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 어른들을 보면 인사하기 바빴고 우스갯소리로 옆집 숟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 안다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도 엘리베이터 안에 둘만 타게 된다면 경계심 어린 눈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진 않는가? 누가 괜히 다가와 말이라도 걸면 몸이 움찔거리며 머릿속은 경계심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이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거는 이유가 뭐지?', '뭘 팔려는 건가?, 아님 사기라도 치려는 건가?' 이런 의문이 머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왜 이런 걸까? 우리는 언제부터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걸까? 이것은 믿음을 이용하려는 특정 이들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를 믿었다가 뒤통수 맞았던 하나의 경험이 내 인생에 큰 사건으로 남아서일 수도 있다. 남을 도와주려고 해도 그 사람이 오히려 '감 내놓아라'라고 할까 봐 돕지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일상에 들어오고 이런 불신은 더 커진 듯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스팸 문자와 한 번 잘못 누른 링크로 인한 피해까지 우리 주변엔 너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 시대는 마치 맹수의 위험을 감지해야 하던 원시시대와 비슷한 것 같다. 단지 그 맹수가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친구끼리, 직장 동료끼리도 그들의 선한 행동을 의심하기도 한다. '쟤가 이유 없이 이러진 않을 텐데, 나한테 왜 잘해주는 거지?' 잘해줘도 불안한 시대다. 내 행동 또한 조심스럽다. 뭔가 해주고 싶어도 상대가 내 의도를 의심할까 봐 선뜻 나서지 못한다.
드라마, 영화에서는 뒤통수치는 일들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사이좋은 두 사람을 보는데 어느새 내 머릿속엔 '혹시 저 사람이 배신하는 것은 아닐까?'이런 맘이 슬며시 고개를 들이민다. 불안해서 제대로 뭘 볼 수도 없다.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것은 나뿐인 것만 같다. 그런데 그 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나도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믿음이 사라진 사회, 그렇기에 모든 것이 불안하다. 심지어 사랑하는 이들도 자신이 언제 버려질지 몰라 불안해한다.
어떻게 하면 우린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는 선한 행동을 많이 알려야 하고 나 자신은 그냥 믿으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설령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더라도 일단 믿어야 한다. 그 사람이 나쁜 것이지 내가 바보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금전적인 부분은 조심해야 하지만 사람에 대한 부분은 믿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선한 믿음이 전파되어야 세상이 다시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우린 내 주위에 투명한 막을 치고 삭막한 세상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