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있어서는 왜 이렇게 조급할까요?
간이 콩알만한 인간.
그건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즘 물건 비우기를 위해 1일 1 당근(마켓)을 하고 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골라 하루에 하나씩 판매글을 올린다.(한꺼번에 모아서 올리자니 엄두가 나지 않아 생각해 낸 방법이다.)
비우고 비워도 어디서 물건들이 튀어나오는지
물건이 계속 만들어지는 화수분이 우리집 어딘가에 있는 게 분명하다.
포장도 뜯지 않은 주방가위 3개가 각각 다른 수납장에서 발견되었고, 7년전 사은품으로 받은 유모차커버는 박스째 팬트리에 한자리 잡고 있었다. 보냉백은 왜 이리도 많은지 캔맥주를 사며 사은품이라고 가져오고, 친정집에서 반찬을 담아 올 때마다 가져오니 집에 남아돈다.
차라리 돈이 발견되면 좋으련만, 천 원짜리 한 장 눈에 띈 적이 없다. (그만큼 버는 족족 알뜰하게 하나도 안 남기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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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보냉백을 당근에 11,000원에 올렸다.
만원에 올리기엔 아쉽고 천 원만 더 받아서 커피 한잔 사 먹으려는 생각으로 가격을 책정한 것이다.
새 제품을 저렴하게 올려서인지 30분도 안되어 '섬김'이라는 닉네임의 구매자가 나타났고, 아파트 후문에서 그와 9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시간이 되어 약속장소에 나갔다. 우리 엄마 나이대로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가 수입 SUV차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캐릭터가 그려진 보냉백을 들고 다닐 아저씨를 상상하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이내 표정을 관리하고 그에게 보냉백을 내밀었다.
그는 15,000원을 나에게 건넸다.
미리 잔돈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면 챙겨 왔을 텐데…
거스름돈이 없다고 하니 내 손위에 있던 15,000원 중에 5천 원짜리 지폐를 재빠르게 가져갔고,
천 원은 사무실에 가서 당근페이로 이체해 주겠다며 바람처럼 차를 끌고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자리에서 멍하니 그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봤다.
집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그에게 천 원 송금요청을 보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천 원 때문에 쩨쩨한 인간이 되지 말자!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조심스럽게 송금요청 메시지를 한번 더 보냈다.
애초에 천 원을 깎아 달라고 나와 협상을 했다면 그렇게 했을 텐데,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으니 그게 천 원이든 백 원이든 초조했다.
은근슬쩍 할인해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원래 이렇게 네고하는 상습범인가? 오만 생각이 들었다.
'섬김'에게선 응답은 없다.
이제 그는 나에게 세상 파렴치한 인간이 되어있었다.
중년아저씨에게 천 원 먹튀를 당한 것 같아 속에서 화가 났다.
이게 뭐라고 30분간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한 걸까?
이렇게 간이 콩알만해서야...
오늘 아침. 복잡한 마음과 머릿속을 비우겠다고 '명상'이라는 걸 해놓고
천 원을 떼일까봐 혼자 의심하고 추궁하며 보낸 30분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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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처음은 아니다.
예전부터 친구와 만나 밥을 먹고 계산을 할 때 상대방에게 내가 돈을 이체해주는 게 마음이 편했다.
모임에서 큰 금액을 결제하고 헤어진 후 정산하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게 보였다.
어떻게 1-2만 원도 아닌 돈을 언제 줄지도 모르는데 여유롭게 기다리지?
그 마음이 부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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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여유 있고, 느긋하면 좋으련만
돈에 있어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대신 돈을 제 때 못 받았을 때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주어야 할 돈이 있으면 오래 가지고 있지 않는다.
혹시 나처럼 오만가지 생각에 빠지지 않을까
자리에서 이체해서 확인시켜 주거나, 직접 전달해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음날 아침 얼굴 보자마자 건넨다.
뭐 이렇게까지? 할수도 있겠지만 간이 콩알만한 인간이 하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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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무얼 당근에 올릴까? 잠들기 전 고민한다.
사용하지 않은 셰이크통 3개를 올리기로 했다.
가격은 9천원.
그 옆에 천 원짜리 한 장도 준비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