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그리고 사랑
요 몇 주는 글을 쓰지도, 브런치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가는 여름 끝자락에 드디어 몸에서 지쳤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계절이 변하면서 일 년에 한두 번씩 그러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몸은 바쁘고 또 마음도 소란스럽기만 하였다.
그래서 관성처럼 변한 내 일상,
무언가를 하긴 하지만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나.
권태로운 마음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내가 좋아하던 것들의 자취를 찾기 위해
마음에서 잠시 뒤로 밀려나있던 것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하였다.
운동을 등록하였다.
환불받지 못한 피트니스 센터에서의 피티 수업 이후 몇 년이 흘렀던가.
그 사이 수영도 조금 하고, 아파트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웨이트도 조금 해보았지만
나의 의지로 운동을 계속해서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운동을 가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해 내려면 100개가 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어떤 운동을 할지,
여기저기 삐그덕 대는 몸으로 부상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이 있을지,
재미를 갖고 꾸준히 하려면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바레’라는 운동을 알게 되었다.
‘바레’는 바를 이용한 필라테스, 근력, 유산소 요소가 결합된 전신 운동이다.
매번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는 근력 운동과 필라테스의 지루함을 겪어보았기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는데
마침 집 앞에 새로 생긴 센터에서 바레 수업을 한다고 하여 체험 수업을 해보았다.
냉정한 평가를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운동을 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팔로 바로 수강권을 끊었다!
바레 수업을 할 때에는 노래를 틀어놓고 하는데
노래에 리듬을 맞추어 다양한 자세로 전신 운동을 하는 덕분에 매번 새롭고 매번 온몸이 근육통으로 뻐근하다.
늘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못했던
나에게는 숙원과도 같았던 운동을 하며
나의 몸과 정신에 활력을 주며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우리 집 강아지 랴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랴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 더 자세히 세밀하게 알아가고 있다.
견생 9년째,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어디에 나가 9살이라고 이야기하면 아이쿠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었다.
9년을 꽉 채우며 살아가며 내가 알던 아기 시절 랴이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체감하는 요즘이다.
작년 여름에만 해도 랴이를 데리고 바닷가에도 갔는데...
랴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껌딱지가 되어간다.
차 타는 것을 싫어하고, 사람이 많은 공간을 무서워한다.
자기보다 어린 강아지에게는 유하고, 기본적으로 사람과 강아지에게 큰 관심은 없어서 강아지 친구를 만나면 몇 번 킁킁하다가 갈 길을 간다.
랴이가 더 어렸을 때 스타필드에 몇 번 데려간 적이 있다.
그때는 실내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기에 차를 타고 스타필드에 데리고 가 새로운 환경에서 산책하고 돌아다녔었다.
분명히 그때는 잘 따라다니고 좋아했던 것 같은데...
얼마 전 예전의 좋았던 기억을 안고 랴이와 스타필드에 갔다.
내려놓자마자 눈이 커지고 귀가 쫑긋 서고 입이 벌어지고... 각성 상태가 되어 계속 엄마와 나의 다리 옆에 착 달라붙어 걸어 다녔다.
혹시나 주인을 잃어버릴까 너무나도 긴장한 상태로 걸어 다니고, 잠깐이라도 앉으려고 하면 안아달라고 하는 랴이를 보고는 바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대자로 뻗어 자는 랴이를 보며 강아지에게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하는 행동들이 어쩌면 인간 욕심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냥 랴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있게 놔두며 그 모습들을 카메라로 찍고 있다.
또다시 과거가 될 이 순간들이 그리워질 때 언제고 다시 찾아보고 싶어서 말이다.
사랑을 주는 대상을 관찰하고 더 많이 알아갈수록 나에게는 곱절의 사랑으로 돌아온다.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사랑하는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봐준다.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사랑받는 기분이 든다면,
마음이 벅차오른다면,
같은 크기의 사랑이 아닐지라도 영원히 내 마음에 남을 사랑일 테다.
집 바로 앞에 큰 도서관이 생겼다.
성인이 되어 책을 다시 많이 읽기 시작했던 것은 공황장애로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공황 초기에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무언가를 하면 다시 증상들이 나타났기에 종종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때 책을 참 많이 읽었다.
희한하게 영상들을 보면 머리가 어지럽고 힘이 드는데 활자를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시를 읽으며 한 글자 한 글자 그 의미를 생각해 보고 곱씹어보고, 소설을 읽으며 막힘없이 그 스토리에 빨려 들어가고, 산문을 보면서는 작가의 시선에는 무엇이 걸려있었을지 생각해 보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책을 보다가 몸이 점차 회복이 되니 몸과 마음이 바빠지고 자꾸만 해야 할 순위에서 밀려나 책을 읽을 시간이 적어졌다. 숙제처럼 자기 전 몇 장을 읽다가 잠에 들고, 점심을 먹고 틈 날 때 잠시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장르에 상관없이 재미있는 책을 마구 읽고 사유하는 것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무작정 내 눈에 들아오는 책들을 골랐다.
제목과 뒤에 적힌 추천사만을 보고 7권을 빌려왔다.
다른 작가님께 배운 대로 책 소독도 하고 (새 책이지만 신기해서 해보았다.)
아예 일주일 연장을 하고는
가벼운 손으로 가서 무거운 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책을 빌린 지 2주째, 4권의 책을 읽었다.
책을 여유 있게 읽으며 독서의 기쁨을 되찾은 것 같다.
책의 마지막 몇 장에 적힌 해석 같은 글들을 읽을 때면 작가와 꼭 토론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다양한 해석과 생각들을 흡수할 수 있어서 몇 주 사이에 생각의 폭이 넓어진 것만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이제야 얽혀있던 마음들의 고리가 풀리고 후우 하고 가쁘던 숨을 내쉬게 된다.
이번 쉼을 통해 나는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던 것들을 다시 찾아내고 돌이켜보았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사랑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힘든 과정 또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어떤 마음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도 내가 더 행복해지고 내 안에서 사랑이 차오른다. 이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의미들을 권태로이 하나씩 하나씩 잊어가던 나에게 네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시 마음에 쌓아놓으라고 재촉하고 또 기다려 준 시간에게 고맙다.
늘 똑같이 시간은 흐르지만 어느 날에는 한없이 느리고 어느 날에는 너무나도 빨리 지나간다.
사랑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무언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주기에 시간은 야속하리만치 빠르게 흘러간다.
사랑하자.
사랑하는 것을 하자.
사랑하는 것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