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삶을 지휘하는 지휘자
얼마 전 롯데콘서트홀에서
‘지브리 & 디즈니 영화음악 콘서트 〈The Magic of Autumn〉‘를 관람하고 왔다.
이 음악 콘서트의 지휘자는 ‘백윤학’ 지휘자님인데
‘춤추는 지휘자’로 유퀴즈에 출연하신 걸 보고는 기회가 된다면 꼭 직접 보고 듣고 싶었었다.
https://youtu.be/7S1LJ8ic02E?si=2plHiB0o3tnCI6vV
기존의 오케스트라의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
지휘자님만의 긍정적이고 발랄한 지휘와 단원들과의 단합이 색다르게 느껴져서일까,
미디어를 통해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무대 속에서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유퀴즈를 본 이후 잠시 그 기억을 잊고 지내던 중 연말이 다가오니 가 볼 연주회나 콘서트가 없을지 찾아보는데
마침 백윤학 지휘자님이 지휘하시는 ‘지브리 & 디즈니 영화음악 콘서트 〈The Magic of Autumn〉‘의 티켓이 오픈되어 있었다.
이건 무조건 가야 돼!
어느 자리에 앉을까 고민을 하는데
보통날이었으면 중앙의 가장 좋은 자리를 제일 먼저 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휘자님도 보고 싶고, 오케스트라의 소리도 제대로 듣고 싶고, 각각의 악기도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처음으로 측면의 자리를 살펴보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각 열마다 보이는 시야를 확인하고 꼼꼼히 비교해서 왼쪽 구역의 3번째 열을 선택하였다.
두근두근 대망의 연주회 당일!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단원들이 들어오고, 지휘자가 들어왔다.
조그맣게 들리는 바이올린의 활을 튕기는 소리로 시작하여 점점 웅장해지는 악기들의 소리가 하나가 되었다.
지브리와 디즈니 OST 음악이어서 그런지 보지 않았던 영화였는데도 음악을 듣다 보면 같이 흥얼거리고 박자를 타고 있었다.
자주 들어 익숙한 노래도, 낯설지만 어느새 속으로 함께 음을 흥얼거리고 있는 노래도,
오케스트라로 들으니 마음에 울리는 소리가 더 크고 감동이 수십 배로 밀려들었다.
특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OST인 ‘인생의 회전목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인데 오케스트라를 유튜브로만 감상하다가 직접 들으니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지휘자님의 손 끝에서 시작된 마법이 하나하나의 음을 만들어내고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느껴졌고,
지휘자의 해석이 담긴 몸짓과 손짓, 그리고 그에 맞춰 서로가 이어진 듯 유려하게 진행되는 단원들의 연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하나가 되어 음을 쌓아가는 악기들, 그 모든 것이 전율이 되고 감동이 되어 쓰나미같이 몰려왔다.
여러 연주회들을 가보고, 맨 앞열 중앙에서 보고 듣기도 했었지만
이번 공연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잘 알지 못했던 악기들의 솔로를 감상한 것이었다.
맨 끝에서 늘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마림바의 솔로 연주를 보며 이 악기가 이런 소리를 내는구나 감탄하게 되었다.
그리고 옆쪽에서 모든 악기들의 연주를 보다 보니 가장 바쁘고 앙상블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화룡정점이 마림바 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림바 팀은 마림바도 치지만 트라이앵글도 치고 탬버린도 치고 북도 치고 징도 치고 새소리가 나는 악기도 연주를 한다.
라이언 킹 음악이 연주될 때에는 뒤에서 귀여운 쇼맨십도 담당하였다. (코끼리 코처럼 긴 무언가를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1부, 2부가 끝나고 앙코르 타임에는 영상을 찍는 것이 허락되었다.
앙코르만 1시간 정도를 하였는데 그때 지휘자님은 더 열심히 몸을 흔들었고 그에 맞춰 연주자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고 지휘자님을 보며 웃으며 신나게 연주를 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 내내 황홀함과 즐거움, 행복, 이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휘자님의 통통 튀는 지휘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서로에 대한 믿음, 신뢰,
그리고 서로가 하나의 음표가 되어 하모니를 이루는 모습이 못내 내가 살아가는 여정에 있어서도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같은 음악에도 새로운 해석을 하여 긍정적인 기운으로 팀을 아우르고 리드하는 지휘자는 곧 내가 되어,
통통 튀는 각각의 음표들과 소리들을, 나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과 기억들을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다면?
나를 지휘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나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도, 나쁜 기억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나의 일이고 나의 몫인 것이다.
나중에 나의 인생을 돌아보고 기억할 때 아름다운 앙상블로 기억될 수 있도록,
나의 삶을 지휘하는 지휘자는 온전히 나뿐이라는 것.
춤추는 지휘자처럼 나도 춤을 추며 즐기며 인생을 지휘하고 싶다.
아무리 어려운 악보여도 통통 튀는 음표가 가득하여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없는 시련을 극복해 내고 수없이 좌절을 해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언젠가는 여러 힘든 일들도 멀찌감치서 바라보고
자그마한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를,
그리고 그 기억들과 소리들을 긍정적인 기운과 마음으로 아름답게 빚어낼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