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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기
나는 태어났다
바람의 거룩한 바라므로
숨결에 깃들었다
펄떡이는 뜨거운 심장이
나를 부른다
주인이시여
얼마 지나지 않아
고통은 나를 무너뜨리고
온전히 나를 지배한다
전복되었다
주인이시여
남루한 껍데기 안에 똬리를 틀고서
피를 타고 유영하는 의식을
증명할 길이 없다
반란을 꿈꿔보지만
작은 폭력에도 한심하게 무너져
거추장스런 자존감은 내팽개치고
스스로 공들여 의식을 결박한다
무력감에 휩싸인 비루한 의식이란
허튼 소리, 말장난에 불과하다
날카롭게 패이고
깊이 조여올수록
나란 희미해졌고
공포에 휩싸여 철저히 굴복했다
깨끗하고 선명한 투항
분명 나란 것은
작지만 한 부분을 점거했으며
무엇도 이것을 동시에 점유할 수 없었다
화마에 휩싸여 덕지덕지 엉겨붙은 생
나를 집어삼킨 누더기
팔다리의 거룩한 운동이 멈추고
심장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는다
죽음이야 말로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비로소 나는 태어났다
바람을 간절히 바라므로
손가락 다섯개의 완벽한
숨을 벗어 던지고
깊은 잠으로
다시 우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