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와 약탈의 세계사
『해적의 세계사』/모모이 지로/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2018
『해적』/누르딘 파라/아프리카/2019
Ⅰ
낭만과 악몽 사이… 라스베이거스의 해적
그때는 해적선의 전투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트레저 아일랜드’ 이야기다. 1993년 문을 연 이 호텔은 해적선과 해군 군함의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 쇼, 「버커니어만(灣)의 해전(Buccaneer Bay Sea Battle)」으로 인기가 있었다. ‘버커니어’(Buccaneer)란 카리브해의 해적을 일컫는 말이다.
‘보물섬’을 모티브로 한 이 호텔은 외관부터 해적선처럼 보이게 꾸몄다. 또 호텔 전면에는 수로를 만들고 다리를 건너서 입구로 들어가게 돼 있다. 해적쇼는 이 수로에서 다리를 사이에 두고 해적선과 해군 군함이 마주 보고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배 위에서는 해적과 영국 해군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전투 장면을 연기한다. 총과 대포를 쏘고, 실제 포탄이 날아가는 것처럼 불덩이가 날아다니고 배에 불이 붙는다. 격렬한 전투 끝에 해군 군함이 침몰하고 해적이 승리한다. 해군 함장은 배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진다. 진짜로. 관객들은 해적의 승리에 환호한다. 해군 편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해서 쇼는 끝났다. 그런데 끝나지 않았다. 별책 부록처럼 ‘뒤풀이’가 있다. 쇼가 막을 내리고 얼마 후, 침몰했던 군함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냥 쇼가 끝나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려니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마스트 위의 깃발부터 모습을 드러낸 군함이 서서히 올라오면 ‘장렬하게 전사한’ 함장이 침몰할 때 마지막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관객들이 열광한다. 쇼는 그렇게 끝난다.
이 쇼는 호텔 개장과 함께 시작됐다. 실감 나는 전투장면으로 당시 미국 엔터테인먼트의 힘을 보여주는, 정말 볼 만한 쇼였다. 그러나 2003년 이 쇼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콘셉트의 쇼로 대체된다. 이름하여 「Sirens of TI」다. ‘TI’는 ‘트레저 아일랜드’의 이니셜이다. 사이렌은 물론 뱃사람을 유혹하는 요정이다. 그러니 해적과 해군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요염한 요정들이 해적과 맞서는 것이다. 과감한 노출, 에로틱한 안무로 이전의 치열한 ‘전투’에서 느끼한 ‘나이트클럽 쇼’로 바뀐 것이다. 이를 두고 논란이 분분했던 모양이다.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부적절하다는 쪽과 성인 엔터테인먼트 도시 라스베이거스답다는 쪽이 팽팽히 맞섰다. 해적쇼나 사이렌쇼는 호텔 앞 도로에서 볼 수 있는, 무료 공연이었다. 물론 투숙객들은 실내에서 술과 음식을 즐기면서 느긋하게 볼 수 있다. ‘사이렌 쇼’도 10년간 계속된 후 2013년 막을 내렸다. 이후 호텔은 외관이 재정비되고, 호텔 건물 앞에서 진행되는 무료 쇼도 없어졌다고 한다.
경찰이 범죄자를 소탕하는 것도 통쾌하지만, 반대로 무법자가 얍삽한 보안관을 혼내 주는 영화는 더 짜릿한 쾌감을 준다. ‘해적쇼’에서 해적이 해군을 이기는 데에 관객들이 열광하는 것도 같은 심리일 것이다. 이럴 때 경찰, 또는 해군은 권력, 제도 등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그것이 여지없이 깨지는 모습은 규범이나 권위에 속박돼 있다고 느끼는 시민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된다. 이른바 ‘반권위주의적 카타르시스’(Anti-authoritarian catharsis)다.
해적의 이미지가 ‘낭만적’인 것도 이런 속박을 벗어던지는 카타르시스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자유’, 즉 모든 규범과 권위로부터의 ‘해방’이다. 또 한 가지 요소는 ‘보물’, 즉 ‘욕망’이다. 해적 이야기에 꼭 등장하는 ‘보물’은 단순한 금은보화가 아니라, 억눌린 욕망, 잃어버린 꿈, 금지된 즐거움의 메타포다. 게다가 해적은 권위에 빌붙어 치사한 짓을 하는 족속들을 혼내 주는 ‘영웅적 면모’도 있다. 이런 요소가 이야기나 문학 작품, 영화 등에서 소비되면서 ‘안전한 악당 체험’ 같은 ‘놀이’가 된다. 즉 실제 해적을 맞닥뜨리면 악몽이겠지만, 이야기 속, 영화 속 해적은 밖으로 절대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자유와 보물이 있고, 은밀하게 상상만 하던 ‘나쁜 짓’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어찌 낭만적이지 않겠는가?
바다에 해적이 있다면 육지에는 ‘산적’이 있다. 라스베이거스에 트레저 아일랜드가 있었다면, 우리나라 경북 문경 오픈세트장에는 ‘일지매 산채’가 있다. 2008년 종영된 KBS 드라마 ‘일지매’를 촬영했던 곳이다. ‘산적쇼’는 없지만, 이곳에 가면 ‘해적쇼’에서 느낀 것과 비슷한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 앞서 발칸의 산적 ‘하이두크’, ‘클래프트’ 등을 소개했다.(제16화 「아름다운 발칸... 모자이크 또는 난마(2)」) 이들 산적들이 “발칸 민족주의자 신전에 영웅으로 모셔져 있고, 이들 공적은 전설과 구비 서사시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강도’이기는 하지만, 불의한 권력이나 외세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Ⅱ
지중해에서 아덴만까지… 해적 2천5백년사
그렇다면 이들 해적, 또는 산적은 누구인가? 발칸의 산적에 그 답이 있다. 농부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서 산으로 들어가면 ‘산적’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부들이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그물 대신 총칼을 들고 바다로 나간 것이 ‘해적’이다. 산적이나 해적이 대물림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해적이나 산적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킨 말이다. 실제 해적이나 산적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뿐만 아니라 뿌리도 깊다.
『해적의 세계사』/ 모모이 지로/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2018
“해적의 세계사”라니! 우선 제목부터 어딘지 모르게 진지하지 않은 느낌이다. 표지도 그렇고. 그래도, 아니 그래서 가볍고 재미있을 것 같다. 게다가 저자가 일본인이다. 일본인이 쓴 책은 왠지 간명하고 읽기 쉽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 번역 상의 문제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어순도 그렇고, 비슷한 문화권이라 아무래도 다른 언어를 번역하는 것보다 전달력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저자 이름도, 당사자에게는 큰 실례가 되겠지만, 우리말 어감이 장난꾸러기, 또는 악동(?)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의 독서 취향은 아닌 것 같지만, ‘주문’ 버튼을 눌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자 모모이 지로는 장난꾸러기도 아니고 악동도 아니다. 어릴 때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71년생, 국제관계학 박사로 주부(中部)대학 국제관계학부 교수다. ‘주알제리대사관 전문조사원’을 역임했다는 이력이 눈길을 끈다. 알제리 문제를 다룬 저서도 있고, 해적 관련해서는 『’바르바리 해적’의 종언 – 빈체제의 빛과 그림자』가 있다. 국제관계사를 연구하면서 해적에 대해서도 각별히 관심을 가진 학자인 것이다. 당연히 이 책, 그리 간단치 않다.
앞서 해적의 낭만적 이미지, 영웅적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기에 저자는 한 가지 더, ‘역사적 기억’을 덧붙인다. 즉 해적인 인류 공통의 적이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았고, ‘영웅적 존재’로 추앙됐던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학자답게’ 저자는 고대 기록과 신화에서 출발한다. 인류 역사상 해적질을 처음 한 사람으로 기록된 것은 누구일까? 이 책에 처음 등장하는 해적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사모스 섬의 폴리크라테스다. 그는 반란을 일으켜 사모스 섬을 차지하고, 인근 해안과 섬을 공격해 “약탈을 일삼았다”. 그렇게 해서 에게해의 여러 섬과 이오니아 연안의 도시국가들을 정복했다. 이쯤에서 조금 헷갈린다. ‘원정’· ‘정복’과 ‘약탈’·‘해적질’의 차이가 뭘까? 헤로도토스는 폴리크라테스를 “해상제패를 시도한 최초의 그리스인으로서 고매한 인격을 지닌 자”라고 상찬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고대인의 사고방식으로 설명한다. 즉 힘으로 상대를 억압해 빼앗는 것은 힘이 있는, 즉 신에 가까운 자(영웅) 만이 할 수 있는 행위라는 것이다.
반면 투키티데스는 ‘최초로’ 해군을 조직해 해적을 소탕한 미노스 왕(크레타 섬 미노아 문명시대의 왕)을 해적을 소탕하고 바다 질서를 바로잡은 위인으로 평가한다.
이처럼 ‘해적’을 정의하는 것도 실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해적학’을 연구하는 것도 아니므로 그냥 단순하게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차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자. 그런 측면에서 4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소개돼 있다는 알렉산더 대왕과 붙잡혀 대왕 앞에 끌려온 해적의 대화가 재미있다.
알렉산더 대왕: 너는 왜 바다를 어지럽히는가?
해적: 폐하가 전 세계를 어지럽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나는 작은 배 한 척으로 그런 일을 하는 까닭에 도적이라 불리고, 폐하는 대함대를 거느리고 그런 일을 하는 까닭에 황제라 불리는 것뿐입니다.
‘본격’(?) 해적의 역사로 접어들면, 그 중심은 지중해다. 로마제국은 식량을 북아프리카로부터 수입하는 밀에 크게 의존했다. 이에 따라 지중해의 해상 교역과 항로 안전이 매우 중요했다. 이때 로마를 괴롭힌 존재가 ‘킬리키아 해적’이다. 킬리키아는 아나톨리아, 즉 지금의 튀르키에 남부 연안지역을 가리킨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으로 만과 좋은 항구, 그리고 섬이 많아 해적의 은신처로는 천혜의 입지였다. 킬리키아 해적 이야기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한다.
젊은 시절 카이사르가 로도스 섬 유학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던 중 킬리키아 해적에게 납치되었다. 해적은 몸값으로 20 달란트를 요구했다. 그러자 카이사르는 해적들에게 “나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놈들”이라며 크게 화를 내면서 오히려 50 달란트를 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부하들을 몸값 마련을 위해 보내고는 해적들에게 잠자는데 방해가 되니 떠들지 말라고 명령하는가 하면, 시를 읊고 반응이 없으면 무식한 놈들이라며 호통을 치고, 나중에 모두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부하들이 몸값을 가지고 와서 풀려나자,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해적들 목을 베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로마의 지중해 해적 소탕 예고편과도 같은 것이었다. 킬리키아 해적 때문에 로마의 식량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기원전 67년 원로원은 폼페이우스를 사령관으로 함선 5백 척에 13만 대군을 동원해 킬리키아 해적을 쓸어버린다.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바닷길은 고대 사회에, 특히 지중해 세계에서는, 교류의 고속도로였다. 사실 이는 오늘날 세계도 마찬가지다. 바닷길의 안전은 평화와 번영의 토대다. 해적을 소탕한 것도 중요하지만 로마가 취한 후속대책이 더 현명하게 느껴진다. 사로잡은 해적들을 모두 내륙으로 옮기고 땅을 나눠주어 다시 해적으로 돌아가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해적의 역사는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된다. 즉 해적은 정세가 안정되면 자취를 감췄다가, 불안정해지면 다시 창궐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 2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권력과 해적의 결탁, 그리고 해적의 정규군화이다. 이 두 가지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점은 결탁이란 왕조, 권력이 해적의 행위를 눈감아주거나 또는 비호하면서 이익을 나누는 것을 말하고, 정규군화란 것은 문자 그대로 아예 해적을 자국 군대로 편입시켜 해적 소탕에 투입하는 것이다. 해적판 ‘이이제이(以夷制夷)’다.
해적의 역사는 바이킹으로 이어진다. 북유럽의 노르만인들은 길고 좁은 가벼운 선체의 고속선 ‘롱쉽’을 만들어 유럽 대륙의 기독교 세계를 괴롭혔다. 성물과 보물이 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약탈했고, 그 범위는 지중해 한복판까지 도달했다. 카르타고를 점령하고 마침내 로마까지 쳐들어가 마구잡이로 약탈한다. 이들이 ‘반달족’이고, 이처럼 무차별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위를 뜻하는 ‘반달리즘’이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잉글랜드를 노르만화하고,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 공국을 세우는 등 유럽의 지도를 바꿨다.
다음 타자는 지중해의 무슬림 해적. 바이킹 시대에도 지중해에 이름난 무슬림 해적이 있었지만, 더욱 창궐하게 된 것은 11세기말에서 13세기에 이르는 십자군 원정과 스페인의 레콩기스타의 영향 때문이다. 레콩기스타란 기독교 왕국인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 있던 이슬람 왕국들을 차례차례 몰아낸 것을 말한다. 레콩기스타는 15세기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의 결혼에 의한 통일로 완벽하게 마무리된다. 이로써 지중해 서쪽에는 스페인 제국, 동쪽에는 오스만 제국이 맞서는 시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난 여러 무슬림 세력이 복수와 약탈을 목적으로 스페인 상선을 ‘털기’ 시작했다. 당연히 스페인의 대응도 갈수록 강해졌고, 여기에 오스만과의 패권다툼까지 겹치면서 지중해는 두 강력한 제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 시기에 가장 유명한 해적은 ‘바르바로사’(붉은 수염)다. 이는 지중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우르지와 하이르 앗 딘 형제를 가리킨다. 이들은 해적으로 출발, 수많은 지역을 정복하는 등 ‘바르바리’ 지역을 주름잡았다. ‘바르바리’란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훗날 이 일대를 근거로 날뛴 해적들을 ‘바르바리 해적’이라고 부르게 된다. 스페인의 한 역사가는 형인 우르지 앗 딘의 전기에서 이렇게 썼다.
“그가 바르바리 지방에서 보낸 14년간은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재앙이었다. 지젤의 왕으로 4년, 알제의 왕으로는 2년, 틀렘센의 왕위 찬탈자로서 1년의 나날이었다.”
그의 동생 하이르 앗 딘은 해적이 정규군으로 변신하는 선례를 남긴 사람이다. 그는 형이 죽은 후에 오스만 제국에 투항해 술탄에게 처음에는 알제 총독, 그다음은 북아프리카 총독이란 직위를 받고 겔리선과 병력을 지원받아 제국의 ‘해군 제독’으로서 해적 소탕에 앞장서기도 했다. 후에는 오스만 해군 총사령관이 되어 주로 스페인과 여러 차례 해전을 치르며 대부분 승리한다. 이즈음 프랑스와 오스만이 동맹을 맺고 스페인 등 신성동맹과 전쟁을 벌인다. 이때도 하이르 앗 딘은 함대를 이끌고 대활약을 한다. 그러면서 프랑스 남부 툴롱에 자리 잡고 이를 근거지로 삼아 인근지역을 약탈하고 그리스도교도들을 노예로 잡아 팔아먹었다. 결국 그 횡포를 견디다 못한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막대한 금은보화를 지급하고 겨우 그를 내보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에서 돌아온 지 2년 후 이스탄불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의 후계자들은 계속 지중해에서 해적질을 했다.
몰타 이야기도 재미있다. 몰타는 십자군 전쟁에서 활약했던 성요한기사단의 섬이다. 사실 지중해에는 무슬림 해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독교도 해적도 당연히 있었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성요한기사단, 또는 몰타기사단이다. 기사단이 해적이라고? 그렇다. 기사단은 기사이면서 수도사인 사람들의 집합체다. 말하자면 ‘전투 수도사’인 셈이다.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나고 몰타 섬에 자리 잡은 기사단은 계속 무슬림을 공격했다. 배를 빼앗고, 약탈하고, 무슬림 노예를 잡아들였다. 간단히 말해 ‘해적질’을 한 것이다. 그러니 오스만 제국의 입장에서는 정말 골치 아픈 존재였다. 그래서 오스만은 해적들로 구성된 해군을 동원해 몰타를 공격했다. 스페인이 알제를 비롯한 북아프리카를 끊임없이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양측은 지중해 패권을 둘러싸고 대를 이어가며 싸웠고, 그 유명한 ‘레판토 해전’도 이때의 이야기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어느 쪽도 패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지중해는 여전히 해적이 창궐하는 불안한 바다로 남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이 ‘대항해시대’를 여는 촉매제가 된다.
해적 때문에 대항해시대가 열렸다고? 그렇다. 지중해 바닷길이 불안하니까 대안 항로를 찾게 되고, 그것이 반대쪽 대서양을 향하게 했으며, 그래서 신대륙 발견과 제국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해적 역사의 초점은 대서양과 신대륙으로 옮아간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 개척자들이 신대륙에서 약탈한 금 은 농산물 등은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당연히 부(富)의 쟁탈전이 벌어진다. 스페인이 독점한 신대륙 무역에 몰래 끼어드는 무리들이 있었을 것이며, 그것은 ‘밀무역’이다. 이 과정에서 영국이 몰래 밀무역을 지원하고, 그것은 충돌을 불러온다. 이 충돌과정에서 희대의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등장한다. 스페인이 ‘약탈한 보화’를 ‘약탈’한 드레이크는 당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줬다. 그는 해적이지만 인류 역사상 마젤란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 일주에 성공했고, 남미의 본 곶과 남극대륙 사이의 해협도 발견했다. 그곳은 지금도 ‘드레이크 해협’으로 불린다. 그가 스페인 수송대나 수송선단을 습격해 빼앗은 약탈물의 가치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던지, 영국의 대외 투자 밑천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경제학자 J. M. 케인즈는 당시 여왕에게 돌아간 이익이 잉글랜드의 대외부채를 갚고 레반트회사의 출자금이 되었을 뿐 아니라 레반트회사의 수익금으로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영국의 대외투자의 기반이 되었다’고 썼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시작된 근대 자본주의의 기반을 다진 것은 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p.159)
드레이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영국 함대를 이끌고 스페인 함대와 맞붙어 패권을 다투었다. 이쯤 되면 드레이크를 그냥 해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실제 영국에서 그는 영웅으로 추앙되며 멋진 동상도 있다.
‘버커니어’와 ‘사략’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버커니어란 카리브해를 주름잡던 해적을 일컫는 말이고 ‘사략’이란 ‘허가받은 해적질’이다.
대항해시대 신대륙은 ‘엘도라도’였다. 엄청난 약탈이 자행되었고, 그렇게 얻어진 산물은 새로 열린 대서양 항로를 통해 유럽으로 보내졌다. 이러한 약탈적 교역은 초기에는 스페인이 독점했다. 후발 주자들에게는 2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아직 스페인이 차지하지 않은 땅을 차지하거나, 스페인이 차지한 땅을 빼앗는 방법이다. 그것은 ‘투자에서 회수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반면에 당장 이익을, 그것도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금은보화’를 싣고 오는 배를 빼앗아버리면 된다. 길고 위험한 항해를 할 필요가 없으니 많은 투자도 필요 없고,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사략’이다.
‘사략’이란 “국왕 등으로부터 교전국의 영지나 선박을 습격해도 좋다는 사략 허가증을 받은 배가 행하는 약탈행위”로 정의되며 일종의 전쟁 행위로 간주되기도 한다. 즉 민간 선박이 ‘허가를 받고’ 다른 나라 배를 공격하고 약탈하는 것을 말한다. ‘허가’에는 당연히 대가가 따른다. 즉 사략의 이익은 일정 부분 국가에 바쳐진다. 앞서 이야기한 영국의 해적, 또는 영웅, 드레이크의 행위가, 공식적으로 허가증을 받지 않은 점만 제외하면, 전형적인 ‘사략’라 할 수 있다. 아마 그 논리는 민간에게 군사행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는 것이었겠지만, 한 나라 국왕이 다른 나라 배를 약탈할 수 있는 허가를 내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소리다.
‘버커니어’는 오늘날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이 있는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생계형’ 해적으로 출발했다. 카리브해에는 히스파니올라 섬과 소앤틸리스 제도의 작은 섬들이 점점이 늘어서 있다. 이곳은 당초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금이 나지 않기 때문에 방치되다시피 했다. 이에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들어와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았다. ‘버커니어’란 말은 ‘부칸(boucan)’이란 단어에서 파생된 프랑스어 ‘부 카니에(boucanier)’의 영어식 발음이다. 이 시기에 히스파니올라 섬 서부에 프랑스인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이들은 야생 소나 돼지를 잡아 훈제육으로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부칸’이란 바로 그 ‘훈제용 가마’를 뜻하는 말이다. 이들이 좀 더 나은 수입을 위해 바다로 진출해 해적이 된 것이 버커니어의 시작이다. 프랑스 인들만 해적이 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실제 더 유명한 버커니어는 잉글랜드인 모건이었다.
바로 이 모건이 버커니어와 사략 모두의 전형이다. 사략증을 받고 버커니어를 모아 해적질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파나마 베네수엘라 등의 스페인 식민지를 공격해 도시를 점령하고 약탈했다. 피해가 커지자 스페인이 영국에 강력히 항의했다. 영국 국왕은 당연히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뗐다. 그래도 나중에는 스페인과의 관계를 고려해 영국은 모건을 소환한다. 그러나 처벌은커녕 기사 작위를 내리고 자메이카 부총독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더 웃기는 일은 모건에게 버커니어 토벌 명령을 내렸고, 그는 또 이 명령을 충실히 이행해 해적들을 소탕해 버리는 것이다.
모건과 쌍벽을 이룬 유명한 해적 두목은 ‘캡틴 키드’라 불리는 윌리엄 키드다. 캡틴 키드는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에서 밀수 등으로 성공한 상인이었다. 1688년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유럽 패권을 노리고 영국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 등 대동맹을 상대로 전쟁에 돌입했다.(9년 전쟁) 이 전쟁이 아메리카 식민지에도 옮겨 붙었고, 영국은 캡틴 키드에게 사략증을 주어 프랑스에 대적토록 했다. 키드는 사략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고, 나중에는 해적 소탕 임무를 띠고 인도양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선원들에게 약탈물을 분배해 임금을 지급키로 한 계약이 발목을 잡았다. 나포와 약탈 실적이 없어 선원들 불만이 고조되자 그는 허가된 범위를 넘어 마구잡이 공격을 한다. 사실상 그냥 해적이 된 것이다. 물론 키드는 다른 나라 배를 공격하는 것이니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1670년 영국과 스페인 간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을 훼손하고 있고, 이것이 잉글랜드를 외교적 궁지로 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그는 결국 체포되어 런던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끔찍한 것은 해적 근절 의지를 보여준다는 명분으로 그의 시신에 타르를 발라 수년 동안 매달아 두었다는 것이다.
캡틴 키드가 유명한 것은 그가 숨겨두었다는 보물 때문이다. 실제 그의 증언에 따라 일부 은닉 보물이 발견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양이 많지 않아 어딘가에 또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고, 이것이 훗날 스티븐스의 『보물섬』, 에드가 알란 포의 『황금 벌레』 등의 모티브가 된다. 20여 년 전 라스베이거스 트레저 아일랜드 호텔의 ‘버커니어 만의 해전’이 바로 이런 버커니어 해적들의 스토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쇼였던 것이다.
캡틴 키드의 처형은 해적에 대한 인식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꼽을 수 있다. 이에 관하여 누가 바다에 대하여 주권을 가지는가, 그 주권의 범위는 어디인가 하는 등의 해양법과 관련한 복잡한 논쟁의 역사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학술적인 이야기이므로 그냥 넘기자. 단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17세기 후반부터 해적을 용인하는 데서 금지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전환점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다. 여기서 ‘주권국가’ 개념이 정립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가 ‘폭력’ 또는 ‘무력’을 독점한다는 인식이다. 물론 사략 행위는 그 후로도 오래 계속되었지만, 인식도, 상황도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와 해적의 ‘밀월’이 끝났다는 이야기지 해적이 근절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버커니어 해적은 오히려 이후에 황금기를 맞이한다. 버커니어는 해군 공격이 어려운 파나마의 한 지역에 모여 자기들끼리 총독까지 뽑는 등 해방구를 만들고 자신들만의 자유를 구가했다. 당시 유명했던 해적 바르톨로뮤 로버츠의 해적선에는 이런 규칙이 있었다고 한다.
* 모든 승무원은 중대사항에 대해 동등한 표결권을 가진다.
* 절대 돈을 걸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 밤 8시 소등. 이 시간 후에 술을 마시려면 갑판에서 마셔야 한다.
* 선상에서 동료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 다툼이 생기면 당사자끼리 육지에 내려 결판을 낸다.
이 외에도 이익 배분, 부상자 보상, 조직을 떠날 수 있는 조건, 전투 수칙 등 제반 원칙도 규정돼 있다. 당시 유럽이 절대왕정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이들 해적이 시대를 앞서 나간 자유주의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해적에 대한 낭만적 이미지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카리브해의 해적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영국이 강력하게 해적 근절에 나섰다. ‘악명 높은 해적 ‘검은 수염 티치’가 교전 끝에 죽고, 카리브해의 ‘마지막 해적’ 바르톨로뮤 로버츠가 영국 군함의 기습으로 사망하면서 버커니어의 전성시대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해적의 시대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카리브해에서는 막을 내렸지만, 지중해의 바르바리 해적은 건재했다. 이곳은 오스만 제국의 부침에 따라 지역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했고, 그런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해적은 기승을 부렸다. 재미있는 점은 유럽 제국이 해적과 싸우기도 했지만, 회유책으로 돈과 무기를 주고 평화협정을 체결했다는 점이다. 이는 오히려 해적들의 무장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유럽국가와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공존을 선택해 지중해 해적은 다소 잠잠해졌다.
그러나 미국이 독립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미국과는 협정이 없기 때문에 미국 상선들이 바르바리 해적의 표적이 된 것이다. 이 문제를 두고 훗날 각각 미국의 2대와 3대 대통령이 되는 당시 주영국 대사 존 애덤스와 주프랑스 대사 토머스 제퍼슨이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애덤스는 평화조약을, 제퍼슨은 전쟁을 주장한다.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았고, 미국은 한편으로는 군비를 강화하면서도 알제와 평화조약 체결, 돈과 무기를 제공하고 납치된 배와 선원들을 돌려받는다. 미국은 또 트리폴리, 튀니스 등과도 조약을 맺는다. 그러나 공납에 대한 요구 수준, 북아프리카 국가 간 마찰 등으로 상황이 꼬이면서 미국은 결국 트리폴리와, 또 다음에는 알제와 전쟁을 벌인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미국은 바르바리 해적 피해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이후 바르바리 해적 피해가 계속되면서 유럽 열강도 이 문제 해결에 나선다. 복잡한 외교와 충돌을 거치면서 해적 활동도 부침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 1830년 프랑스가 37,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알제를 침공한 것이다. 결국 알제는 항복하고 향후 130년에 걸친 프랑스의 알제 지배가 시작되면서 바르바리 해적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의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해적 소굴에서 발달한 해적 후예들의 국가처럼 보인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이들이 유럽과 미국 선박을 공격한 것은 ‘해적질’이기도 하고, ‘전쟁 행위’ 일 수도 있다. 사실상 독립 왕국이지만 오스만의 속국 지위에 있었으므로 유럽과 오스만이 전쟁 상황이라면 이들 나라도 그렇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르바리 해적 시대가 끝나면서 지구상의 해적 시대는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였다. 1856년 파리선언으로 유럽 제국 간 사략행위가 금지되고, 1907년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민간 선박의 전쟁 행위 가담을 금지하는 조약이 체결되었다. 1958년 제1회 유엔 해양법회의에서 공해에 대한 조약이 체결되면서 공해상의 해적의 정의와 대처가 규정되고, 이것은 1982년 유엔 해양법 협약으로 계승되었다.
그래서 해적의 시대는 막을 내렸는가? 그 답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소말리아 해적의 등장 때문이다. 이 책은 소말리아 해적의 출현 장면에서 끝난다. 그러면서 해적 문제와 테러리즘을 나란히 놓는다. 즉 테러와의 전쟁 국면에서 이를 ‘바르바리 해적’ 근절을 위한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미국 내의 시각을 소개한다. 해적과 테러리스트 모두 국제질서를 교란하는 ‘인류 공통의 적’이라는 논리다.
이 책이 다루지 않은 해적도 물론 있다. 지중해, 북유럽의 바이킹, 카리브해까지 해적을 쫓아 지구를 반 바퀴 돌았지만, 인도양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해역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이곳은 해적 무풍지대였을까? 아니다.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사이의 좁은 900㎞의 해로, 즉 말라카 해협의 해적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말라카 해적은 14세기 중국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고, 현대에도 해적 행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세계 해적 행위의 40%를 차지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적의 역사에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세계사의 흐름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역사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책처럼 해적을 중심에 놓고 보니까 기존의 역사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이 ‘해적의 역사’가 아니라 ‘해적의 세계사’다. 해적이 세계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해적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국제질서 변화의 산물인 동시에 그 질서의 변화를 초래하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해 왔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모이 지로의 『해적의 세계사』를 읽은 것은 알찬 문명사 여행이었다.
Ⅲ
어부가 해적이 된 까닭은?
오늘날 ‘해적’하면 단연 먼저 떠오르는 곳은 소말리아다. 소말리아 해적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는 정말 그 기세가 대단했었다. 2011년 우리나라의 ‘삼호 주얼리’호 납치와 구출 – ‘아덴만의 여명작전’도 바로 그런 해적 극성기의 사건이었다. 이후 다국적 해군의 작전, 상선들의 민간보안업체 무장요원 탑승 등 대책이 강화되면서 자취를 감추는 듯하다가 2023년부터 다시 고개를 들면서 점점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해적』/누르딘 파라/아프리카/2019
해적이 나오지 않는 ‘해적’ 이야기다. 아니, 사실은 ‘해적’보다 훨씬 넓은 범위, 즉 소말리아의 현실을 전방위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내용은 미국에 사는 소말리아 사람이 꾐에 빠져 ‘지하드 전사’가 된 아들을 찾기 위해 소말리아로 가서 우여곡절을 겪는 이야기다.
지은이 누르딘 파라(1945~ )는 소말리아 태생으로 인도 펀자브대, 영국의 런던대, 에식스대 등에서 수학했다. 1970년대 해외로 망명해 독일에 정착했다가 현재는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 영어로 작품활동을 하며, 1970년 페미니즘 성향의 작품 『비뚤어진 갈비뼈』를 발표했다. 이는 "신은 여자를 비뚤어진 갈비뼈로 창조했고, 누구든 그것을 곧게 펴려고 하면 부러진다"는 속담, 즉 여성 차별적 ‘통념’에 저항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여성을 그린 작품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 그가 여성이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이후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독재 치하의 삶을 고발하는 작품들을 발표해 탄압을 피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문학상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해적』 외에도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간의 오가덴 분쟁과 그곳 사람의 정체성 혼란을 그린 장편소설 『지도』가 번역되어 있다. 그는 독재와 이슬람 원리주의에 저항하고, 여성, 인권, 각 개인의 존엄성과 고유한 정체성을 소중히 여기며, 그에 따른 혼란과 방황을 통하여 새로운 빛을 찾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그의 작품에는 누더기처럼 갈기갈기 찢어진 고국을 있는 그대로 껴안고 한걸음한걸음 나아가려는 고통스러운 의지가 담겨 있다.
한 어린 소년 지하드 전사가 어설프게 안전가옥을 확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한 여성이 길을 반대로 가리켜주는 바람에 엉뚱한 집에 잠입했고, 그래서 빚어진 차질 때문에 화가 난 ‘상관’에게 총을 맞아 죽는다. 그 집에 살던 애꿎은 노인과 함께.
『해적』은 본편 내용과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이 에피소드는 본래의 스토리가 시작된 후에도 중간중간 여러 장(章)에 걸쳐 삽입되어 진행된다. 이런 배치는 무슨 의도일까? 그것은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여성과 ‘상관’ 두 상반된 인물의 배치를 통해 작품의 얼개를 제시하는 것이다.
‘애송이’라고 불리는 소년병은 이슬람원리주의 무장집단 알 샤바브 조직원이고, 캄바라라는 이름의 여성은 그 알 샤바브의 ‘대항마’ 이미지다. ‘털복숭이’로 묘사되는 소년병의 ‘상관’은 무지막지한 지하디스트와 비열한 기회주의자가 뒤섞인, 실패 국가의 ‘저잣거리에서 군림하는 실력자’의 표상이다. 그래서 그는 고비마다 선순환의 고리를 끊는 ‘악당’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이 에피소드는 ‘여성’으로 대표되는 자유·인권·상식의 세력과 ‘털복숭이’ 광신적 폭력 세력의 끝없는 대립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는 ‘애송이’들의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운명을 드러내는 장치인 것이다.
소말리아계 미국인 두 명이 모가디슈 공항에 내린다. 이들은 장인과 사위 사이다. 장인 지블레는 이탈리아에서 단테를 전공한 문학박사이고, 사위 말리크는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프리랜서 기자다. 비슷한 시기에 북부 푼틀란트의 보사소에는 아흘이 도착한다. 그는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소말리아연구센터 소장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아흘은 말리크의 형이다. 아흘은 아들을 찾으러 왔다. 어느 날 사라진 그의 의붓아들 탁스릴이 소말리아로 와서 알 샤바브에 합류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흘은 해적의 본거지 보사소에서 아들을 찾아 나서고, 말리크는 모가디슈에서 소말리아의 현실을 취재하면서 아흘을 돕는다. 지블레는 모가디슈에서 말리크가 활동할 수 있도록 인맥을 동원하는 등 준비를 도와준 후 나이로비로 옮겨 일종의 ‘후방지원’을 담당한다. 이들은 소말리아 출신 지식인들이라, 현지에 의사, 전직 군 장교 등 엘리트 지식인 친구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모가디슈를 지배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 ‘이슬람법정연대’의 반대쪽에 서 있으므로 위험부담이 있다. 알 샤바브는 이슬람법정연대의 과격파 무장세력이다.
스토리는 이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에 집중한다. 숙소는 안전하지 않고 만나는 모든 사람은 믿을 수 없다. 가는 모든 곳은 위험하다. 늘 생명을 노리는 누군가가 있다. 친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다. 그래서 움직일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호 인력이 사방에 붙는다. 현실은 암담하다. 내전, 혼란, 독재, 무질서가 오래 계속되면서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거기 적응해서 천성 자체가 변해버린 것을 발견한다. 지블레는 이렇게 한탄한다.
“… 현 상황은 다른 이름의 독재정권일뿐이다 낡아빠진 사회주의 독재정권에 오랫동안 익숙해 있던 소말리아인들은 이제 원리주의 독재정권에 익숙해지고 있다. 차이는 후자가 종교라는 절대적 권위로 사람의 의지를 이용하고 조종한다는 것이다.”(p. 49)
“그가 생각하기에 소말리아인들은 천성적으로 폐쇄적인 관계를 맺고, 기질 상 분리할 수 없고, 성향 상 잔학하며, 쌍둥이들의 싸움처럼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싸움은 일상이다.”(p.234~235)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 멀쩡하게 학교를 잘 다니던 아이가 지하드 전사가 되겠다고 자원했을까? 모스크에서 원리주의에 접하고 세뇌를 통해 급진화되지만, 일상에서도 그 토양이 만들어진다.
“외국에 사는 대부분의 소말리아 아이들은 진저리 나는 생활을 했다. 집에서는 혼나고, 학교에서는 모욕을 당하며,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아버지들은 자녀 양육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많은 가정들에서 소말리아 친척들이 오고 가며 그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끔찍한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오전에 전화가 두 번, 세 번, 네 번 울리고 전화를 건 사람은 민병대 간의 싸움으로 죽은 가족의 매장 비용을 지불해 달라고 요구한다. TV에 나오는 혼란과 계속되는 소동으로 젊은이들은 종종 의지, 마음의 평화, 학교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p.60)
아흘과 말리크의 활동을 통하여 해적과 알 샤바브의 관계도 알 수 있다. 해적들은 지부티 예멘 등 인근 국가로부터 지하드 자원자들을 밀항시켜주고, 그 대가로 샤바브의 보호를 받으며 일부 무기도 지원받는다. 아흘의 아들 탁스릴 같은 아이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를 떠날 때 이들을 은밀히 호송하는 조직원들이 있어 여권을 빼앗고 지부티나 예멘 등 인근 국가까지 데리고 오면 해적들이 소말리아로 데려오는 것이다. 해적과 알 샤바브는 별개의 조직이지만, 이렇게 활동과 관계가 얽혀 있다.
해적에 관한 사실도 흥미롭다. 아흘이 만난 사람들, 그리고 말리크가 취재한 것을 종합하면 이렇다. 물론 그들이 들은 이야기가 모두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한 것이므로 진실에 가깝다고 본다. 물론 작가와 작중 인물 모두 소말리아 사람들이므로 소말리아를 위한 변명, 또는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해적의 뿌리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소말리아는 해안선의 길이가 3,300㎞가 넘는다. 그런 만큼 어족자원이 풍부하다. 기본적으로 소말리인은 유목민이지만, 해안지대만큼은 어업이 중요한 산업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1991년 시아드 바레 정권이 무너지고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되면서 영해도 관리가 되지 않았다. 이 틈을 타서 예멘 어선들이 소말리아 영해에서 불법 조업을 시작했고, 그 뒤를 따라 세계 각국의 어선들이 몰려들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산업폐기물, 심지어 핵폐기물 투기도 자행되었다. 소말리아 어민들의 어획량은 급감했다. 그래서 스스로 ‘자경단’을 꾸려 단속에 나섰다. 이에 외국 어선들은 무장한 경호팀을 고용했고, 어민들도 무장했다. 다음은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작품 속 대화다.
“어떤 외국의 침입에 대해 말하는 건가요?”
“저인망어업이 가능한 구역이 있는 소말리아 해안지대에 대한 비인간적 공격을 가리키는 거요. 수산업 전문가인 한 과학자는 밤에 외국 선박의 불빛이 너무 많아서 '조명 밝은 대도시'로 착각할 정도라고 했소."
"그 침입자들은 누구였죠?"
"유럽, 일본 러시아, 한국, 중국, 벨리즈, 케냐. 라이베리아, 바베이도스 등의 외국 깃발을 단 선박들이었소." 피드노가 말한다. "그들은 무장을 하고 와서는 고속 모터보트를 준비해 두고 소말리아 어부들이 반응하면 언제든지 전투준비를 했소. 그들이 조업을 하면 세계적으로 금지된 수단을 이용했지. 게다가 핵계기물이나 화학폐기물, 다른 쓰레기들을 우리의 해안에 버렸소. 그들은 소말리아인들과는 어떤 의미 있는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소. 어업 환경에 가하는 손상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소말리아인들이 불평할 때 세상은 우리의 항의를 들으려 하지 않았소."(p.305)
이런 상황에서 배와 선원들을 납치했을 때 몸값을 받는 것이 훨씬 수익성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발전해서 해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시작이 그랬다는 것은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해적행위가 합리화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이렇게 ‘해적질’이 수익성 좋은 사업임이 드러나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는 자명하다. 돈 냄새를 맡은 온갖 잡다한 집단이 파리 꼬이듯 꼬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다국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몸값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말단 중재인 역할을 하는 한 사람은 이렇게 증언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 출신의,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정보원들 연락망을 이용해요. 가령 선박 브로커, 해양보험 중개인, 선박 움직임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보안과 직원, 은행가. 회계사 등 어업 관련 전 분야를 망라하죠, 보안위성전화로 런던과 연락을 주고받아요. 수에즈 운하에서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선박운항 스케줄, 화물의 특성, 소유자 이름, 최종 목적지를 받아요. 런던, 아랍 에미리트의 두바이, 예멘의 사나. 전 세계를 꿰뚫고 있죠. 우크라이나 선박이 수단 남부의 지방정부가 사용할 탱크를 싣고 케냐 몸바사로 간다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이 선박을 징발할 것 같아요? 화학폐기물을 신고 가는 이스라엘 선박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출항하기 며칠 전에 모든 선박에 알아요. 선박의 소유주와 거래할 협상가도 미국에 두고 있어요.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당신 혹은 다른 사람들의 상상을 넘어서죠."(p. 523)
그러면 해적들은 거액의 몸값을 받아 떵떵거리며 잘 살까? 이런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서 말단 해적이 거액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재인의 증언이다.
“다섯 달 동안의 협상, 제안, 역제안, 협약 불이행과 지연 후에 결국 오백만 달러 중에서 오십만 달러만 해적들 손에 들어왔다면요? 먼저, 런던에 있는 보증인의 협상가들, 아부다비에 있는 중개자들, 몸바사에 있는 중재자들은 그들 각자의 몫을 가져가죠. 그래서 마지막 지불액은 소액으로 줄지만, 그래도 납치에 돈을 대는 자금제공자는 선박을 억류한 해적들에게 지불해야 해요. ‘마나 와스니, 와르나 이라크’라는 소말리아 속담 알죠? 남자가 그녀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성관계를 즐겼다는 의심을 받는 여자들이 하게 되는 말이죠. 당신이 어떻게 해석하든 우리는 망했고, 당연히 즐기지 못하죠.”(p.151 ~ 152)
실제 행동대원 역할을 했던 전직 해적은 이렇게 말한다.
“돈을 많이 번다는 말을 듣고 해적일에 뛰어들었죠. BBC뉴스에서 소말리아의 바닷가 사람들이 부유하고 해적들은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얻어 매일 결혼식이 벌어진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몇 년 동안 해적으로 일했지만 모두들 말하는 그런 돈은 구경도 못해봤어요. 제가 받은 가장 큰 몫은 7천 달러였어요.”(p.431)
해적은 그렇다 치고, 소말리아의 형편은? 마침 이들이 소말리아에 머무는 동안 오가덴 지역을 놓고 분쟁 중이던 에티오피아가 전격 침공한다. 이에 원리주의 정권 수뇌부는 달아나고, 그들과 내전 중이던 연방정부가 에티오피아를 등에 업고 진격해 들어온다. 미국의 토마호크 미사일도 날아든다.
소설 맨 첫머리 ‘애송이’ 에피소드에 등장한 여성 캄바라를 기억하는가? 그녀는 지블레의 죽마고우인 의사 바일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아내’다. 이 점도 중요하다. 이슬람 원리주의자에게 이런 내연관계는 혐오의 대상이며 투석형에 처할 정도의 ‘중범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일과 캄바라는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관계를 그대로 이어간다. 게다가 바일은 노인이지만, 나이 차이가 많아 캄바라는 아직 젊다. 그녀는 노출이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스스럼없이 입는다. 그녀가 캐나다 국적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노골적인 저항이다. 바일은 말한다.
“수염 기른 도당이 꾸려가는 원리주의 국가보다는 모두를 포함하는 줏대 없는 세속적 국가가 더 나아.”(p.175)
그러나 미국의 미사일 공격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미국의 조치가 더 많은 외국 지하드전사들이 자발적으로 샤바브에 가입하게 만들어 전쟁을 더 연장시킬지도 모른다는 거야."
캄바라는 미국과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을 싸잡아 비판한다.
"그들의 특성상 자살폭파범들은 리모컨으로 통제될 거예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자살폭파법을 리모컨으로 조절하는 모스크 예배인도자는, 안전한 콜로라도 기지에서 토마호크 발사를 조종하는 사람과 차이가 없어요. 한쪽은 커피를 마시고 동료와 농담도 하면서 그 짓을 하고, 다른 쪽은 아마도 기도하면서 카펫에 웅크리고 앉아 그 짓을 하겠지요.”(p.510)
말리크는 취재를 하고, 아흘은 수소문하고, 그 와중에 도움을 주던 한 사람이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고… 이런 우여곡절 끝에 아흘은 아들 탁스릴을 찾아낸다. 그러나 그를 샤바브로부터 빼내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미국으로 데리고 돌아가는 것도 어렵다. 이건 소설 속에 묘사되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당연히 샤바브가 노리고 있다. 여권이 없으니 소말리아 출국부터 난관이다. 그다음 어디를 경유하든 보안 검색에 걸릴 것이고, 그다음에는 미국 FBI, 국토안보부 등이 기다린다. 샤바브에 합류했던 ‘테러리스트’ 말을 누가 믿을 것인가 말이다.
기자 말리크도 폭탄테러를 당한다.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은 건져 나이로비로 이송된다. 미국에서 갔던 세명의 소말리아 남자는 모두 그 ‘지옥’을 빠져나오기는 한 것이다. 소년도 구하고… 이 과정에서 이들은 모두 자신의 소말리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한다. 고국의 처절한 상황을 끌어안고 타향에 있는 원래의 삶터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작품은 작가가 고국에 대한 나름대로의 ‘백서’를 쓴 것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때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셈이다.
소말리인은 ‘검은 유럽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골격이 다른 아프리카 인종과는 달리 유럽인 같아서 체형이 늘씬하고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이 많다. 또 우수한 인재도 많다고 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해안선이 길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게다가 소말리아는 인구의 90% 정도가 소말리인으로 거의 단일민족 국가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민족, 부족 문제가 복잡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지하자원도 개발의 여지가 많다. 즉 얼마든지 잘 사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 최빈국, 대표적인 실패 국가, 해적 국가 등 온갖 오명을 다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독립 후 최악의 이데올로기 조합으로 나라를 망쳤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처럼 소말리아도 사회주의를 채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식민지배를 받았으므로 서구 자본주의에 반감이 있고, 따라서 독립 당시 지식인, 엘리트들은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받아들인 것은 사회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이 아니라 일당독재, 권위주의 등 통치 방식과 기술, 그리고 부정부패뿐이었다. 그나마 소련 동구권이 건재할 때는 지원이라도 좀 있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끊어지면서 독재정권이 몰락하고 혼란에 빠지자 이번에는 이슬람주의 파도가 덮쳤다. 그 결과 사람도, 가정도, 지역 공동체도, 국가도 피폐할 대로 피폐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소말리아가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또 다른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그 실상을 좀 더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