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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빔히 Jun 29. 2024

자퇴하고 싶었어요

나의 중학교 시절

초등학교 때는 그래도 증상이 양호한 편이었다. 고통의 시작은 중학교부터였다.

학기 초부터 학교 그림 그리기를 했었다. 초등학교때와 다르게 나에게 크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내 자신이 불편했다. 제출하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하다 생각했다. 점점 급식도 먹지 못하고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않으면서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그렇게 나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매번 진심으로 머리가 아프고 그때는 몰랐던 불안이란 감정이 나에게 몰아쳤다. 엄마는 나를 심리상담과 신경과에 데려갔다. 이것저것 검사를 하게 되었지만 결론은 정신과에 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심리상담에서 나의 말을 듣고 우신 선생님의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들었고 상담은 중단됐다. 그 후로 정신과 3년을 다니는 동안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다. 그것도 사회불안의 이유였을까.

중학교 1학년 당시 3학년이었던 친언니를 많이 찾아갔다. 울부짖었다. 힘들다고. 그러다 보니 언니한테까지 나의 상태를 물어보는 선생님들이 늘어나 언니에게 너무 미안했다. 잘 챙겨주셨던 담임선생님도 나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다. 이젠 나를 잊으셨겠지만 이 또한 나의 행패는 쪽팔림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내가 많이 신경 쓰이셨던 것 같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셨지만 사실 난 부담스러웠다. 위클래스도 가보게 됐지만 말을 못하는 나를 더 미워하고 애정이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사회불안장애라는 것을 제일 후회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부적응과 심한 우울, 불안으로 입원권유를 받게 되어 입원실까지 들어갔지만 거부를 하게 됐는데 이때 입원을 했다면 사회불안의 치료가 시작됐을 수 있었을지 그저 속상하다.

중학교 3학년때는 담임선생님의 무시가 심했다. 차라리 편했다. 말을 못 하는 나를 배려라고 해야할까, 발표를 뽑기식으로 하는 수업에 내 번호를 아예 없어버리고 고등학교 진학 상담까지 부르지 않은 선생님을 원망하진 않았다. 내 문제가 컸으니까. 그렇게 유급위기에 맞으며 나는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했다.

이런 내가 사회불안이었다고 친구들이랑 많이 멀어지긴 했지만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나도 잘 지내보려 노력했고 다가와준 친구들도, 이해해 준 친구들도 있었다. 제일 소문이 좋지 않았던 학년이었지만 나였어도 나 같은 부적응자를 좋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두려움을 느꼈어도 멀리하지 못한 이유다. 놓치기도 싫었다. 나는 사랑이 필요했으니까.

사람이 많은 곳이 무섭고 밥을 사람들 앞에서 먹는 게 두려웠던 나는 급식실에 거의 가지 못했고 집에서도 방에서만 밥을 먹으며 말을 하지 않는 나는 자퇴라는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았지만 자퇴가 정말 하고 싶었다. 지금은 말하고 싶다. 정말 힘들었다고.

나는 무섭지만 사랑이 필요해요.

그래도 내 버팀 또한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의미가 없진 않았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려 노력한다. 내 자신도 사랑하려고 이 긴 여정을 나아가고 있다. 나는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사랑이 필요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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