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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품위있는 그녀 Aug 12. 2024

좋아하는 걸 나눌 수 있는 사람

공유,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

작년 여름.

덥다는 핑계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그러다 어느날 늘어져 있는 내 모습이 싫어 카페라도 가야겠다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곳 중 걸어서 갈 수 있는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이럴 때 보면 SNS가 꼭 시간만 잡아먹는 건 아닌것 같다.

내 취향의 카페들을 틈틈이 저장해 놓았더니 목적지를 결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도착한 카페는 SNS에서 본 것 이상으로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적당히 친절하고 시크해 보이는 젊은 여사장님 또한 공간과 어울렸다.

책 읽기 좋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과 레몬마들렌을 주문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커피와 디저트를 카페 주인이 내 자리 위에 올려놓았다.

과일향과 산미가 느껴지는 커피를 마시고 레몬마들렌을 한입 베어 물었다.

커피와 잘 어울리는 게 디저트도 공들여 준비한게 느껴졌다.

그녀가 내어준 컵과 소품들 또한 공간만큼 센스 있었다.

손에 착 감기는 컵의 손잡이와 잔이 입에 닿았을 때 그 느낌.

그에 어울리는 티코스터와 커트러리.

무엇하나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카페를 자주 다니면서 예쁜 잔과 소품을 보며 감탄하긴 했지만

이 카페의 컵과 소품들은 지극히 내 취향이었다.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내내 머그컵을 수십 번도 넘게 이리저리 잡아 보았다.

'어디서 만든 컵일까?' 궁금했다.

바닥에 제조사가 적혀 있지 않을까 아랫면을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커피, 인테리어, 그날의 분위기.

이 3박자가 다 맞춰진 카페투어를 하는 건 쉽지 않다. 

인테리어가 괜찮으면 음료나 디저트가 부조화를 이루고, 그 두가지가 괜찮다 싶으면 북적북적거려 도떼기시장에 앉아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날의 카페투어는 완벽했다. 

집에 돌아와 그 카페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가끔씩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내어주었던 잔과 소품들 또한 다시 보고싶었다.

후에 시간이 날 때면 가끔씩 그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왔다. 

그때마다 주인이 내어주는 컵과 티코스터는 매번 달랐지만 마음에 쏙 들었다.

아침에 내려먹는 커피 한잔도 '이 컵에 마시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보았지만 똑같은 컵은 찾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카페 주인에게 이런 컵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카페와 관련된 일을 전혀 하고 있지 않고, 단지 집에서 마시는 컵을 이걸로 바꾸고 싶어 물어보는 거라며 강조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별거 아니라는 듯 이천의 한 도자기 공방에서 샀다며 위치와 상호를 알려주었다.

그녀 덕분에 몇 달을 찾아 헤맺던 내 취향의 머그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침에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그 컵에 담아 마실 때 종종 그녀가 떠오른다.

좋아하는걸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사람.

.

.

나는 그녀처럼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성격이 타고나서인지 어릴 때부터 자라온 환경이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내 생각엔 아마 둘 다 영향을 준 것 같다.

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외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18살, 고등학생 2학년이 될 때까지 살았다.

그 집에 내 물건이라는 건 없었다. 3살 어린 동생이 울구불고 떼를 쓰며 달라고 하면 할머니에게 혼날까봐 동생에게 양보했다.

친구들에게 다 있는 내 방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엄마와 여동생은 10년 넘게 같이 방을 썼다. 

전자레인지 크기의 tv와 옷장이 있는 작은 방 안에서 이불하나 펴고 다닥다닥 붙어 잠을 잤다.

그렇게 남들보다 조금 부족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때문인지 성인이 되어 직장에 자리 잡고 나서부터는 내 것이라는 게 중요해졌다.

아무도 뺏어가지 않는데 뺏길까봐 두려웠다.

좋은 게 있으면 나만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나와 달리 좋은걸 타인과 공유하는 사람을 보면 뭔지 모를 동경심이 생긴다.

.

생각해보니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이 그런 사람이었다.

남편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공유했다.

언젠가 친구를 만나고 온 남편이 검은 비닐봉지에 병맥주 몇개를 넣어 들고왔다.

처음 먹어보는 수제맥주인데 너무 맛있어서 나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어 사왔다고 했다.

지인이 옥수수나 토마토를 농사지어 몇 개 주면 나와 아이도 먹어보게 하고 싶어 꼭 가져온다.

고깃집에 가서도 항상 쌈을 싸서 본인보다 먼저 내 입에 넣어준다.

아이 역시 이런 남편을 보고 배워서인지

학교에서 받아온 작은 간식도 나와 남편에게 맛보라며 먼저 건넨다.

정말 콩한쪽도 나눠먹는 마음을 가졌다.

.

분명 어제까진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 거름망을 안비우는 남편을 보며

나와 맞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던 것 같은데

글을 쓰다 보니 거름망을 안 비우는 게 대수인가 싶다.

나보다 조금 더 마음이 넓은 이 남자랑 사는게 감사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내 것을 챙기는 나와 좋은 걸 공유하는 남편 사이에 자란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또 타인과 공유가 서툰 내가 남편과 살면서

10년 뒤에 내 모습은 어떻게 변해있을지도 궁금하다.

부디 남편만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또 여기서도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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