아이히만이 ‘악마’나 ‘괴물’이 아니라는 ‘진단’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히만이 ‘괴물’이 아니라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은, 사실 훨씬 더 무서운 진실을 보여준다. 즉 그는 ‘평범한’ 사람이 언제든지 상상을 초월하는 악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악마’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격렬한 비난을 무릅쓰고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내놓은 한나 아렌트는 대단히 용감한 지식인이었다.
Ⅳ
악마 열전
여기서 다시 뉘른베르크로 돌아가보자. 아이히만 재판은 초점이 유대인 학살에 집중된 것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이히만이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일하도록 만든 시스템의 중추에 있었던 것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었을까?
『악의 해부』/조엘 딤스데일/에이도스/2017
부제는 「나치 전범들의 심리분석」.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은 1945년부터 1946년까지 진행되었다. 즉 아이히만 재판보다 15년 이상 앞선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는 이 책, 『악의 해부』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보다 근 50년이 늦은 2016년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 책은 뉘른베르크 재판 당시 나치 고위 인물들을 관찰한 기록을 현대 정신의학으로 다시 분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최신 의학기술을 습득한 현재의 전문의가 옛날 차트를 보고 다시 진단하는 격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신과 기록이므로 다른 신체적 질병을 판단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컨대 그냥 ‘히스테리’라고 해도 1945년 당시와 2016년 현재의 개념은 크게 다르다. 바로 그런 점에서 흥미진진한 책이다.
저자인 조엘 딤스데일은 미국의 유명한 정신의학과 교수다. 1947년생으로 하버드대 의대 정신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 석좌교수로 있다.
내게는 『세뇌의 역사』란 제목이 흥미를 끌어서 무조건 산 책이 한 권 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그 저자가 바로 이 조엘 딤스데일 교수, 동일인임을 깨닫고 혼자 웃는다.
『악의 해부』,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앞서 옛날 차트를 보고 다시 진단하는 격이라고 했지만, 딱딱한 의학적 서술이 아니다. 저자는 마치 소설을 쓰듯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선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은 정신과 의사인 더글라스 켈리 박사와 심리학자 구스타브 길버트 박사다. 물론 이들은 당시 군 장교 신분이었다. 켈리는 ‘명석하고 수다스러운 이야기꾼’이고 길버트는 ‘사명감으로 가득 찬 무뚝뚝한 인물’이었다.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이들 두 사람이 나치 전범들과 면담하면서 기록한 자료다. 여기에 주변 상황, 재판, 심문 등 각종 자료를 보완해 전범들의 심리를 분석한다.
분석 대상은 나치 독일 노동전선의 수장이었던 로베르트 레이, 스스로 히틀러의 뒤를 이어 총통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공군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 반유대주의 선동가 율리우스 스트라이허, 한때 부총통이었던 루돌프 헤스 등 네 사람이다. 각각의 특징을 요약하면 레이는 ‘뇌를 다친 사람’이고, 괴링은 사이코패스이며, 스트라이허는 ‘나쁜 놈’, 헤스는 ‘미치광이’였다는 것이다.
로베르트 레이는 이들 4명 중 유일하게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 사람이다. 그는 재판 초기에 자살했고, 그의 뇌는 의료계에 보내져 의학적인 분석이 이뤄졌다. 앞서 당시 세계 정신의학과 학계에서 나치 전범들이 사형을 당하면 뇌를 검사하게 해달라고 요청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는 여러 차례 뇌를 다친 이력이 있었다. 이른바 ‘나쁜 뇌’라는 것이다. 음주벽, 실어증, 기벽 등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악마로 만들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오늘날 재판이 이뤄졌으면 이런 점들이 오히려 형량 감경 사유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헤르만 괴링을 살펴보는 장(章)에 저자는 ‘호감형 사이코패스’라는 제목을 붙였다. 괴링은 전범들을 수용한 교도소에서 ‘우두머리’처럼 행동했고, ‘잔인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면모를 보여줬다.’ 그래서 저자는 그를 “겉으론 쾌활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불쾌한 구석이 있는 삼차원성 복잡성이 있었다… 나치 수뇌부의 다른 이들과 비교 해보면 매력 있고, 솔직 담백하며 별난 구석이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인물이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형 집행 전에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
어떤 면에서 봐도 ‘나쁜 인간’은 율리우스 스트라이허다. 그는 공식 정부 직책을 맡지는 않았고, 개인 매체를 운영하면서 반유대주의 선동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저자는 레이와 괴링에 대해 “둘 다 막대기 그림 같은 단순한 악마들이 아니었고 비전과 악의가 뒤섞인 굉장히 복합적인 혼합물에 가까웠다.”라고 평가하면서 “일말의 장점도 섞여 들어가지 않은 순전한 비열함을 찾는다면 율리우스 스트라이허를 보면 될 것이다.”라고 평한다.(p.154) 전 인생이 섹스와 폭력에 얽혀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냥 비열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편집증, 성격장애 등의 꼬리표가 붙었다.
루돌프 헤스는 그냥 정신병자다. 사실 그는 이미 1941년 ‘미친 짓’을 했다. 나치 독일의 부총통이었던 그는 단독으로 전투기를 몰고 영국으로 가는 기행을 벌였다. 독일과 연합해 소련에 맞서자고 영국을 설득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이미 히틀러는 그를 ‘정신병자’로 공식 선언했고, 영국도 ‘정신이상’으로 판단했다. 뉘른베르크에서도 기억상실을 주장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면서 증거물로 모든 음식을 조금씩 떼어 놓았다. 꾀병, 히스테리, 경미한 기억상실, 조현병 등 온갖 꼬리표가 붙었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987년 93세의 나이로 교도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감옥에서 41년이나 살아있었던 것이다.
이들 나치 전범들이 대체로 비열하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인간성이었던 것처럼, 뉘른베르크 재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사례가 전례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재판부나 검찰, 변호인 측은 물론 수인들을 관리하고 심문하는 것도 체계를 만들면서 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전범을 직접 조사한 켈리와 길버트 두 사람의 불화도 요란했다. 켈리는 자신이 먼저 전범들을 접했고, 직책도 상관이었다는 사실을, 길버트는 자신이 더 오래 전범들을 다루었다는 점을 각각 내세웠다. 켈리는 언론에 자신의 경험을 두루 이야기하고 다녔고, 길버트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켈리는 전범들을 관찰대상 또는 사례로 대했고, 길버트는 그들을 혐오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정신과 의사인 켈리는 심리학적으로 접근했고, 심리학자인 길버트는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임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관점을 담은 책 출간 경쟁을 벌였으며, 소송까지 불사할 정도로 불화했다. 그 다툼은 켈리 박사가 헤르만 괴링과 똑같이 청산가리로 자살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 책에는 또 전범 심리분석에 동원된 로르샤흐 검사,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등도 언급돼 있다.
로르샤흐 검사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헤르만 로르샤흐 박사가 1921년 처음 발표한 것으로 정신분열증 진단 목적으로 개발된 방법이다. 대칭적으로 번져 있는 잉크 반점 카드 10장을 피검사자에게 보여주고 그 반응으로 정신 분열증을 진단하는 것이다. 그것이 심리검사용으로도 쓰이게 됐고, 오늘날에도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해석자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나치 전범들에게도 이 검사를 행했지만, 켈리, 길버트 두 사람 다 자기 저서에는 그 분석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밀그램의 실험은 보통 사람들이 권위나 지시에 어느 정도까지 복종하는가에 대한 실험이다. 피실험자는 상대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지시를 받는다. 상대방에게 기억력을 테스트하도록 한 다음 틀리면 전류를 흐르게 하고, 최소 15 볼트에서 시작해 틀릴 때마다 계속 그 강도를 높여가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 전류가 흐르는 것은 아니고, 상대방이 감전되는 연기를 하며, 전압이 높아질수록 고통을 호소한다. 실험 결과 상대방의 고통스러운 비명에도 불구하고 피실험자 전원이 300 볼트까지 가했고, 그중 2/3는 최대 전압인 450 볼트까지 높였다. 즉 아무런 악의가 없어도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고통에 상관없이 지시에 복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평범한 사람 누구든 직책이 주어지면 가혹한 전기고문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이 실험으로도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악을 해부한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는 혈액형, 또 요즘은 MBTI로 성격 유형을 분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하면 간명하고 좋다. 모든 사안을 몇 가지로 분류하고 그에 맞춰 판단하면 쉽기도 하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해서는 안 될 행동 4가지”, “성공하는 사람의 5가지 생활 습관” 따위를 신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그런 식으로 범주화하는 것은 일부는 맞을 수 있지만 결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성공하는 사람의 생활습관은 원한다면 5가지는 물론 50가지도 입맛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인간 심리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치 전범들이 일률적으로 몇 가지 공통적인 성정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들을 타고난 ‘악인’이라고 딱 규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범은 균질한 하나의 악마적 집단이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좀 더 마음 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 영화 속 이야기조차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지킬과 하이드를 비교한다. 그 결론은 지킬 속에 숨은 하이드가 가장 무서운 괴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이드는 ‘어느 누구’ 안에도 도사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더글러스 켈리가 제시했던 놀라운 결론이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잘못 맞물린 상황에서라면, 누구든 –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전범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p.289)
책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다.
“켈리는 모든 사람에게서 약간씩의 어둠을 찾아냈고, 길버트는 몇몇 사람에게서 보기 드문 어둠을 찾아냈다. 둘 다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