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0121 23화

민낯의 품위

Manner makes Man

by 스와르

아파트 커뮤니티에 사우나 시설을 몇 회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이 각 집마다 주어진다.

어릴 적에는 목욕탕에도 자주 가고, 때마다 세신도 했었지만

크고 나서는 물기 가득한 곳의 답답한 공기와 습기가 싫어서 목욕탕이나 사우나, 물놀이를 하는 곳은 잘 가지 않곤 하였다.


하지만 이 아파트의 주민으로서!

커뮤니티 비용을 동일하게 내는 입주민으로서!

무료로 주는 사우나 이용권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나의 손해!


적지 않은 공동 커뮤니티 비용은 사우나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사우나실로 이끌었고, 습관적으로 지금 사우나를 몇 명이 사용하고 있는지 이용 현황을 확인하는 습관을 갖게 해 주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사우나를 이용하기 전부터 입주민 소통창구에서 사우나 이용 매너랄까? 예의를 언급하며 옥신각신 하는 글들을 많이 보긴 하였다.

뭐 목욕탕을 이용하면 누구나 다 아는 내용들인 것 같은데 이렇게 설왕설래할 일인가 싶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자리 선점하지 말아라.’, ‘씻고 탕에 들어가라.’, ‘양심 있게 행동해라.’, 등등 이런 것들이었다.


나는 탕에도 들어가지 않고, 사우나도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빠르게 30분 컷으로 목욕을 하고 크림을 바르고 얼른 머리 말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 런. 데.

목욕탕을 이용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은근히 기분 나쁜 일들이 종종 생기곤 하는 것이다.


목욕을 하는데 물이 튄다고 뭐라고 하시던 분‘들’...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을 뿐인데 물이 튄다고 뭐라 하시면 목욕탕이어서 당연히 물이 튈 수밖에 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말하지 못해서 그냥 죄송하다고 하고 소심하게 씻었다.

하지만 뭐라고 하던 그분은 대야에 물을 받아 거의 물을 뿌리셨다...

왜 당신들은 되는데 저는 안되는 거예요...


화룡정점은 따로 있다.

비어있는 공간이긴 하였는데 짐이 옆쪽에 얹어져 있었다.

자리 주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자리 선점을 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규칙이기도 하고, 빨리 씻고 나갈 생각에 그 자리에서 씻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머리에 샴푸질을 하던 중,

언뜻 뒤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벗거나 렌즈를 빼면 모든 것이 뭉크의 그림처럼 보인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빠르게 씻던 중, 뒤에 계속 서있던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한마디를 던졌다.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나는 순간 내가 그 사람의 물건을 쓴 줄 알았다.

아닌데... 나는 내 거를 썼는데...

‘네?’ 하고 대답을 하자

‘여기 자리 있는 거 모르셨어요?‘

자리 선점 금지인데...

너무나도 당당하고 앙칼진 그녀의 목소리에 샴푸질을 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깨갱하고 죄송합니다 하며 다른 자리로 옮겼다.

그런데 폭풍 샤워를 하며 생각할수록 그러데이션으로 화가 나는 것이다.

말을 저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본인의 것을 훔쳐 쓴 것도 아니고, 자리를 훔친 것도 아닌데 여기서 뭐 하시는 거냐니...!

마음 같아서는 ‘말을 왜 그렇게 하시죠? 여기 원래 자리 맡아두면 안 되는데요. 말씀이 조금 지나치시네요.’

이렇게 말할까 생각도 했지만 나체로 옥신각신하는 것이 추잡스럽게 느껴져서 그냥 기분이 나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나는 이런 별의별 일들을 겪고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기분은 나쁘지만,

그런 상황과 그런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곤 한다.

내가 기분이 나빴고 같은 상황이라도 나였다면 다른 말과 행동을 했을테니 다시 한번 깨닫고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입는 옷에 따라 옷의 종류에 따라 애티튜드가 바뀌곤 한다.

캐주얼한 옷을 입으면 편안하고 자유로운 무드가 되지만,

슈트를 입으면 걸음걸이부터 손짓, 표정, 말투까지 격식을 차리게 된다.

그런데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런 때야말로 그 사람의 본성과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 아닐까.

민낯의 품위를 갖지 못한 사람은 그 위에 아무리 여러 겹의 가면을 써도,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결국 본색이 드러나고야 말 것이다.

반면에 민낯조차도 품위 있는 사람은 누더기를 걸쳐도 빛이 날 것이고 그 사람의 존재감을 감추지 못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굴 민낯이 아름답고 품격 있는 사람이어야 어떤 옷을 입어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고 끝까지 품격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Manner makes man.

예의와 품격 있는 행동이 한 사람의 인격을 결정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 위치까지도 결정한다는 이 속담을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다들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읽어보고 매너를 장착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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