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솟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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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육체의 절멸을 기도하지만 기억은 육체 없이 영원하다.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 있게 할 수는 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한강 작가가 이야기하였다.
과거와 현재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는 과거를 비추는 거울을 따라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더 나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더 나은 우리가 되었지만,
줄곧 과거의 잘못들을 자행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작별할 수 없다.
작별하지 않는다.
과거의 시련과 아픔은 우리를 일어나게 할 것이고, 행동하게 할 것이다.
죽은 자들의 이야기는 그 시대의 실패나 좌절의 결과가 아닌 산 사람들의 용기와 희망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일 때까지,
성냥개비에 불꽃이 솟을 때까지,
가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성냥을 긋고, 또 그을 것이다.
그리고 잊지 않을 것이다.
작별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