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줄게
우리 집 강아지 랴이는 나를 많이도 닮았다.
강아지도 사람도 서로를 닮아가는지
생김새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하다.
집순이인 것도, 에너지가 금방 고갈되는 것도, 겁이 많은 것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꼬리를 흔들어대는 것도 말이다.
랴이는 잘 뛰고, 뛰는 것을 좋아하는 강아지다.
강아지 종으로서는 그렇긴 하지만 사실 자기가 뛰고 싶을 때만 뛴다. 그래서 랴이의 성향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집순이구나. 언니처럼 에너지 고갈이 빠르구나.
산책을 좋아하고, 친구 강아지들에게 관심은 많지만 집에서 광합성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강아지.
집에서 애착 담요를 덮고 품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강아지.
이런 겁쟁이 소심쟁이 아기 같은 강아지를 키우며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차를 타고 멀리 가려고 하면 멀미를 하고, 겁쟁이 강아지는 품에 안겨 있는 것이 아니면 강아지 운반 가방이나 켄넬에 들어가지도 않기에, 여행은 물론이고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꽉 찬 7년 동안 랴이와는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쇼핑몰정도만 가봤으니 이제는 어딜 가고 싶어도 해보질 않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이유로 다음을 기약하고, 그다음에는 저런 이유로 다음번에 가보자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갑자기! 느닷없이!
바다를 가게 되었다.
짐을 챙기면서도 멀미하면 어떡하지, 멀어서 힘들어하면 어떡하지, 괜히 강아지는 좋아하지도 않는데 인간의 욕심으로 무리하는 것은 아닌가, 계속 계속 걱정이 되었다.
일단 떠나는 날이 되었고, 목표지는 속초.
중간에 가평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속초에 도착하여 바다를 보고, 밥을 먹고, 카페에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랴이는 헥헥대며 멀미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예전과는 달리 심하게 멀미하지 않고, 앉아있기도 하고, 잘 버텨주어 꽤나 순조롭게 가평으로 향할 수 있었다.
가평 휴게소에 도착하여서는 강아지 전용 놀이터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잠깐 산책을 하며 볼일도 보았다.
가평 휴게소에서 너무 놀라고 감동받았던 점은 반려동물을 위한 휴게시설이 너무나도 잘 되어있다는 것이다. 반려동물 소형/대형 놀이터가 있고 식수대도 있고, 그야말로 펫 프렌들리 휴게소였다. 그래서인지 크고 작은 강아지들이 느긋하게 휴게소를 돌아다니고 그렇게 강아지와 사람들이 뒤엉켜 있어도 누구 하나 인상 찌푸리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기분 좋게 마음 놓고 랴이와 실컷 뛰어놀고(진을 빼놓고) 견생네컷도 찍었다.
이제 다시 속초로 출발!
가평에서 한숨 돌려서인지 더 수월하게 도착한 속초. 가기 전에도 가면서도 내내 걱정하고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 파란 바다가 보이자 나도 모르게 랴이 손을 잡고 바다다!!! 하고 외쳤다.
차에서 내려 리드줄을 하고 바다를 향해 뛰어가면서 얼마나 벅차고 행복하던지.
이게 바다야, 랴이야!
모래가 느껴져? 파란 바다가 보여? 저기 철썩철썩 소리 나는 게 파도 소리야, 랴이야!
랴이야 행복해? 언니는 너무 행복해!!!
계속 이런 말들을 하며 랴이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바다의 짠내를 맡게 해 주고, 모래를 느끼게 해 주고, 파도 소리를 들려주었다.
바다를 보고 밥을 먹으러 갔다. 카페도 갔다.
강아지를 데려가도 되는 곳을 찾아가기는 했지만, 이제는 정말 반려견과 함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카페에서 바닷바람을 쐬며 이제는 피곤했는지 슬링백 안에서 꾸벅꾸벅 졸던 랴이,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는 아예 품 안에서 자세를 취하고 쭉 뻗고 잠을 자던 랴이를 보며 이 짧은 여행이 그래도 나만의 욕심은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하였다.
강아지는 평생 말하지 못하는 아기 같은 존재이다.
나의 사랑하는 강아지가 아픈지, 행복한지, 슬픈지, 기쁜지, 나는 절대 확신하지 못한다. 그냥 그저 짐작하고 느끼는 것뿐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랴이에게 어쩌면 매일 산책하는 집 근처 산책길이, 동네가, 어쩌다 한번 가는 나들이가 지루하고 답답했을 거란 생각을 매일같이 했었다.
그런 랴이에게 바다를 보여주는 것은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함께 모래를 느끼고, 바닷바람을 쐬고, 파란 바다를 보고, 파도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벅차오르고 감동으로 다가온다.
랴이에게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자체가 행복이겠지만 나의 욕심 조금 더 보태어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함께 느끼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온 우주를 다 주고 싶은 이 마음, 이게 바로 사랑이겠지.
랴이야 행복했어?
언니는 너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바다를 함께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너는, 너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들은, 언니에겐 선물이고 행복이고 사랑 그 자체야.
사랑을 알려줘서 고마워. 나의 영원한 껌딱지 강아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