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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Jan 22. 2024

58. 강원대학교에 초청받다

31장에 여섯 가지 색깔을 가진 이들이 등장한다. 그중 위암 치료를 위해 대기업 임원을 포기하고 완치된 현재 더 멋진 삶을 사는 형님이 있다. 그가 강원대학교 초빙 교수로 2년간 재직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던 그는 여섯 가지 색깔을 가진 우리를 초대했다.


우리는 당시 각자 꿈꾸는 삶을 위해 여러 가지 선택의 길에 서 있었고 노력을 기울일 때였다. 자신의 수업시간을 할애하여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다. 어찌 보면 살아있는 인문학 교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그저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선택했고,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다가 의미 있는 것을 찾아 고민하고 찾고 버리고 또 선택한 그런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초청한 형님을 제외한 다섯 명 중 초대에 응한 것은 나 포함 세 명이었다. 중소기업 법무팀을 과감히 때려치우고 협상 강사라는 길을 택한 동생, 창업한 회사를 성공시킨 후 다른 이들에게 넘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 기획일을 하며 사는 멋진 친구. 그리고 연금이라는 미래 보장과 철밥통이라는 좋은 직장이 있음에도 강사라는 꿈을 꾸는 나.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되니 어려울 것은 없었다.      


내 이야기는 지금 쓰고 있는 글과 비슷했다. 꿈이 없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사는 게 편했던 아이. 해군 사관학교 합격과 불합격 사이. 아무 생각 없이 간 대학. 마음먹으면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나(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 철없이 아무것도 몰랐던 대학생 그리고 다단계의 악몽. 경찰관이 된 후 편한 부서만 돌아다니며 나태해진 나. 그리고 위기의식과 미래에 대한 고민. 강의라는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된 계기와 현재 노력하고 있는 모습. 이런 순서대로 강의안을 작성했다. 이야기가 무거워지지 않게 하려고 중간중간 재미있는 사진을 넣었다. 만들면서 학생들이 좋아할 거라 자신했다. 경찰이라는 직업이 흔하지 않으니 더 흥미를 느낄 것 같았다.     


강원대학교는 춘천에 있다. 부산에서 춘천까지 4시간이 넘게 걸렸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서 다시 지하철로 춘천까지 갔다. 강의에 자신이 있었지만, 대학생들 앞에선 처음 서보는 거라 떨렸다. 대학 정문을 통과하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들이 살아온 삶을 알긴 했지만 어떻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는 조용하고 나와는 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동생은 나와 비슷한 열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동생의 강의 스타일도 나와 비슷한 것을 알기에 풀어나가는 방식도 비슷할 거라 여겼다.  

    

강의실은 20여 명의 학생이 앉아 있어도 꽉 찰 정도로 좁았다. 학생들은 앞으로 나선 우리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형님이 우리를 한 명씩 소개했고 학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우리를 환영했다. 발표 순서는 내가 1번, 동생이 2번, 친구가 3번이었다. 큰 숨을 한 번 내 쉬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펼친다는 것이 즐겁고도 흥분되었다. 그들은 때론 웃기도 하고 때론 진지한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들과 ‘한 공간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평가 따윈 상관없었다. 그냥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내 이야기가 끝나고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가 이어졌다. 역시 나와 내 동생의 이야기는 성향이 비슷했다. 스토리 구성도 비슷했다. 우린 둘 다 저돌적이고 돌격형과 같은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마지막 친구는 달랐다. 조용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무언가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잔잔한 파동을 남겼다. 내공이 있다면 아마 ‘그 친구의 이야기가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신을 자랑하려 했던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와 동생은 우리를 내세우려 했다면, 그 친구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뭔가 알아서 드러나는 그런 느낌의 이야기를 했다. 

     

그날의 강의는 많은 울림을 남겼다. 그 형님과 그 친구는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인문학에 좀 더 걸쳐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와 그 동생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도전적이다. 하지만, 난 내 성향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나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다른 울림을 줄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 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내 생각은 여전하다. 굳이 나를 바꾸려 말고 나에게 맞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고 후회는 없다. 한 번 더 그런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이번엔 진짜 나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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