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 후 내 몸은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지난 화 마지막 -
요즘도 우리 부부는 아이가 잠들면 TV로 유튜브를 같이 본다.
주로 '스쾃자세' '데드리프트자세' 같은 헬스에 관한 콘텐츠 위주로 말이다.
10년 후에
아니 30년 후에도
헬스장에서 같이 무게를 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있지 않을까?
부디 그러기를 바라본다.
첫 아이 출산 전.
대부분 임신부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 중 하나가
'출산하고 나면 임신 전 몸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나는 남들과 다를 거야!'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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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와 결혼을 준비하며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사랑둥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비록 체력은 저질이었지만, 태어나 살이 쪄본 적도 식단을 해본 적도 없는 모태마름이었기에
나의 '타고난 체질'을 믿었다.
그래서 임신기간 중 먹고 싶은 음식은 다 입으로 가져갔다.
식중독 위험으로 탈이 날 수도 있어 웬만하면 임신부들이 먹지 않는 회도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부터는
'엄마가 행복해야 뱃속의 아이도 행복하다'는 이유를 대며 먹고 싶을 때마다 먹었다.
그렇게 돼지런하게 임신기간을 보냈고
그렇게 10개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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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예정일 아침에 일어나니 아랫배가 쿡쿡 쑤시는 게 가진통이 아니라 진짜 진통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산부인과 원장님이 얘기한 출산예정일에 맞춰 진통이 온 것이다.
'거봐 나는 뭐든지 딱딱 들어맞는다니까!'
'아이도 순탄하게 잘 나올 거야'라는 믿음이 더 확고해졌다.
병원에 전화하니 오전에 와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진통이 더 잦아지고 고통스러워지면 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OH Yeah! 입원까지 몇 시간이 더 주어졌다는 기쁨과
오늘이 바로 D-DAY라는 생각에 가장 먼저 당장 뭘 먹고 애를 낳으러 가야 할지가 생각났다.
수많은 음식들 중 햄버거가 떠올랐다.
그리하여 출산을 24시간 밖에 안 남긴 나는 남산만 한 배를 부여잡고 집 앞 햄버거 가게로 가서 치킨버거세트를 포장해 오는 쓸떼없는 의지를 보였다.
저녁엔 퇴근한 남편과 집에서 탕수육과 자장면을 시켜 먹고 출산준비물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밤이 되자 병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진통은 더 심해졌다. 다음날 새벽 5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병원에 도착하면 1-2시간 내에 아이가 나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진짜 진통은 병원을 도착한 후부터 시작되었다.
입원한 지 10시간 동안 총 4번의 무통주사를 맞아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은 계속되었다.
아이는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결국 긴급수술에 들어가 병원에 도착한 지 12시간 후에야 아이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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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다음날 신은 다시 한번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바로 체중계를 통해.
당시 내가 입소했던 조리원은 휴게실에 체중계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산모의 이름이 적인 파일도 있었는데, 거기에 날짜별로 몸무게를 기록하도록 되어있었다.
태어날 때 아이의 무게 3.8kg, 양수무게와 부기를 고려해 최소 10kg는 빠져있을 거란 기대를 안고
호기롭게 체중계 위로 올라갔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체중계 바늘은 잠시 흔들리는 척하더니 얼마 안 가 자리를 잡았다.
정말 아이의 무게만큼만 빠져있었다.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라는 생각에 체중계를 오르락내리락했지만 똑같았다.
누가 볼세라 내 이름옆에 숫자를 적고 도망치듯 내 방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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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충격 아닌 충격을 먹어서인지 산모마사지, 스트레칭 등 조리원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열심히 참여했다. 또 출산 전 몸무게로 돌아가는 데 성공한 회사 선배의 말을 기억해 3 끼니와 조리원에서 주는 간식 외엔 일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렇게 2주를 부지런히 초보엄마로 보내다 보니 퇴소날에는 56kg로 나올 수 있었다.(총 14kg 감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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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동안 14kg을 뺐으니 100일동안 6kg 감량쯤이야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집에 온 뒤부터 대환장의 시대가 열렸다.
어쩌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의심도 들었던 나의 아이는
집에 오면서부터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
울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고 했고, 심지어 조그만 게 잠도 없었다.
덕분에 내 수면 패턴은 깨지기 시작하고,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쌓여갔다.
출산 1달 후부터 필라테스 등록을 생각했는데 필라테스는 무슨 그 시간에 잠을 자는 게 우선이었다.
육아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아이를 재우고 일주일에 한두 번 먹는 야식과 맥주 한 캔이었다.
어느새 내 배와 허리엔 작은 튜브가 둘러져 있었다.
수영도 못하는데 이대로 물에 빠진다 해도 죽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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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증명하듯 식스팩 복근의 소유자였던 남편 또한
육아동지 및 야식메이트가 되면서 순식간에 근육이었던 몸이 지방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모태 뚱뚱이 었던 남편이 정신을 부여잡고 20년간 했던 노력은 단 3달의 흐트러진 생활로 인해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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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한참 운동에 빠져있을 무렵.
집 근처에서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무거운 몸을 뒤뚱거리며 걷는 어떤 여자를 보았다. 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저렇게 안될 거야'라고 속으로 다짐하며 나와 그녀를 전혀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임신 때는 호르몬의 변화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나도 모르게 음식으로 손이 향했다.
출산 후엔 하루종일 아이와 둘이 있다 보면, 누군가와 말이 너무하고 싶어졌다.
아니 말이 아니라 '대화'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남편이 퇴근하는 7시만 기다리며 4시부터 틈만 나면 시계를 들여다봤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뛰어 나가는 나를 보며 가끔은 집에서 혼자 키우는 강아지가 이런 기분일까?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쌓인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입에도 대지 않던 술과 야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해소했다.
밤에는 인스타 해시태그로 #육아맘 #출산 6개월 #제왕절개출산을 검색하며 나와 비슷한 여자들이 있나
동질감을 찾으려 염탐했지만 그 안에는 다 날씬하고, 예쁘고, 여유 있는 엄마들뿐이었다.
열등감을 부려봤자 나에게 짜증만 났다.
그들과 나는 애초부터 다른 존재였다고 인정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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