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에서 네타냐후까지
『유대인의 역사』/폴 존슨/포이에마/2014
『모르타라 납치사건』/데이비드 I. 커처/문학동네/2019(절판)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아모스 오즈/문학동네/2015
Ⅰ
숭늉이 궁금한 유대인 친구들
내가 만난 유대인 친구들의 공통된 특성 - 1) 어떤 사소한 사항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치밀함 2) 뛰어난 기억력 3)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 4) 어떤 조롱에도 덤덤하게 반응하는 대범함(또는 저항하지 않는 비굴함?).
아직 세계가 냉전으로 동서 진영이 완고하게 맞서 있던 시절, 당시 서독의 뮌헨에 잠시 살았다. 거기에 망명 러시아인 커뮤니티가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유대인이었다. 이들 러시아 출신 유대인은 ‘아슈케나지’라고 한다. 여기에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 지역 뿐만 아니라 동유럽, 즉 독일과 그 동쪽 지역 출신들이 모두 포함된다. 바로 그 아슈케나지 유대인 중 몇 명과 친하게 지냈다.
먼저 그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내게 어려움이 없는지 물어보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물론 다른 러시아인, 독일인들도 친절하게 잘 대해 줬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에는 차이점이 있었다. 비유하자면 유대인들이 좀더 동양적인 면모가 있었다고 할까? 독일인들은 친밀 해져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러시아인들에게는 그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고, 유대인들은 그보다 훨씬 가까웠다.
자기 집 식사에까지 나를 초대한 친구들은 유대인 밖에 없었다. 한번은 집에 초대되어 가서 칠면조 요리를 대접받았다. 그 친구 부인이 한국식 밥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래서 부엌에서 나와 같이 밥을 짓기도 했다. 그녀는 식사 후 마시는 차도 궁금해했다. 내가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숭늉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그것도 만들어달라고 해서 누룽지를 만들고 숭늉을 끓였다. 그녀는 기대에 찬 눈길을 보냈지만, 마셔보고는 실망감을 표시했다. 아주 특별한 맛은 느끼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한 친구는 딸과 싸우고 나에게 조언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10대 딸이 모임에 가려고 하는데 그 모임이란 것이 ‘러시안 룰렛’처럼 남자 아이들이 둘러 앉은 테이블에 여자 아이들이 한 명씩 병을 돌려 그 입구가 향하는 친구에게 키스하는 모임이라는 것이다. 그 친구는 이런 ‘황당한’ 모임에 못 가게 하는 것이 부모로서 당연한 일 아니냐며 내게 하소연을 했다.
유대인 친구들은 그 정도로 내게 격의 없이 다가왔다. 그들은 치밀했고,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도 세밀하게 기억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한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너무나 집요하게 완벽을 추구해서 내가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조롱’이었다. 독일인과 러시아인들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도 이들을 대놓고 조롱했다. 나는 아연실색했다.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처음 한 사람이 내게 한국에도 유대인 커뮤니티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 팩트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없다고 말했을 때 그들이 하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와! 한국 가서 살아야겠어. 유대인이 없다니! 세계에서 제일 좋은 나라야!”
이건 점잖은 편이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온갖 이유를 들어 반유대주의적 발언을 쏟아냈다. 나에게는 넌지시 그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뜻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유대인 친구들은 그러나 이런 조롱에 일체 대꾸하지 않았다.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그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대범하고, 달리 보면 비굴해 보였다.
서두에 열거한 특징은 내가 만난 서너 명의 친구들에게서 받은 인상이지만, 실제 전체 유대인, 특히 아슈케나지들의 공통된 특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민족성이라 기보다는 오랜 세월 핍박과 차별을 견뎌오면서 터득한 생존의 방식, 즉 역사적으로 훈련된 문화적 특성이라는 것이다. 이런 특성이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학문, 언론, 정보, 금융, 외교 등의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는 평가도 있다. 그 강세는 전체 노벨상 수상자에서 세계 인구의 0.2% 밖에 안되는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 된다는 사실에서도 수치로 입증된다.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다.
Ⅱ
아브라함에서 네타냐후까지…유대인의 역사
유대인 – 그들은 누구인가? 세계사의 주요 장면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민족은 유대인이다. 거의 인류 역사와 같은 장구한 세월을 살면서 나라를 가진 기간보다 그렇지 못했던 기간이 훨씬 길고, 그러면서도 소멸되지 않은 것은 물론, 오늘날 국제질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만 놀라운 민족이다. 그 많은 아랍 국가들이 이 작은 이스라엘 하나를 못 이겨 하나하나 굴복하고 있는 현실은 수수께끼 그 자체다. 그들의 역사는 곧 세계, 특히 유럽과 지중해세계 전체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만큼 복잡하고 방대해서 보통 사람이 그 전체 역사를 일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유대인의 역사』는 그 쉽지 않은 일을, 그것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풀어낸 책이다.
『유대인의 역사』/폴 존슨/포이에마/2014
보수적이고 친이스라엘적인 시각이 다소 편향적이고, 일부 근거가 미약한 서술이 있다는 점 등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이만큼 유대인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는 책도 없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유대인의 역사를 일별한 후, 부족하거나 편향된 부분을 보충하면 될 것이다.
저자 폴 존슨은 1928년 영국 맨체스터 출신으로 직업을 따진다면 언론인이다. 예수회 계열 학교인 스토니허스트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 맥댈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보수 성향의 가톨릭 신자이고, 이런 그의 성향이 이 책에도 잘 드러난다. 「데일리 메일」, 「뉴욕 타임스」 등 세계 유수 언론에 칼럼을 쓰고, 역사, 인문, 예술, 문화를 넘나들며 50여 권의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기독교의 역사』, 『모던 타임스』 등이 유명하다. 박식함과 예리한 통찰이 돋보이는 저술로 독자를 매료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이 책 『유대인의 역사』를 읽어보면 이런 평가가 괜히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짐작하듯이 유대인의 역사는 구약 성경 아브라함에서 시작한다. 물론 성경은 아브라함에서 거슬러 올라가 천지창조와 첫 사람 아담에서 시작하지만, 한 민족으로서의 출발점은 아브라함이다. 그 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은 것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이다. 저자는 이 역사를 막벨라 동굴에서 시작한다. 헤브론에 위치한 이 동굴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묘실로 쓰기 위해 헷 사람, 즉 힛타이트족 에브론에게 은 400세켈을 주고 산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 그의 아들 이삭과 아내 리브가, 이삭의 아들 야곱과 아내 레아의 유해가 여기에 모셔져 있다. 떠돌이 유목민인 유대인의 조상이 처음 정당한 대가를 주고 구입한 소유지이자, 조상의 묘실이 있는 ‘민족의 성지’인 것이다.
성경 기록은 과거 신학체계에서는 사사기 중반까지는 신화나 전설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서 고고학이 발전하면서 관련 유적이 속속 발굴됨에 따라 많은 부분이 역사성을 인정받고 있다.
유대인의 민족과 종교, 즉 유대교의 형성 과정은 성경을 중심으로 한 기록을 통해 우리도 대략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근동과 지중해세계, 그리고 유럽으로 흩어진 다음의 행적은 우리 시야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20세기, 홀로코스트와 함께 ‘홀연히 다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유대인들은, 역사의 어느 한 순간도 공백 없이,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정체성을 유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이 책은 세밀하게 재구성해내고 있다.
폴 존슨은 유대인 공동체를 ‘학자 지도 체제’로 규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학자란 기본적으로 율법학자이며 그들은 종종 과학 의학 인문학 등에서도 탁월한 ‘학자’였다. 그 장구한 역사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인물은 마이모니데스다. 그는 1138년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태어나, 북아프리카를 거쳐 이집트에서 활동했다. 그는 살라딘으로 알려진 살라흐 앗 딘이 창시한 아이유브 왕조의 궁정의로 일했다.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면 궁정 어의(御醫)였던 셈이다. 원래 히브리어 이름은 모세 벤 마이몬이고, 이집트에서 사용한 공식 풀 네임은 ‘아부 임란 무사 빈 마이문 빈 압둘라 알 쿠르투비 알 이스라일리’다. 여기서 ‘무사’는 모세이고 ‘알 쿠르투비’란 코르도바 출신이란 뜻이며 ‘알 이스라일리’는 이스라엘인이란 말이다.
마이모니데스를 중요하게 언급하는 것은, 그가 중세 이후 전세계에 흩어진 유대인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미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의 권위가 인정되어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이 율법의 해석을 위하여 직접 찾아오거나 편지로 문의했다. 그는 의사이자 철학자이자 과학자로서 유대의 율법과 철학을 집대성한다. 대표작이 『미쉬네 토라』다. 이것은 14권, 약 1,000개 장에 달하는 율법 대전으로 모세 오경과 탈무드, 게오님(초기 랍비)의 해석과 전통까지 통합하여, 전체 유대 율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는 이후 모든 율법서의 기준이 되었고, 신학적 철학적 법률적으로 유대인을 통합하는 구심점이 되었다.
특히 『미쉬네 토라』가 순수 히브리어로 씌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당시 유대인들의 저작은 히브리어도 있었지만, 아람어 아랍어 등이 많았다. 그러나 마이모니데스는 순수 히브리어로 이 저작을 남김으로써 누구든지 히브리어를 알면, 탈무드를 따로 해석하지 않아도 율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20세기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사실상 죽은 언어였던 히브리어를 현실 언어로 되살리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요약하면 유대인들이 전세계로 흩어진 후 이스라엘로 다시 모일 때까지 이들은 율법을 기준으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민족 정체성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는 오늘날의 무역, 금융, 보험, 상호부조 등의 원형이다. 유대인들 사이에 까다로운 분쟁이 생기면 카이로의 마이모니데스에게 유권해석을 청해 해결하고, 멀리 외지에서 어려움에 처할 경우 현지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받으며, 발생하는 비용은 상품 용역 현금 등으로 상계하는 방식으로 결제했다.
유럽은 물론 이슬람 세계의 ‘궁정 유대인’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대인들은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문해력과 계산능력을 갖춘 소수의 상위 집단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무역과 금융으로 부를 축적한 유대인들은 유럽과 이슬람 세계 각국의 왕가에 ‘돈 줄’ 역할을 한다. 많은 왕가는, 특히 전쟁 비용 같은 경우, 많은 경우, 때로는 거의 전적으로, 유대인들의 자금에 의존했다. 끊임없이 박해를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유대인들에게 손을 벌리는 행태가 되풀이되는 것이다. 폴 존슨은 이런 상황이 유대인 특유의 선민사상, 기독교와 유대교의 충돌 등과 맞물리면서 유럽인들의 질시, 즉 반유대주의가 태동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즉 반유대주의는 신학, 경제, 문화 등의 요인에다 당시 사회 불만을 돌리는 편리한 대상이라는 정치적 이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평가한다.
또 하나의 변곡점은 시오니즘의 탄생이다. 유대인들의 국가를 세운다는 개념은 19세기 후반에 구체화된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미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닌 실제 세속적인 국가를 세운다는 개념을 말한다. 중요한 계기 중 하나는 드레퓌스 사건이고, 핵심 인물은 테오도르 헤르츨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5년 무렵 프랑스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간첩 사건이다. 드레퓌스는 실제 적발된 간첩 행위와 전혀 무관했지만,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모든 증거가 무죄를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테오도르 헤르츨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발행되는 진보적 성향의 신문 ‘노이에 프라이에 프레세’의 파리 특파원으로 이 사건을 경험했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에서 반유대주의가 폭발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드레퓌스나 헤르츨 둘 다 원래 유대인이라는 민족 의식의 희미했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드레퓌스는 프랑스 육군 장교로서의 자부심과 애국심이 충만한 사람이었고, 헤르츨은 유대인의 정체성보다는 유럽 사회에 동화되어 살아야 한다는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내에서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회는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나뉘어 치열한 투쟁을 벌였고, 결국 드레퓌스파가 승리해 드레퓌스는 가혹한 옥살이 끝에 석방되어 명예를 회복한다. 그러나 드레퓌스파가 승리한 것은 오히려 반유대주의가 격화되는 결과를 빚었다. 이런 과정을 직접 목격한 헤르츨은 유대인의 국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고, 그 신념을 『유대 국가』라는 책으로 설파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규합해 나가던 끝에 1897년 바젤에서 제1차 시오니스트 대회를 연다. 이것이 시오니즘의 탄생이다. 물론 시오니즘은 헤르츨 이전에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그 실체가 공식화, 정치화된 것은 이 대회가 기점이었다.
드레퓌스 사건과 헤르츨의 유대인 정체성 회복은 조금 더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봐야 이해를 할 수 있다. 그 전, 1880년대에 러시아제국 곳곳에서 대규모로 유대인을 학살한 ‘포그롬’이라는 대사건이 있었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이 일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한편 훨씬 많은 숫자가 서쪽으로 피난했다. 이에 따라 유럽 전체, 그리고 프랑스에도 유대인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반유대 감정이 커졌고, 그것이 드레퓌스 사건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편 헤르츨은 프랑스는 자유와 평등이 지배하는 나라이고, 따라서 유대인들도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드레퓌스 사건으로 그 믿음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유럽에서는 유대인이 발붙일 곳이 없고, 따라서 자신들만의 국가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또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이런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헤르츨의 시오니즘은 초기 많은 유대인들, 특히 지도급 랍비들로부터 배척 받았다.
헤르츨은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오니즘과 유대 국가 건설 신념은 확산되고 강화되어갔고, 유럽의 중동 식민정책, 나치의 홀로코스트, 2차 대전 전후 처리 과정 등과 맞물리면서 마침내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은 복잡다단하다. 폴 존슨은 여기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점유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시기가 빨랐다는 점을 꼽는다. 즉 아랍인들의 민족주의적 각성이 유대인들보다 20년 늦었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격변기에 20년이라면 매우 긴 세월이다.
폴 존슨의 반유대주의 분석에는 ‘유대인이 탁월하기 때문에’라는 근거가 은연 중에 깔려 있다. 그의 분석은 중세에 국한할 경우 상당히 타당성이 있지만, 근대로 넘어오면, 즉 홀로코스트로 이어지는 반유대주의는 추가적인, 근대적 상황, 예컨대 민족국가 형성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책은 1,000쪽을 넘어가는 방대한 분량으로 유럽과 아랍 세계에서 계속된 유대인의 생존과 번영의 역사, 탄압과 시오니즘의 태동, 홀로코스트와 국가 수립 등을 거쳐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의 갈등, 테러 등의 문제까지 이어진다. 앞서 소개한 몇 가지 에피소드는 이 책의 극히 일부분이다. 여러가지 비판적인 부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세계의 움직임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명저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 장구한 역사의 가닥을 잡으면 오늘날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 등 복잡한 세계 정세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Ⅲ
한 어린이의 납치 사건이 바꿔 놓은 세계
『모르타라 납치사건』/데이비드 I. 커처/문학동네/2019(절판)
1858년 6월 한 소년이 납치된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유대인 상인 모몰로 모르타라의 집에 교황청 헌병대가 들이닥쳐 그의 여섯 살 난 아들 에드가르도를 데리고 가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교황권의 몰락과 이탈리아 통일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즉 근대 이탈리아의 ‘문을 연’ 사건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와 함께 유대인의 역사의 한 장면으로서 세계 유대인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잘 보여준 것으로 인상이 깊었다.
이 책은 소년 모르타라의 납치와 그를 되찾으려는 가족들의 노력, 그 과정에서 충돌하는 교황권과 세속 권력, 그리고 그 결과 무너져 내리는 구체제, 통일과 근대화로 향해가는 이탈리아의 모습 등을 세밀한 구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학자로 이탈리아 정치, 사회, 역사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데이비드 커처다. 그는 역사자료의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마치 법정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극적인 서사로 사건의 전모를 그려낸다. 그래서 논픽션이지만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교황청 헌병대가 에드가르도를 가족으로부터 빼앗아 간 이유는 그가 세례를 받아 가톨릭교도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에드가르도가 병에 걸렸고, 상태가 좀 나빠지자 아이를 돌보던 모르타라 집안의 하녀가 손에 물을 적셔 세례를 베풀었다는 사실이 종교재판관의 귀에 들어간 것이었다. 하녀는 자신이, 가톨릭 교도로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그대로 아이가 죽으면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 생각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누가 들어도 어이가 없는 이 사건은, 그러나 당시 교황청의 완고한 입장에 부딪친다. 즉 어떤 형태이건 한번 베푼 세례는 영원한 효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복잡한 양상을 띄면서 온갖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아이를 되찾으려는 모르타라 가족의 노력이다. 이 사건은 유대인 공동체 전체의 이슈가 되면서 곳곳에 있는 각계각층의 유대인들이 각자 전문분야나 위치에 따라 발벗고 나서서 모르타라 가족을 돕는다. 여기서 우리는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에 소개된 유대인 네트워크의 실제 작동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아이가 다른 지역의 수도원으로 옮겨지면 그 지역의 유대인 공동체와 연락이 되어서 구명 운동이 이어진다. 모르타라 가족은 언제나 ‘혼자’가 아닌 것이다.
또 한가지, 더 큰 의미는 이탈리아의 근대화 과정이다. 이 사건은 근대적 인권, 개인의 자유 등의 개념이 자리를 잡아가던 당시 유럽의 분위기와 맞물려 유럽 전체의 이슈로 떠오른다. 영국의 유대계 귀족 몬티피오리, 당시 유럽의 금융을 장악하고 있던 로스차일드 가문까지 나선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개신교단들까지 들고 일어나 아이의 송환을 요구한다.
당시 교황인 피우스 9세는 에드가르도가 강제로 억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의 가르침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모든 탄원을 무시한다. 피우스 9세는 원래 개혁성향이 강했지만, 1848년 전 유럽을 뒤흔든 자유주의 혁명을 겪으면서 완고한 입장으로 전환해 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은 많은 세속 군주들이 교황권에 등을 돌리는 결과로 나타난다. 교황권 아래에 있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이 하나 둘 사르데니아 왕국으로 합병되고, 교황에 우호적이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마저 교황을 압박하고 나섰다.
그렇게 이탈리아가 교황권에서 벗어나 세속권력 아래 통일을 향해 나아가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일이 전적으로 모르타라 납치사건에 따라 일어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고, 그것이 교황권의 추락으로 이어지는 한 계기를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말하자면 어떤 외교적 노력이나 군사적 수단으로도 하기 힘든 일을 모르타라 납치사건이 저절로 이뤄지도록 길을 터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던 모르타라 납치사건의 이런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어 훌륭하게 복원했다.
이것이 유대인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대인 네트워크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에 이은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흥미 있게 읽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그 부록과도 같은 책이었던 셈이다.
Ⅳ
오합지졸에서 지역 패권까지
이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모여 나라를 이룬 과정을 살펴볼 차례다.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탄생하는 과정은 얼핏 생각하면 유대인들이 대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고, 하나로 똘똘 뭉쳐서 노력한 결과가 당시 국제정세와 잘 맞아떨어지면서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지금도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온갖 종류의 이념과 성향이 뒤섞인 복잡하고 어지러운 나라다. 실제 2022년 선거 결과 크네세트, 즉 의회에서 의석을 가진 정당 수는 무소속까지 모두 13개나 된다. 제1당인 리쿠드당도 120석 중 32석에 불과하다. 극좌에서 극우, 초정통 유대원리주의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은 어지러울 정도로 넓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2천 년을 전세계 각지에서 각기 다른 환경 아래 살아왔다. 애당초 성향이 같거나 비슷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도 다르고 행동 양식도 다른, 어찌 보면 다른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인구집단이다.
출신 지역으로만 따져도 아슈케나짐, 셰파르딤, 미즈라힘 등으로 나눠진다. 아슈케나짐은 러시아와 독일을 포함한 동유럽 출신으로 이디시어를 사용했으며, 심각한 박해와 학살을 경험한 사람들과 그 후손이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대인 공동체에 다수를 점하고 있으며, 엘리트가 많아 사회 주도층이다. 세파르딤은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의 출신으로 아랍세력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축출될 때 무슬림과 함께 북아프리카, 오스만제국, 중동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로 라디노어를 사용했다. .미즈라힘은 이라크, 이란, 예멘,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아랍·이슬람권 지역에서 오랜 세월 살았던 유대 공동체를 말한다. 이 외에도 그리스와 발칸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로마니오트, 에티오피아에서 수백 년 살다가 이스라엘로 이주한 베타 이스라엘 등도 있다.
직업도 대학 교수, 고위 언론인, 고급 기술자 등 엘리트에서 일용 노동자, 행상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든 데다 인프라도 없고, 제대로 된 정부도 없으며, 기존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있는 곳이니 그 혼란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에서는 이런 상태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아모스 오즈/문학동네/2015
1, 2권 합쳐 1천 쪽에 육박하는 대작이다. 장엄한 한편의 대서사시다. 이스라엘의 건국 역사가 들어있다. 장엄하다고 해서 이스라엘을 찬양하고 아랍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장엄하다고 하는 것은 우선 작가의 성장 과정이 들어있다. 그런 면에서는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시대적으로 작가의 성장기가 이스라엘 건국 역사와 맞물린다. 그래서 저자의 성장과 이스라엘 국가가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 함께 간다. 그래서 대서사시라고 하는 것이다.
저자는 아모스 오즈로 이스라엘의 대표 작가다. 그의 본명은 아모스 클라우스너이다. 보통 개명을 하면 대부분 이름을 바꾸지 성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작가는 성을 바꾸었다. 무슨 뜻일까? 자기 부모에 대한 반항이랄까, 그런 것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게 이스라엘 역사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아모스 오즈는 1939년 태어났다. 12살 때 어머니가 자살했고, 몇 년 후 15~6세 때 집을 나가 키부츠, 즉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성을 바꾼다. 그의 아버지는 시온주의자다. 다시 말하면 유대민족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모스 오즈는 사회주의자다. 선후관계를 따지자면 사회주의자라서 집을 나간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시온주의에 대한 반발, 어머니의 자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집을 떠나 키부츠로 들어갔고, 거기서 사회주의자가 된 것이다. 키부츠라는 곳은 집단농장이라고 했다. 집단농장이 뭔가? 사회주의, 공산주의 색채가 들어있는 것 아닌가. 아모스 오즈는 농부가 되겠다고 키부츠에 들어갔다. 그의 집안, 즉 클라우스너 가문은 꽤 유명한 학자 집안이다. 그는 그런 ‘서생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농부가 되어서 이스라엘의 ‘개척자’가 되겠다며 키부츠로 갔다. 아랍과의 전쟁에도 참전했다. 그러나 그 뿌리가 어디로 가지는 않았다. 결국 ‘피는 못 속이고’ 글 쓰는 쪽으로 길이 정해졌다.
이 책은 자전적 성장 소설의 성격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어릴 적 이야기를 하는데 그 시절에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픽션이다. 즉 픽션과 자전적 스토리를 버무려서 소설을 썼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부모나 조부모세대가 겪은 것을 자신이 겪은 일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작가 자신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가 픽션인가 하는 것은 알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1권에서는 1930년대 말 유럽각지에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대거 이주를 한다.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우리는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만약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박해하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잘 살았을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히틀러 등장 이전에 이미 유럽에 광범위하게 반유대주의가 퍼져 있었다. 그래서 나치의 적이든 우방이든 가리지 않고, 특히 동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을 크게 박해했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서 아랍인들과의 갈등관계가 만들어진 것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유럽인들이 유대인들을 유럽에서 쫓아내고, 아랍인들은 못 들어오게 하려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조부모 세대는 툭하면 러시아어가 입에서 튀어나오는 세대다. 부모 세대는 히브리어를 하지만 아이들이 들어서 곤란한 말을 할 때는 러시아어나 폴란드를 쓴다. 반면 작가는 어릴 때부터 히브리어를 쓰는, 즉 모국어로 히브리어를 쓰는 세대다. 3대가 언어부터 완전히 다른 것이다. 즉 조부모 세대는 러시아어가 주언어이고, 부모 세대는 히브리어를 국어로 쓰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는 외국어처럼 쓰고, 작가 세대는 히브리어를 완전히 모국어로 쓴다. 이것이 현대 유대인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또 한가지 피상적인 생각은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대거 이스라엘로 몰려 가서 일치단결해 나라를 건설한 것으로 여기는 단선적인 이미지다.
이주 1세대는 지위 재산 등 모든 것을 버리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다. 작가의 어머니는 폴란드에서 누대에 걸쳐 자리잡고 살던 유대인 집안 출신이고,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자리를 잡고 살다가, 우크라이나를 거쳐 리투아니아로 이주한 집안 출신이다. 어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서만 왔겠는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각국을 비롯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왔다. 그 중 비중이 가장 큰 것은 아슈케나지, 즉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온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초기 이스라엘에서는 러시아어가 널리 통용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작가의 집안은 예루살렘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모든 이들이 이렇게 지위와 재산을 버리고 모여들었으니 그 구성은 또 얼마나 잡다했겠는가? 어중이떠중이부터 최고 엘리트까지, 또 엘리트들도 성향이 각양각색이었다. 초정통 유대 원리주의자에서 극좌 스탈린주의자까지…직업군도 마찬가지,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다 있는 복잡한 구성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유명 학자이지만 우유 배달하는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자기 전문 분야를 찾아서 대학에서 강의하는 사람도 있다. 살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6.25 후 청계천 판자촌 같은 곳도 있고, 길은 비만 오면 온통 질척질척한 진창이 되는가 하면, 공동주택이란 곳은 햇볕도 잘 들지 않고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는 곳이 많았다. 작가 자신도 어린 시절 그런 공동주택에서 살았으며 그래서 이런 생활상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모 세대, 조부모 세대가 이스라엘에 적응해 나가고 나라를 세우고, 전쟁이 일어나고 이스라엘이 막아내고, 작가는 키부츠로 가고, 거기서 아랍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총 들고 지키고.;.. 이런 식으로 소설은 전개가 된다.
작가의 집안이 엘리트 집안이어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집안과도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바로 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어릴 때 장난친 이야기도 있다. 즉 유수 학자 집안이다 보니까 이스라엘의 지도급 계층과도 교류가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 전후 이면의 스토리도 많이 나와 있다. 그러다 보니까 작가의 외가와 친가 집안의 이야기, 그리고 이스라엘의 건국사가 맞물려서 짜여 대서사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의 한 축이고, 또다른 한 축은 10대에 어머니를, 그것도 자살로 어머니를 잃은 애틋한 사모곡이다. 1권은 건국사의 비중이 크고, 2권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1권을 읽는 데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다. 잘 몰랐던 이스라엘 건국 전후의 여러가지 역사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2권은 그 후의 스토리, 그러니까 내가 많이 알고 있는 부분이 서술되고, 또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부분도 많고 해서 술술 빨리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의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을 앓은 끝에 자살했다. 이것도 한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럽에서 넘어온 유대인들의 어떤 정체성… 그러니까 급하면 러시아어가 튀어나오고, 필요할 때는 히브리어를 써야 하는 언어 생활에서 보듯이 정체성의 혼란, 분열 또는 이중성에서 나오는 고뇌의 파국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러시아나 다른 동유럽 나라에서 ‘그냥 좀 살다 온 것’이 아니다. 누대에 걸쳐 살다가 하루아침에 뿌리가 뽑혀서 팔레스타인으로 온 것이다. 그것이 어머니의 우울증 속에 자기 존재의 정체성의 갈등으로 함축돼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우울증과 자살도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보고 아주 많은 것을 깨달었다. 이는 단지 유대인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다. 작가 자신이 직접 총을 들고 아랍인들과 싸웠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스라엘과 아랍,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또는 아랍인과의 친선과 융화, 공존을 부르짖는다. 그래서 이스라엘 우파에게는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정치적 성향, 이데올로기…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어찌 보면, 세계 모든 민족이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 책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유대인과 이스라엘 국가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대서사시라 할 만하다.
대서사시라고 해서 딱딱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소설로서 충분히 재미있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영화는 2015년 나탈리 포트만 감독·주연으로 제작되어, 국내에서도 개봉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