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줄 알았지
제목처럼 두근두근거리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내가 가진 고양이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먼저 이야기하려고 한다.
때는 몇 년 전 여름...
더위를 피해 밤늦게 강아지 산책을 하던 때였다.
그 당시 살고 있던 동네에는 고양이들이 매우 많았다.
나는 고양이파vs강아지파 중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강경 강아지파였기 때문에 고양이는 살면서 가까이서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었다.
길고양이들은 낮에는 숨어있고 저녁때 보여도 근처로 걸어가면(내가 다가간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가는 길 한복판에서 만났다.) 후다닥 도망갔기 때문에 신기하게도 어두울 때 멀찌감치서만 본 게 다였다.
그마저도 등을 말고 하악질을 해대서 미안~ 이러며 후다닥 피해주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일이 벌어졌다.
강아지 산책을 하러 집 밖에 나와 1층 현관문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고양이가 강아지를 공격한 것이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정도 앞에서 걸어 내려가던 강아지를 현관문 근처에 있던 고양이가 할퀴었는지 물었는지 대뜸 공격을 하였다.
깜짝 놀란 나는 강아지를 끌어당기다가 한 손에 번쩍 안아 들었다.
놀라서 꼬리를 말고 굳어있던 강아지를 조금 산책시키고 집에 돌아와 발을 닦아주는데
엉덩이 쪽에 살점이 뜯긴 상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강아지를 보호하며 나도 긁혔는지 발목에 피가 줄줄 나고 있었다.
아픈데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바들바들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강아지와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이 오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어떤 식으로(발톱으로 할퀸 상처인지 이로 물린 상처인지) 생긴 상처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점이 떨어져 나가 계속 피가 나는 상태여서 상처를 꿰매고 주사를 맞고 다사다난했던 이틀을 꼬박 보내었다.
그 이후로 랴이는 고양이와 산책에 안 좋은 기억이 생겨서 산책을 다시 즐겁게 하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고, 고양이를 만나면 여전히 무서워한다.
그래서 그 일이 있고 난 후 길고양이는 사납구나, 최대한 마주치지 말아야겠다, 피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전 동네의 길고양이(a.k.a. 냥아치)와 이별을 고하고 새로 이사 온 동네는 강아지 천국이었다.
여기도 저기도 강아지 친구들이 엄청 많아서 늘 어느 시간에 나가도 산책하는 강아지를 만나는 날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시간에 산책을 하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냐옹~ 소리.
고양이다! 순간 놀란 마음에 랴이를 안아 들고 고양이를 찾던 순간이었다.
냥냥 거리는 소리와 귀여운 얼굴, 표범 같은 무늬를 갖고 있지만 애교가 많아 보이는 모습에 안 좋았던 기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머릿속에는
‘귀엽다, 정말 귀엽다, 엄청나게 귀엽다.’
이 생각이 가득해졌다.
가만히 있으니 어느새 옆으로 와서 다리에 몸을 비비기 시작하였다. 그러고는 옆에서 철퍼덕 누워버리는 고양이.
지나가던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이 말씀해 주시기를,
고양이가 꼬리를 바짝 세우는 건 호감의 표시이고,
사람에게 다가와 자신의 몸을 비비는 건 신뢰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마음에 들어온 고양이.
산책을 나가면 5번 중 3번은 만나 몸을 비비고 가지 말라고 냐옹 냐옹 울어댔다.
그러던 중 또 일이 생겼다.
고양이를 마음껏 눈으로 예뻐해 주고 바라봐주다가 안녕 인사를 하고 집에 가는데, 현관 앞까지 쫓아오는 것이다.
내가 키울 상황은 아니었기에 얼른 가라고 열심히 손짓발짓을 해가며 다른 데로 가는 것까지 보고 미련을 뚝뚝 흘리며 집에 돌아왔다.
이게 바로 간택당한 것인가?
그 어렵다는 고양이의 간택...
간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그런데 내가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너무 큰 사랑을 주는 것도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도 혼란스러워할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고양이를 보아도 인사만 하고 강아지 산책에 집중을 하기 시작하... 긴 했는데
어느새 고양이가 동네의 대표 귀염둥이가 되어있었다.
늘 밥과 물을 챙겨주시는 분도 생겼고...
날이 어두워지면 고양이가 자주 다니는 길에 사람들이 여러 명 모여있기도 하고...
고양이의 간택을 받은 줄 알고
설렘과 행복, 미안함과 걱정이 들었던 며칠이었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사랑을 받는 것 같아 다행이다.
너무 사람 손을 타도 좋지 않을 텐데 걱정도 되긴 한다.
고양이가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사람을 믿는 것은 좋지만 너무 믿지만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아무튼
귀여운 고양이의 친화력과 사랑으로
안 좋았던 기억을 잊고
편견들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내 강아지가 제일 사랑스럽지만
모든 동물들은 다 소중하고 사람에게 순수하게 사랑을 주는 존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