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방송으로 울린 날
고통스러웠던 학교생활
고등학교 진학을 걱정하던 나에게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어 학교를 나가지 않는 일이 생겼다. 다행히 온라인 수업은 괴로울 만큼 버겁지는 않았어서 큰 사건 없이 6월에 학교를 등교하기 시작했다.
정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친구들이 나에게 많이 다가와주었다. 그럼에도 거부감이 있던 나였지만 그래도 정말 즐거웠다.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 잦은 결석으로 수업시간이라는 것은 숨 막히는 일이였다. 애들이 꽉 차있는 교실이 어색했다. 이런 탓인지 등교를 해도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숨어있는 일이 자주 있었다. 점점 당연해지고 익숙해져서 문제가 없다고 인식했던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방송이 울렸다.
"1학년 ○반 ○○○ 지금 바로 교무실로 오시길 바랍니다"
수치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그렇지만 내가 잘한 건 하나도 없었으니 교무실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걱정됐을 선생님께 너무 죄송하다. 막상 갔을 땐 별말 없으셨지만 어디 있었냐는 말에 답도 못했던 나. 뭐가 그렇게 고통이었을까.
방송이 울렸음에도 나는 또다시 숨었다. 화장실에도 숨고 탈의실에도 숨어 그저 멍 때리고 있었다. 그만큼 교실은 나에게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그저 숨 막히고 답답한 공간.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그렇게 또다시 방송이 울리고 말았다.
결국은 방송 울리는 것이 불편하다고 따로 말씀드려 그 후로 울리진 않았지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쪽팔림, 그리고 두려움. 나는 사는 게 너무 무서웠다. 세상이 나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나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학교생활이었기에 평범하게 교복을 입고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친구들과 수다도 떨며 급식도 먹는 그런 꿈을 매일 꿨다.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사회불안장애가 별 거 아니라고? 나는 평범함 삶을 살아갈 수 없는 몸이었는데 그 나이 때 얼마나 놀림을 받았고 얼마나 남들이 부러웠는지 모를 거다.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있는 힘 다 쓰고 입원을 수차례 하며 간신히 졸업한 나는 처량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