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잘못되었나?
『무엇이 잘못되었나』/버나드 루이스/나무와숲/2002
『오스만 제국』/오가사와라 히로유키/까치/2020
『우리 동네 아이들』/나지브 마흐푸즈/민음사/2015(2편)
『눈』/오르한 파묵/민음사/2005(2편)
『프랑스어의 실종』/아시아 제바르/을유문화사/2021(2편)
앞서 세기말 빈에서 일어난 ‘지성의 폭발’ 현상을 살펴 보았다.(제12화 「세기말 빈 – 그 화려한 황혼」) 그런데 유럽의 라이벌이었던 이슬람 세계는 같은 시기에 왜 세계사의 중심에서 밀려나 버렸을까? 그 의문이 오늘의 이 책읽기로 나를 이끌었고, 여기서 나는 이슬람의 근대화 실패를 목도하고 있다.(‘실패’란 표현은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가장 제한적인 의미다)
그렇다면 지금 ‘문화적 결정론’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통해 냉전 이후의 세계 주요 갈등은 이념이나 이익이 아니라 문화와 문명 간의 차이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경제력, 군사력 같은 물질적 요인보다, 문화·종교적 정체성을 갈등의 근본 요인으로 중시했다. 이는 ‘문화적 결정론’이란 비판을 낳기도 했다.
세기말 빈의 두번째 르네상스와 이슬람의 근대화 실패를 대비하는 구도로 놓으면, 얼핏 ‘문화적 결정론’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슬람이기 때문에, 또는 이슬람 문화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은 왜 근대화에 실패했는가”라는 것이다. 즉 근대화 실패의 역사적 맥락을 살피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 결정론’과는 거리가 멀다.
Ⅰ
카이로에서 주민등록증으로 검문 통과하기
아주 오래전 이집트를 여행했을 때 이야기다.
오늘날에도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여기저기서 검문이 많았다. 거리에서 괜히 보안군이 차를 세우고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때 현지 유학 중이던 지인이 그 검문을 통과하는 신박한 방법을 직접 보여줬다.
그는 아랍어에 능통했지만, 모르는 채 하면서 신분증 제시 요구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제시했다. 이걸 받아 든 보안군 병사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그 병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초소 안에 있는 상관을 불렀다. 장교라고 주민등록증을 알아볼 리가 없음은 물론이다. 그는 주민등록증을 앞뒤로 살피고 사진과 얼굴을 대조하더니 마치 확인했다는 듯이 아랍어로 뭐라고 말한다. 나의 지인은 시치미를 떼고 못 알아듣는 척한다. 그러니까 그 장교가 주민등록증을 돌려주면서 하는 말이 “오케이, 통과!”.
“아니, 뭘 알아보긴 한 거야?”
“알기는 뭘 알아… 자, 병사는 뭔 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냥 자기 상관에게 떠넘기는 거야. 그럼 상관은? 자기도 모르면 부하 앞에서 체면이 안 설 것이고, 더 시간을 끌면 머리만 아프니까 아는 척하면서 그냥 통과시키는 거야.”
“그게 안 통하면?”
“그럼 여권 내놓으면 되지…”
그래서 나도 과감하게 실험을 해봤다.
외국인에게는 유적지 입장료를 비싸게 받는다. 그래서 내국인 요금과 주민등록증을 창구에 들이밀어봤다. 아랍어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거짓말처럼 입장권과 주민등록증이 되돌아 나왔다.
치기어린 장난이었지만, 이것은 근대화 과정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후유증을 아직까지 겪고 있는 이슬람의 현실을 보여주는 은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5년 9월 현재도 가자지구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도대체 왜 팔레스타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아랍국가들은 왜 이 작은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하고 전쟁에서 번번이 패배하는 것일까?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보는 의문이다. 바로 그 의문 속에서 카이로의 주민등록증 에피소드가 떠올랐고, 거기에 담긴 의미를 찾아낸 것이다.
Ⅱ
이슬람은 왜?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아랍국가들의 전쟁, 즉 중동전쟁은 지금까지 1948년, 1956년, 1967년, 1973년 등 4차례 있었다. 제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 ‘독립전쟁’이고, 2차는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국유화로 빚어진 ‘수에즈전쟁’, 3차는 이스라엘이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를 선제 공격해 6일만에 영토를 3배로 늘린 ‘6일전쟁’, 4차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기습공격해 이스라엘이 거의 멸망 위기로 몰렸다가 전세를 역전시킨 일명 ‘욤키푸르전쟁’이다. (유대교의 큰 명절인 ‘욤 키푸르’, 즉 대속죄일을 틈타 기습 공격한데서 붙은 이름)
아랍국가들이 인구, 병력 규모, 장비 등 모든 면에서 절대 열세인 이스라엘을 한번도 이기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분석이 나온다.
우선 양측 국민의 마음가짐부터 달랐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온 국민이 절박한 생존의 기로에 서서 똘똘 뭉쳤다. 상대적으로 아랍 측은 그런 절박함이 훨씬 덜했다. 징집된 아랍 연합군 병사들에게는 목숨 걸고 싸워야 할 동기가 부족했다는 말이다. 여기에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작용한 양측의 군 지휘체계와 전략전술의 차이, 국제정치의 역학 구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등의 요인도 컸다.
그러나 또 하나 근본적인 요인이 있으니, 그것은 ‘문화’다. 카이로의 주민등록증 에피소드가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뿌리깊은 역사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기독교권과 이슬람권 사이의 우열은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역전된다. 유럽이 중세 암흑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이슬람은 그리스 로마 등 고대 문명을 이어받아 과학 기술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유럽을 압도했다. 이슬람은 이런 유럽인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해 무시했다. 그러나 중세를 지나면서 각성한 유럽은 이슬람이 보존하고 발전시킨 선진 문명을 다시 부지런히 받아들여 배웠고, 그것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뤄냈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대항해시대, 산업혁명 등을 거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반대로 이슬람, 특히 당시 이슬람 세계를 지배했던 오스만제국은 이와 같은 유럽의 변화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과거, 즉 중세적 이슬람 문화에 안주해 있었다. 그것이 근대로 넘어오면서 군사적 패배로 나타났고, 결과는 이슬람권의 몰락이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오스만의 1683년 제2차 빈 포위 공격 실패를 유럽과 이슬람의 세계 패권 역전의 기점으로 보기도 한다.
오스만제국이 몰락하고 이슬람권은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이슬람은 자력으로 근대화의 길을 가지 못하고 강제로 근대성을 ‘이식’ 받았다. 그 과정은 주로 식민지 엘리트들의 교육, 특히 식민 종주국 유학 등의 형태로 이뤄졌다. 반면 민중은 그대로 중세적 이슬람 체제에 머물러 있었다. 소수 귀족 상류층 엘리트 계층과 절대 다수 민중의 괴리가 메울 수 없이 커졌고, 그 괴리는 독립 후 근대화 과정에서 그대로 함정으로 남아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국도 제국주의에 희생되었지만, 역사적으로 광범위한 문화적 토대와 남다른 교육열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와 같은 괴리가 크지 않았고, 따라서 근대화 과정의 난관도 극복해낼 수 있었다.
카이로의 주민등록증 에피소드는 이와 같은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병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장교는 엘리트로서 자신을 차별화해야 한다. 무능을 감추는 것이다. 여기에 소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행태는 중동전쟁에서 아랍측의 패인 중 중요한 요소로 지적된다. 철저한 계층 구조 속에서 존중도 없고 소통도 없다. 오직 상명하복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일반 병사들은 무지했다. 실제 전쟁 당시 아랍군 병사들은 장비가 조금만 복잡해져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한다. 매뉴얼도 주어지지 않았고, 장교들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거나 못했다는 것이다. 같은 장교라도 하급 장교와 고급 장교 사이에 똑 같은 논리가 적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일선 지휘관들은 전장의 상황에 따라 자율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도 권한도 없었다. 여기에다 아랍연합군이 소련의 장비와 군사교리를 지원받았으니 그 경직성은 더해졌을 것이다. 이런 체제에서 부패는 피할 수 없다. 무능과 부패 속에서 일일이 상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군대와 전장 상황에 따라 유기적이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군대가 맞붙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요인 외에 당시 아랍권 전체의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팔레스타인 대의’를 중심으로 이슬람권이 하나로 뭉쳐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1차 중동전쟁 결과 이스라엘은 독립을 확보했고, 이집트는 가자지구를, 요르단은 서안지구를 각각 차지했다. 이는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이 그 위에 국가를 세우려고 고군분투하는 바로 그 땅이다. 그렇다면 당시 이미 가자와 서안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즉 ‘팔레스타인 대의’란 명분일 뿐, 아랍국가들은 자기 잇속 차리기에 바빴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자기 땅을 지킬 수 있는 구심점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팔레스타인 지도자였던 ‘그랜드 무프티’ 아민 알 후세이니는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에 협조했던 탓에 ‘준전범’ 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전쟁 범죄를 저지른 증거가 나오지 않아 뉘른베르크 재판을 받지는 않았다.)
Ⅲ
무엇이 잘못되었나?
이슬람력은 ‘히즈라’, 즉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이 있었던 622을 원년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2025년은 이슬람력으로는 1403년인 셈이다. 단순 연도로만 따지면 이슬람은 현재 중세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기독교의 1400년대와 이슬람의 1400년대가 비슷한 모습 아닐까? 같은 발전 단계를 거쳐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6백여 년 터울로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기독교 원리주의, 종교적 폭력, 종교재판, 종교 전쟁 등에서 오늘날 일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태도와 유사한 면모를 볼 수 있다.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면, 이미 누군가 그런 측면을 검토하고 연구했다는 뜻일 터이다. 이에 대해 검색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일부 학자들이 ‘문명발달 주기의 ‘비동시적 동시성’(asynchronous synchrony)’이란 개념으로 탐색한 것으로 나왔다. 예컨대 아놀드 토인비는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과정 속에서 발전한다면서 이슬람교와 기독교에 대하여 ᇫ창시자(예수, 무함마드) 등장 → ᇫ이상주의적 공동체 형성 → ᇫ제도화, 권력화 → ᇫ부패와 세속화 → 정화 운동의 출현(종교개혁) 등의 순환과정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자기 정체성의 위기를 맞을 때 종교 원리주의가 급부상한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이 600년 터울을 두고 기독교의 역사를 따라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고 할 수 있지만, 학문적인 태도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이슬람이 비이슬람의 시각에서 볼 때는 확실히 근대 이전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측면이 많고, 따라서 오늘날의 이슬람 원리주의는 ‘이슬람 문명이 아직 근대화 이전 종교적 위기를 겪고 있는 단계’로 보는 시각은 설득력이 있다.
이런저런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책을 뒤지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이슬람이 무엇인지, 이슬람권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는지, 그 문화의 발달은 어떤 과정을 거쳤고, 그 사이에 사상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등등 전공자가 아닌 평범한 독서 애호가로서는 파고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럴 때 ‘콕 집어’ 핵심 내용을 한 곳에 모아서 쉽게 정리해주는 책이 필요하다. 마침 이슬람의 근대화 실패에 대해서는 바로 그런 책이 한 권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버나드 루이스/나무와숲/2002
책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어떤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면 그 원인에 대하여 2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우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문해 볼 수 있고, 또다른 방향으로는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전자는 내부 요인을 중시하고, 후자는 외부의 영향을 중시한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현대 이슬람이 처한 상황과 관련해 전자의 질문을 채택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모색한다.
저자인 버나드 루이스는 영국 런던 출신의 권위있는 중동학자다. 런던 대학교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국내에서 그의 저서는 이 책 외에도 『중동의 역사』가 번역되어 있다. 이 책 『무엇이 잘못되었나』는 중동의 근대화 실패를 다룬 책으로는 첫 손가락에 꼽히는 대표적인 저작이다.
부제는 ‘서구와 중동, 그 화합과 충돌의 역사’이다. 이는 방법론을 말한다. 즉 서유럽과 이슬람 관계의 역사를 세밀하게 살펴봄으로써 이슬람의 오늘을 진단한다는 것이다. 이 책 발간 직전인 2001년 9.11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미 발간 준비가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9.11테러를 계기로 나온 책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나 절묘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져, 특히 미국에서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앞서 ‘콕 찍어’ 정리해 설명해준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사실과 논리가 선명하게 펼쳐진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대략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서술돼 있다. 처음에는 다소 실망스럽고,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읽어 나가다 보면 초점을 찾게 되고, 그래서 마침내 책을 덮을 때는 뚜렷하게 정리된 시각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에서 ‘중동’이라 함은 오스만제국이고, 다루는 시기는 대략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다.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가 경쟁하고는 있었지만, 이 시기 중동 또는 이슬람권을 지배한 것이 오스만이었기 때문에 연구 대상과 시기는 자연스럽게 제국의 존속 역사와 거의 겹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유럽과 오스만이 전쟁을 통해 조우하는 데서 시작한다. 전쟁은 자연스럽게 외교로 이어지고, 문화적인 교류와 교역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은 체제와 이념 등의 한계로 유럽의 근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리하여 그 결과가 오늘날까지 다양한 양태로 이슬람 세계에 반영되어 있음을 밝힌다.
나에게 가장 신선한 충격이 되었던 것은 이 책 서술의 전제가 되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것은 “수세기 동안 이슬람은 인류 문명 발전의 선두주자였다”라는 문장이다. 저자는 첫 문장을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라는 의문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두번째 문단에서 그 답을 찾아가는 전제로서 이슬람의 문명 발전 선두주자론을 내건다. 사실 이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도외시해 왔던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는 선사시대와 고대 문명기를 거쳐, 그리스·로마, 중세,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제국주의시대, 근대,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를 배우면서 늘 유럽을 중심에 두는 세계사 전개에 익숙하다. 중세 천년은 흔히 ‘암흑시대’로 요약된다. 동양, 특히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역사는 기독교-이슬람세계와 긴밀하게 연관되지 않았기 때문에 근대 이전의 역사는 다소 독립적이다. 그러니 세계사에서는 유럽 비중이 크고, 이슬람 세계 쪽은 소홀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슬람의 문명 발전 선두주자론은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까지 이어지는 뿌리 깊은 명제다. 7세기 이슬람 성립 후 중동 북아프리카를 석권하고 유럽 일부까지 확장되었던 이슬람 세계는 고대의 지혜를 흡수해 철학 과학 등 모든 방면에서 인류 문명의 보고가 되었다. 그 동안 유럽은 암흑기를 거치면서 가지고 있던 것마저 모두 잃어버린 ‘야만’ 상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슬람 세계에서 볼 때 유럽은 배울 점이나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야만의 세계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스만제국은 유럽의 동향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학문의 불꽃은 영원히 타오르지 않는다. 극성기에 오르면 오만해지고 나태해지기 마련. 이슬람세계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고, 오스만제국도 그랬다. 반면 이슬람의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리던 유럽은 팔을 걷어 부치고 이슬람 세계의 학문과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오스만제국에 와서 염탐하고 배우고 돌아갔다. 저자는 그런 현상의 단적인 예로 유럽에서 튀르크어나 아랍어를 배우는 사람은 많았지만, 오스만에서 유럽의 언어를 배우는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그리스 로마의 위대한 학문이 이슬람세계에 보전되어 있다가 유럽으로 역수출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도 잘 안다. 이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도 중요한 테마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그 결과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 계기는 전쟁이다. 오스만 군대가 유럽 군대에 패하는 경우가 생기고, 그것이 점점 잦아지는 것이다. 전쟁에서 지면 패인을 분석한다. 오스만 군대는 유럽 군대가 자신들보다 더 우수한 장비를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 기술을 배우고, 유럽의 기술자를 초빙하고, 나아가서는 결국 유럽 언어를 배우고 유학까지 보낸다.
이 과정에서 경직된 체제의 한계도 드러난다. 이슬람이 이교도의 것을 모방하거나 배울 수 있느냐는 종교적 차원의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는 권위있는 신학자의 ‘파트와’(유권해석) 즉 허락을 받아야 한다. 기술자를 초빙해서 배우는 것과 이교도의 땅으로 배우러 가는 것은 또 차원이 다르다. 물론 ‘파트와’를 얻어내긴 하지만, 별다른 제약 없이 이슬람 세계로 와 학문과 기술을 배우는 유럽과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류의 또다른 통로는 외교다. 오스만이 전쟁에서 이길 때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패했을 경우, 전후처리를 위한 협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스만은 외교라는 것을 배우고, 통역관과 외교관을 양성하게 된다. 그 통역관도 초기에는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을 썼다. 외교에서도 유럽 국가들은 수시로 오스만에 대사를 파견하고, 나아가서는 상주 공관을 개설했지만, 오스만은 한참 뒤떨어졌다. 상대방의 언어와 기술을 배워서 알고, 유학생을 보내고, 상주 외교 공관을 두어 그 나라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가,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어떤 분야에서든 경쟁하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오스만은 쇠퇴하는 것이다.
앞서 카이로의 주민등록증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었다. 그 에피소드의 뿌리가 여기까지 닿아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가장 탐독했던 부분은 이 책의 ‘5장 세속주의와 시민사회’였다. 세속주의와 시민사회의 부재 또는 허약성 때문에 엘리트와 민중 사이에 메꿀 수 없는 괴리가 생겼고, 이것이 근대화의 발걸음을 막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좌절을 불러 일으키고, 그 좌절은 때로, 그 극복책으로, 인류 문명 발전의 선두 주자의 위치를 되찾기 위하여 이슬람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만든다. 이런 서사 위에 원리주의가 자라고 그것이 ‘지하드’(성전)의 명목 하에 극단주의로까지 치닫는 것이다.
버나드 루이스의 『무엇이 잘못되었나』가 완벽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역사적 사실은 오늘날 이슬람의 현실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어지러운 오늘날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판매가 저조한 모양이다.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도 많지 않고,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려고 하면 ‘절판’은 아니지만, ‘품절’이라고 나온다.
‘콕 집어’ 주는 책이 또 한권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읽다 보니 오스만제국 역사에 대한 기초 지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배운 것이 많지 않아 친숙하지 않기도 하다. 게다가 나는 문화사를 가르쳤던 외국인 교수의 한 마디 때문에 그 역사에 대하여 좋지 않은 선입견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오스만을 “문명사에 긍정적인 영향은 하나도 없는 역사”라고 단언했었다. 아무튼 그런 선입견도 버리고, 오스만제국에 대하여 좀더 기초지식을 쌓아야 할 필요가 느껴졌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일본인 학자가 쓴 오스만 역사책이다. 내가 살펴본 여러 책 중에서 비교적 명료하고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학자들의 좋은 책도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제일 좋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읽고 도움을 받았기 때문일 뿐이다.
『오스만 제국』/오가사와라 히로유키/까치/2020
저자 오가사와라 히로유키는 1974년 홋카이도 출신의 오스만제국사와 터키공화국 역사를 전공한 학자다.
오스만 제국은 600년을 존속했고, 중동과 북아프리카, 유럽의 일부 등 3대륙에 걸쳐 판도를 넓혔던 대제국이다. 특히 기독교 세계, 유럽의 수호자처럼 여겨졌던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그 ‘심장’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해 위세를 한껏 떨쳤다. 그런 만큼 그 역사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저자는 제국의 창건자인 오스만 1세에서 시작하여 600년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간다. 그 방대한 역사를 344쪽 한 권의 책으로 축약해 놓았다. 일본인의 저서에서 나는 종종 ‘가벼움’을 느낀다. 물론 그것은 ‘경박함’과는 다르다. 이 책에서 그 ‘가벼움’은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복잡한 역사를 마치 일목요연한 계보도로 축약해 놓은 듯한 느낌 같은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소니 ‘워크맨’ 같은 인상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깊이 파고드는 전공자가 아니라면 충분히 오스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윤곽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충실하다.
책은 4부로 나뉜다. 제국의 역사를 4시대로 구분해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제1기와 제4기는 완전히 다른 나라처럼 보인다. 물론 600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세계도 완전히 달라졌으므로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기독교 등 이교도 중에서 똑똑한 아이들을 뽑아서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고, 교육시켜 인재로 활용하는 ‘데브시르메’, 그들로 구성된 친위 군단 ‘예니체리’ 등이 특이했다. 데브시르메 출신 중 총리 등 고관대작에 올라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이도 많았지만, 그들의 신분의 여전히 노예였다는 점이 놀랍기도 했다. 또 황후나 후궁의 경우, 데브시르메와 같이 그리스, 아르메니아, 발칸 등지에서 잡혀온 노예 출신이 많았고, 이들이 낳은 아들이 술탄에 오르는 사례가 많았던 점도 독특한 역사다. 이런 것들은 외척의 발호나 관료들의 세력화를 막는 장치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오스만 제국이 다민족 국가이고, 열린 체제였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왕위 계승 싸움에서 밀려난 왕자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등 잔혹사도 빼놓을 수 없다.
600년의 길고 복잡한 역사를 요약 소개하기는 불가능하므로 이 책 소개는 여기서 생략한다.
오스만제국은 “문명사에 긍정적인 영향은 하나도 없는 역사”는 아니며, “유럽의 병자”인 것 만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