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2번째 르네상스가 있었다
『세기말 빈』/칼 쇼르스케/글항아리/2014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윌리엄 존스턴/글항아리/2008(절판)
『트인 데로 가는 길』/아르투르 슈니츨러/지식을만드는지식/2019
Ⅰ
아름다운 음악 도시 빈의 하수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수도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말이다. 하수도에 어떻게? 반문할 수 있지만, 그 하수도라는 것이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지하에 수로가 있고,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는 그런 하수도 망이기에 가능하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이미지는 아름답고 음악이 흐르는 낭만의 도시다. 파리만큼이나, 어쩌면 파리보다 더 낭만적인 이미지 아닐까? 지금도 어릴 때 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아름다운 장면이 생생하다. 그때 본 장면이 빈의 이미지를 결정했고,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나는 빈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실제 가보지 않았다. 그냥 ‘예쁘기만 한 도시’라서…
어느 날 무심코 TV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이런 이미지를 바꿔 놓았다. 어떤 사진작가가 찍은 빈의 하수도에 사는 빈민들의 사진이었다. 오래전 일이라 누구의 어떤 작품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예쁘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 이면에 이런 어두운 면이 있었구나 싶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빈이라고 부자들만 화려하고 로맨틱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잘못 아닌가. 가난한 사람도 있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이른바 3D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래서 화려하고 로맨틱한 삶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말이다.
그 일로 빈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빈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수도였고, 세기말 빈은 새로운 예술 사조, 새로운 사상이 꽃핀 혁명적인 도시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런 무지함은 나치 독일 관련, 또 유대인 관련 역사를 더듬어보는 동안(제8, 9화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건배를 1, 2」 및 제11화 「아슈케나지 친구들」) 더욱 뼈저리게 부각되었다. 그리고 다시 보니까 세기말 빈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변혁의 중심이 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나는 그냥 ‘2번째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Ⅱ
2번째 르네상스
우리는 르네상스를 인류 문명의 황금기로 기억한다. 고대의 부활, 인간 중심의 세계관, 조화와 균형의 미학... 그런 것을 많은 천재들이 동시에 나타나 이룩해 내었다.
그런데 19세기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는 전혀 다른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그것은 재생이 아니라 해체, 조화가 아니라 불안, 확신이 아니라 의심에서 비롯된 르네상스였다. 그래서 “세기말 빈은 제2의 르네상스인가?”라는 질문은 반쯤 맞고 반쯤은 빗나간다. 그것은 창조적 해체의 르네상스였다.
칼 쇼르스케의 『세기말 빈』은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치가 무력화되고 제국이 몰락해 가자, 빈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그 공백을 문화와 사상으로 채웠다. 클림트와 분리파가 전통 예술을 벗어나 새로운 미를 추구했고, 프로이트는 인간 내면의 무의식을 해부했으며, 쇤베르크는 조화의 음악을 버리고 불협화음과 무조음악으로 불안을 형상화했다. 쇼르스케의 말대로 “정치의 붕괴가 문화를 낳은 것”이다.
윌리엄 존스턴의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은 한 발 더 들어간다. 그는 세기말 빈 지식인의 정신 구조를 해부한다. 불안과 신경쇠약, 주체의 위기, 정체성의 혼란이야말로 모더니즘의 출발점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프로이트는 욕망을, 유대인 지식인들은 자기 존재의 모순을 파고들었다. 제국의 몰락은 단지 정치의 붕괴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균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 균열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소설 『트인 데로 가는 길』이다. 그는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의사이자 작가로서 인간의 무의식과 억압된 욕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그의 주인공은 사회적 이상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며 몰락해 간다. 그 모습은 제국 시민 전체의 초상이기도 했다.
여기서 유대인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세기말 빈의 천재성과 창조성 뒤에는 눈부신 유대 지식인들의 활약이 있었다. 언어·학문·예술·언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대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독일어 교육을 매개로, 유대인과 독일인은 마치,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찰떡궁합” 같은 관계였다. 문화적으로는 가장 잘 맞는 파트너였고, 그래서 제국과 사회가 필요로 할 때 가장 먼저 호출되는 계층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반유대주의도 폭발했다.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수록 유대인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자”로 지목되었고, “너무 성공한 소수자”는 질투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빈 시장이었던 카를 뤼거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누가 유대인인지는 내가 정한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유대인을 규정하고 핍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선동한 대중적 반유대주의, 그리고 거기서 정치적 영감을 얻은 청년 히틀러는 그 아이러니의 상징적 사례였다.
프랑스의 드레퓌스와 빈의 헤르츨은 이 모순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드레퓌스는 프랑스 장교로서 공화국 시민임을 믿었지만, 유대인이라는 낙인에 무너졌다. 헤르츨도 처음에는 동화된 기자로 살고 싶었지만, 드레퓌스 사건을 목격하고 시오니즘의 창시자가 되었다. 동화하려 했지만 배척당한 이들의 경험이, 유대 민족주의의 불씨가 된 것이다. (제11화 「아슈케나지」 친구들」 중『유대인의 역사』)
세기말 빈은 그래서 우리에게 두 가지 얼굴을 남겼다. 하나는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말러, 클림트로 이어지는 창조적 해체의 르네상스이고, 다른 하나는 뤼거와 히틀러로 이어지는 파괴적 민족주의의 서막이다. 다민족 제국의 포용과 갈등 속에서 유대인은 문화의 주역이자 희생양이었다.
오늘날 불안과 위기가 세계 곳곳을 뒤흔드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세기말 빈은 묻는다. “이 불안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창조를 길어 올릴 수 있는가, 아니면 또다시 증오와 배척으로 몰락을 재연할 것인가?”
Ⅲ
“표지는 배반하지 않는다”? - 세기말 빈
『세기말 빈』/칼 쇼르스케/글항아리/2014
표지에 시쳇말로 ‘꽂혀서’ 덜컥 산 책이다. 황금빛 멋진 표지에 제목마저 “세기말 빈”이라니! 마침 빈에 대한 궁금증이 있던 차였다. 그러니 들춰볼 필요도 없었다. 책 표지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가 주도한 빈 분리파의 미술잡지 ‘베어 자크룸’(Ver Sacrum)’ 표지 중 하나다.
사실은 내가 무지해서 그렇지 이 책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명저였다. 국내에도 2006년에 이미 번역 출판되었다. 그것을 2014년에 다시 펴낸 것이다. 저자인 칼 쇼르스케의 이력을 보니 세기말 빈에 대해서는 아주 깊이 연구한 사람이다. 1915년 뉴욕 출생으로 문화사, 그중에서도 19세기 후반 유럽을 집중적으로 공부했으며, 저서도 그 시기 유럽 문화에 집중돼 있다. 특히 2012년에는 빈의 명예시민으로 선정되었다. 그만큼 빈과는 인연이 깊다는 뜻이 되겠다.
책은 서두부터 흥미진진했지만,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거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저자가 쓰는 개념이 내겐 꽤 생소했고, 그래서 손에 잡히는 듯, 아닌 듯, 이해가 되는 듯하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상태로 남았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책을 읽어 나가는 발걸음을 뒤로 잡아당기는 듯하면서도,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묘한 힘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이는 나의 ‘책 대충 읽기’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책 읽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마침내 완독 한 후에는 크고 묵직한 것이 가슴속에 남았음은 물론이다.
제1장은 ‘정치와 프시케: 슈니츨러와 호프만슈탈’이다. ‘프시케’란 말도 생소하고, 슈니츨러와 호프만슈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 정도로 나는 무지했던 것이다. 당장 ‘정치와 프시케’라니? 내가 아는 프시케는 에로스의 애인인데… 아무튼 그렇게 꾸역꾸역 책을 읽은 결과, 잡은 개념, 또는 키워드는 ‘지리멸렬’이란 것이었다. 실은 그것도 이 책만 읽고 얻은 것이 아니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서 여기서 소개되는 슈니츨러의 소설 『트인 데로 가는 길』까지 읽은 후에 떠오른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참 특이했다. 유럽의 모든 나라가 대항해시대에 이은 제국주의시대, 세계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시기에 거꾸로 유럽 대륙 안으로만 침잠하고 있었으니까… 자유주의의 희망과 낙관은 수그러들고 환멸과 불안이 슬금슬금 그 자리를 채우고 있던 시기다. 정치는 비전을 잃고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이에 따라 인간은 프시케의 세계, 즉 내면, 심리, 무의식, 성(性)과 욕망 같은 정신세계로 빠져든다. 이런 소통 불능의 시대에 슈니츨러는 내면으로만 침잠하는 인간상을 그리고 호프만슈탈은 언어의 붕괴를 표현한다.
그래서 정치도 프시케도 ‘지리멸렬’의 상태에서 방황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서 링슈트라세라는 건설 프로젝트를 통하여 건축과 도시에 반영된 당시 빈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게오르크 폰 쇠네러와 카를 뤼거의 정치 역정,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구스타프 클림트의 모더니즘 미술 등을 거쳐 오스카 코코슈카의 표현주의 회화,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12음 기법과 무조음악에 이르기까지 문학 건축 공예 정치 정원 미술 음악 정신분석학 등 지성의 폭발을 꿰어내 찬란한 ‘보석 목걸이’를 완성해 낸다.
그렇게 이 책을 읽다 보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화의 큰 틀이 바로 이 시기,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만들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 시기 빈을 한마디로 요약한 내 나름대로의 표현이 ‘지리멸렬’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리멸렬’이란 정치적으로는 교착과 분열, 문화적으로는 언어와 예술의 파편화, 사회적으로는 부르주아 삶의 표피적·유희적 성격, 심리적으로는 자아와 욕망의 분열을 뜻한다.
서구 열강이 세계 각지에서 식민지 쟁탈전에 열을 올리는 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유럽 내부로 침잠하면서 온갖 모순 속에서 체제가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 수도 빈에서는 그 무기력한 붕괴 속에서 지성과 예술이 인간 내면으로 파고들면서 기성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그 폐허 위에 새로운 문화를 쌓아 올린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나치즘이 무르익어가는 모습이 기괴하게 오버랩된다.
이 책의 본문은 5백여 쪽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스토리와 사상은 전집 한 질 분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덧붙여...
2024년 11월 30일부터 2025년 3월 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비엔나 1900년, 꿈꾸는 예술가들’이란 제목으로 특별전이 열렸다. 5부로 구성된 전시회는 3부까지는 구스타프 클림트, ‘비엔나 분리파’, 그리고 그들의 철학이 반영된 비엔나 디자인 공방 등의 작품이 소개되었고, 4부와 5부는 클림트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후반부는 특히 에곤 실레가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았다. 바로 이 책 『세기말 빈』의 내용을 작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Ⅲ
‘유럽 한복판에 있는 신대륙’과 ‘즐거운 종말’
옛 유럽의 한복판에서 대륙 하나를 발견한다? 유럽 한복판의 신대륙이라니… ‘신대륙’이라고 하면 통상 아메리카 대륙을 뜻하지 않는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한 나의 무지를 한탄했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책이 있어서 위로를 받는다. 나만 무지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잘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오스트리아 스스로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그곳의 벨렝 지구, 그중에서도 히에로니무스 수도원은 대항해시대의 ‘성지’라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그 바닷가에 대서양을 바라보고 서 있는 벨렝탑(Torre de Belém) 앞에 선다. 발아래 파도가 철썩인다. 그 파도는 같은 파도이되 여느 파도가 아니다. 멀리 아메리카 대륙에서, 또는 희망봉을 돌아서 수만 리 달려온 물결이다. 가슴이 찡해 온다. 바스코 다 가마라는 이름 때문이다.
나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가르쳐주었던 어릴 적 ‘다락방 서재’(형과 누나들의 책이 쌓여 있었던 다락방/제2화 ‘다락방 서재’ 참조)에는 나중에 내가 구한 책도 한두 권씩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중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대항해시대에 관한 책이 있었다. 거기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바스코 다 가마와 마젤란이다. 그 바스코 다 가마가 바로 이 바닷가 히에로니무스 수도원 교회에 영면하고 있는 것이다. 바스코 다 가마는 1497년 리스본 벨렝 해안에서 출항해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개척했다. 그는 1524년 인도 코친에서 세상을 떠났고, 처음에는 그곳에 매장되었다가 1539년에 포르투갈로 이장되었다. 히에로니무스 수도원교회는 당시 뱃사람들이 출항 전 무사 귀환을 염원하며 기도를 올리던 곳이라고 한다. 바스코 다 가마와 마젤란은 나에게 먼 세계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었고, 그래서 해군사관학교 진학을 희망하기도 했었다.(해사 진학은 어릴 때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체력이 따라주지 못해서 포기했다.)
포르투갈이 선봉에 섰던 대항해시대는 이른바 ‘신대륙’을 발견하고, 제국주의 시대를 열고, 그래서 오늘날의 세계 질서를 만들어내는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여는 것이었다. 르네상스로 문화를 부흥시키고, 산업혁명으로 기술을 발전시키며, 대항해시대를 통해 미지의 땅으로 진출함으로써 유럽은 세계의 패권을 잡았다. 사실 ‘신대륙’이란 것은 유럽인들의 입장일 뿐이다. 그전에도 존재했고, 거기에서도 사람들이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키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유럽인들이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었으므로 ‘신대륙’이라고 하는 것일 따름이다.
유럽 한복판에서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땅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대한 나의 무지를 한탄했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조차도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무지는 무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모두가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위로를 받는다. 그런다고 해서 무지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변명거리는 된다. 이제 살펴볼 책 맨 첫 페이지 첫 문장이 그렇다.
“한 미국인 콜럼버스가 대륙 하나를 발견한다. 이 대륙은 옛 유럽 한복판에 있지만, 오늘날의 유럽 사람들 대부분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오스트리아의 20세기 대표 지성으로 꼽히는 프리드리히 헤어의 추천사 첫 문장이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1972년이니, 지금은 훨씬 많이 알려져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만큼 최근까지도 지성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는 말이다.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윌리엄 존스턴/글항아리/2008
이 책은 구성이 조금 특이하다. 대뜸 사진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나온다. 세기말 빈의 모습, 대표적인 미술 작품, 건축물, 지성인 등의 사진 이다. 이는 책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시각자료'다. 그 다음 앞서 소개한 프리드리히 헤어의 추천사가 나오고, 목차, 저자 서문으로 이어진다. 서문의 첫 문장도 인상적이다.
“브로흐(Herman Broch)는 1848년과 1918년 사이를 '즐거운 종말'이라 불렀다."
“즐거운 종말”이라니… 저자가 굳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해 이 말로 자신의 저술을 시작하는 것은 그만한 뜻이 있기 때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헤르만 브로흐(1886 ~ 1951)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다. 국내에도 『몽유병자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현혹』 등이 번역 소개돼 있다. 그는 문명의 위기와 붕괴를 탐구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즐거운 종말(die fröhliche Apokalypse/joyful apocalypse)”이란 아이러니를 즐겨 사용했다. 그것은 그가 합스부르크 제국 말기 빈 사회에서 체험한 화려함과 몰락의 동시성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즉 제국의 황혼기에 나타난 퇴폐적 향락, 문화적 창조의 절정, 동시에 다가오는 몰락의 징후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으로 이 책의 전체 색채가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즉 저자가 말하는 것은 ‘몰락 속의 창조성’이다. 정치·사회적으로는 제국이 해체를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인류 지성사에서 드물게 보는 압축적이고 강렬한 창조의 폭발이 일어났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두 번째 르네상스’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 소개는 저자 서문을 인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다. 그가 서문에서 깔끔하게 요약해 놓았기 때문이다.
“… 오스트리아와 그 후속 국가들에서는 20세기의 사상가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수많은 사상가들이 배출됐다… 이 책에서는, 몰락해 버린 바로 이 제국이 그토록 많은 혁명적 사상가를 보유하고 있었던 사실을 연구하려고 한다. 학문적 업적은 물론 오스트리아인으로서의 정신적 자세를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70여 명의 중요한 인물들에 관한 서술과 더불어 6부에 걸쳐 사회학적 분석을 하고 있다. 제1부는 지도적인 경제학자와 법 이론가, 사회주의자들이 개혁을 촉구하는 가운데서도 어떻게 합스부르크 제국이 관료주의에 의해 지탱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제2부에서는 빈의 카페, 극장, 콘서트홀이 얼마나 창의성과 자족감의 온상 역할을 했던가를 살펴본다. 제3부에서는 빈 인상주의로 알려져 있는 세기말의 세계관을 다룬다. 그것은 무상함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실증주의적 학문과 더불어 마흐, 비트겐슈타인, 부버, 프로이트와 같은 개척자들을 만들어냈던 세계관이기도 하다. 제4부에서는 뵈멘 지방의 독일인에게서 꽃 피웠던 세계 조화의 미래상을 기술하고 있다. 이들 예언자 중 철학자들은 라이프니츠적 믿음을 신봉했으며, 그것의 붕괴 위기는 카프카나 말러 같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제5부에서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다른 지역에서와는 달리 헝가리에서 희망적인 사고가 얼마나 정치적 행동주의를 촉구했는지 기술하고 있다. 루카치나 만하임 같은 참여 지식인들은 지식의 사회학을 체계화하는 한편, 헤르츨이나 노르다우 같은 헝가리 인들은 정치적 시온주의를 창시했다. 제6부에서는 기술에 대한 적대감 또는 양극적인 대립에 대한 기쁨 등과 같이 오스트리아인의 사고에 스며 있던 여러 가지 정신을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방법론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것은 정신사를 세 가지 분야로 구분해 연구, 서술한다는 것이다. 그 세 가지를 저자는 ‘이념사’, ‘사상가의 사회학’, ‘참여 지식인들의 사회학’으로 명명한다. ‘이념사’라는 것은 “개인이나 사회와는 별도로 이념 자체의 서술에 그 본질을 두고 있는” 것을 말한다. ‘사상가의 사회학’은 환경이 개인의 사고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연구하는 것이고, ‘참여 지식인’의 사회학이란 사상가들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자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즉 ‘사상가의 사회학’은 “사상가를 사회적 영향의 수용자로서”, ‘참여 지식인의 사회학’이란 “사회적 영향의 원조로서” 각각 다룬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어느 한 사람도 소홀히 다룰 수 없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혼기에 꽃 피운 지성인 70여 명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당연히 이 내용을 모두 소화하려면 꽤나 ‘내공’이 필요하고, 그것이 부족한 입장에서 모든 것을 정확하고 충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그려지는 큰 그림 속에서 당시의 지성사와 그것이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는 영향은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방대한 내용을 다루는 만큼 이 책은 본문만 650쪽에 육박하고, 미주까지 포함하면 720쪽이 넘는다. 번역에는 국내의 권위 있는 해당 분야 학자 8명이 참여했다. 출판계의 역작이고, 그만큼 귀한 책이다.
저자 윌리엄 존스턴은 하버드대 출신의 역사학자로 유럽지성사를 집중 연구한 사람이다. 그의 박사 과정 지도 교수는 저명한 역사학자 크레인 브린턴이었다. 매사추세츠 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내다가 퇴임했다. 이 책은 원제가 ‘The Austrian Mind: An Intellectual and Social History, 1848‑1938’이며 출간되기 전 원고 상태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오스트리아 역사상(Austrian History Prize)을 받았다.
Ⅳ
황홀한 빈의 황혼…그러나 지리멸렬한 연애
『세기말 빈』과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을 통하여 화려한 불꽃을 내며 사그라져간 합스부르크 제국과 그 결과 남은 놀라운 ‘기념비’를 살펴보았다. 둘 다 내용도 녹록지 않고, 분량도 많은 이른바 ‘벽돌 책’이라 할 만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러면 이들 책에서 그려진 빈과 그곳의 정신이 실제 삶에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그것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한 젊은 귀족 청년의 삶과 연애 이야기다. 그 스토리를 담은 책을 읽어보자. 바로 『세기말 빈』의 제1장에서 소개되는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연애 소설’이다. 그 연애 속에 세기말 빈의 사회상, 즉 ‘즐거운 종말’이 적나라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트인 데로 가는 길』/아르투르 슈니츨러/지식을만드는지식/2019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는 유대인으로 문학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부친의 뜻에 따라 의학을 공부해 의사가 되지만, 결국 문학의 뜻을 이룬 ‘세기말 빈’의 작가다. 이 책도 판형이 작기는 하지만 70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다. 그래도 앞선 두 권의 벽돌책에 비하면 소설이므로 훨씬 가볍게 읽을 수 있다.
내용은 한마디로 연애 소설이다. 주인공은 게오르크 폰 베르겐틴이란 젊은 귀족이다. 그는 음악적 재능이 있는 작곡가다. 음악적 재능이 있는 잘 생긴 젊은 귀족. 당연히 여성 편력이 만만찮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베르겐틴은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의 눈을 벗어나 출산하기 위해 빈을 떠나 지방으로 간다. 그러나 사산을 하게 되고, 그 여파로 둘 사이는 틀어져 헤어지고 만다. 그렇게 해서 게오르크 폰 베르겐틴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트인 데’로 나간다.
그런데 여기에서 묘사되는 연애는 ‘지리멸렬’ 그 자체다. 연인들의 이탈리아 여행, 빈의 아름다운 풍경, 시골의 신선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등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연애는 로맨틱하지만은 않다. 왜 그럴까?
베르겐틴은 아주 재능이 있는 청년이다. 그러나 그 재능을 살려서 뭔가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우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매일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더 노력해야지”다. 물론 지방 도시의 궁정 오케스트라 같은 것을 맡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아주 무기력하다. 그 무기력은 연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예컨대 상대 여성이 듣기를 원하는 진심 어린 말, 사랑한다는 말을 ‘화끈하게’ 하지 못하고 빙빙 돌려서 변죽만 울리다가 결국 헤어진다.
게오르크 폰 베르겐틴은 무기력하게 몰락해 가는 당시 귀족의 전형이다. 시대는 변하고 귀족사회는 무너져가고 있는데 오페라와 연애를 즐기면서 이전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재능도 발휘하지 못하고, 뭔가 자기 인생을 개척하면서 살지도 못하며 무기력하게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다. 삶도 사랑도 무기력하다. 이런 모습은 세기말 오스트리아의 단면이다.
바로 이런 모습 때문에 아르투어 슈니츨러와 그의 작품이 『세기말 빈』의 첫 장에 다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친다면 이 책의 의미는 1/3로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축, 세대 간의 단절과 사회의 소용돌이가 있다. 베르겐틴의 세대와 이전 ‘아버지’ 세대는 판이하게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아버지 세대는 자유주의의 믿음으로 입헌정치를 비롯한 많은 것을 성취했다. 낙관이 지배하던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들 세대에는 그것이 무너지고 민족주의 사회주의 시오니즘 등이 대두하면서 사회가 분화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런 상태에서 이 두 세대, 그리고 귀족과 부르주아의 삶 등이 교차하면서 모두가 세기말의 큰 변혁 속에서 허물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의 모습도 두드러진다. 아직 유대인들은 사회에 녹아들어 있는 상태다. 자유주의 혁명이나 그 후의 새로운 사회의 모색 등에서 유대인들도 독일인이나 제국 내 다른 민족들처럼 적극 참여하고 활동하면서 오스트리아를 조국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발 밑에서는 기초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파시즘이 잉태되고 반유대주의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 작가 화가 등 많은 재능 있는 인물이 허물어져가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
게오르크 폰 베르겐틴의 연애, 귀족과 부르주아의 삶과 미래, 유대인 커뮤니티의 불안…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모든 계층이 무기력하게 허우적대고 있다. 모두가 트인 곳으로 나가기를 열망하지만 현실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트인 곳이란 개인과 사회의 미래가 트인 곳을 말한다. 이는 곧 현실은 사방이 꽉 막혀 있다는 뜻이다.
독일 민족주의,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로서 반유대주의, 또한 거기에 대립항이 되는 시오니즘 등 갈등이 분출한다. 주인공 게오르크는 살롱이나 지인들의 모임에서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거나 논쟁을 참관한다. 즉 당시 오스트리아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둘러싼 논쟁을 게오르크의 눈을 통하여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제기되는 온갖 문제들은 곧 20세기 세계의 정신과 질서를 좌우하고 규정짓는 뼈대가 된다.
‘지리멸렬’한 연애 이야기 속에 ‘즐거운 종말’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세기말 빈의 스토리는 이처럼 거대하고 풍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