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30분 이상 운동하기' 가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
- 지난 화 마지막 -
임신 전 날씬한 몸으로 돌아가려 욕심내면 나만 스트레스를 받을 뿐.
나는 그렇게 예전의 나를 지워갔다.
지금 내 몸이 원래 내 몸이었던 것 마냥 인정해 버렸다.
그렇게 날씬한 병든 닭이었던 내가
잠시 건강한 삶을 되찾나 싶더니
뚱뚱한 병든 닭이 되어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황당하게도 별이 5개라 광고하는 돌침대 광고가 떠올랐다.
중요한 순간 쓸데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탈하고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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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말.
첫 아이를 출산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무렵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 뒤 날아온 검진결과지의 맨 앞장엔
유방 결절 의심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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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전까지 매년 건강검진을 받아왔었다.
종합소견란엔 항상 어릴 때부터 있던 빈혈과 높은 콜레스테롤 이야기뿐.
그 외엔 가벼운 위염도 없었다.
유방 결절 의심이라는 그 단어를 보자 3개월 밖에 안된 아이가 떠올랐다.
30년 가까이 혼자 살았는데, 3개월을 키운 아이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르다니
그 짧은 시간 모성애라는 게 내 안에 자리 잡았나보다.
일주일 뒤 악성종양과 일반 혹을 잘 구분한다는 병원을 수소문해 진료예약을 잡았다.
60이 넘은 여자 원장님은 초음파 기기로 꼼꼼하게 내 가슴을 확인했다.
중간중간 영상을 캡처하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손에 식은땀이 났다.
"많이 안 좋은가요?"라는 내 물음에
그녀는 "8개 있네요."라 답했다.
어? 분명 종합소견서에 8개라는 말까진 없었는데...
한 개로 알고 있었던 혹이 갑자기 8개로 늘어나버리니 당황스러웠다.
"네? 8개나 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왔다.
"아니오."
"일단 왼쪽 가슴에만 8개 정도 있고 더 나올 수 있어요. 자세한 건 진료 끝나고 말씀드릴게요"
하... 양쪽 합쳐서 8개가 아니었다. 그러면 도대체 몇 개가 있다는 건지
내 가슴에 8개, 아니 그 이상 혹이 들어갈 공간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진료실에 누워 내가 할 수 있는 건 혹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그리고 그 혹이 암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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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마치고 원장실에 들어갔다.
"왼쪽에 8개 있고, 오른쪽에 10개 있어요. 유방 조직 내에 정상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석회반점이라 추적관찰하면 될 것 같아요" 의사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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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이 원인이 된 건지
아니면 출산 후 흐트러진 삶이 원인이었던 건지
유방의 혹을 시작으로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예전엔 없었던 것들이 발견되거나 있었던 증상은 더 악화되었다.
어릴때부터 유전적으로 콜레스테롤이 다른 사람보다 약간 높아 경계성 이상지질혈증이 있었다.
혹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다음해에 받은 검진에서는 경계성 이상지질혈증에서 경계성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이상지질혈증 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경계성이라는 3글자가 사라졌을 뿐인데
처방받아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갑상선 초음파에서는 갑상선에 위험하게 자리 잡고 있는 혹을 발견했다.
이 또한 주기적으로 추적관찰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놈 때문에 요즘도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급성갑상선염이 온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만 했는데도 몸이 축축 늘어지는데
그럴 땐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알약을 1-2주 정도 먹어줘야 괜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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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나는 고3 수험생과 맞먹는 임용고시생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었을 무렵 대학시절부터 꿈이었던 임용 공부를 시작했다.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라는 의사들의 말이 나에겐 사치와 같았다.
남편이 회사에 나가면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아이가 잠깐 혼자 놀면 마른반찬으로 끼니를 때웠고
낮잠 자는 시간을 활용해서 틈틈이 공부를 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이 공부를 하라며 육아를 도와주었지만
결혼도 출산도 모두 내가 선택한 일이었기에 무책임하게 공부에만 올인할 수는 없었다.
중간에는 복직하게 되어 일과 육아 안에서 공부를 어떻게든 끼워 넣어야 했다.
빡빡한 내 하루일과엔 잘 먹고 30분 이상 운동하기라는 미션을 넣을 틈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병원에 주기적으로 가서 진료를 받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육아, 일, 공부를 했고 다행히 1년 6개월 만에 임용에 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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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임명장을 받으러 가는 날.
면접 때 입던 정장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들여다봤다.
배에 있었던 작은 튜브들은 어느새 빵빵한 큰 튜브로 변해있었고,
공부로 인해 책상 앞에 밤낮으로 앉아 있던 습관 때문인지 등은 굽을 대로 굽어있었다.
허리를 펴고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게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다.
체력은 뭐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자도 자도 졸리고 조금만 움직여도 바닥을 보였다.
그동안 어떻게 공부하고 버텼는지 나조차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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