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얘들아 누가 답을 ○○○ 이라고 썼더라 ㅋㅋ "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나에게 잊혀질 수 없는 그 순간, 그 일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있던 일이다. 사회 시험 마지막 문제가 뭐라고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까? 애들과 선생님이 어이없어서 웃는 모습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닌 그저 내 지능이 낮아서 틀린 문제라서 더 서러웠다. 서술형 문제를 그 어린 초등학생이 틀릴 수도 있지 않나. 왜 하필 나에게 평생의 쪽팔림으로 남겨준 걸까.
나는 그 선생님을 원망했다. 선생님의 초대로 친구들과 선생님 집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아침으로 주셨던 반숙 계란을 헛구역질하고 물놀이를 하다 불안이 올라와 혼자 쉬었던 나는 그 순간이 추억이 아닌 괴로움으로 남았다. 그 후로 반숙을 먹지 않고 물놀이를 싫어하게 된 나, 친구들에겐 추억으로 남았겠지만 나는 후회한다. 그때 만약 그 정답이 나라고 말했다면 친구들은 그곳에서 아예 나를 무시했을까? 반응이 어땠을지 가끔은 상상을 해본다. 이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 순간을 슬퍼한다.
그때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점점 시선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처음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다. 화장실 가서 볼일을 보는데 소리가 신경쓰였다. 그 후로도 수학 문제를 풀고 풀이를 다 지운다거나, 밥 먹을 때 손이 떨린다거나. 심지어는 사람이 지나갈 때 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걸음걸이까지 신경 쓰인 나였다. 그렇게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서서히 인식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나는 점점 회피를 하게 되었고 교내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 담임 선생님이 여쭤보셨다. 학교 자랑 글짓기 행사에서 만큼은 글을 써보지 않겠냐고. 나는 하기 싫었지만 유일한 믿음직스러웠던 담임선생님이셨기에 용기를 냈지만 또 창피를 당했다. 친구들 앞에서 이렇게 길게 쓴 친구가 있다고 말씀을 하시며 애들은 감탄을 했다. 그렇게 나는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이 조작일 것이라 믿는다. 우리 반 친구의 글 솜씨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그냥 용기를 낸 것에 상을 준 것이다. 나쁜 의도가 아닌 것은 알지만 그 후 난 다시 아무것도 참여하지 않았다.
만약 놀림받던 일이 없었다면 내가 상 받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애들 앞에서 내 종이를 들며 보여준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후에 교실에 혼자 남아있던 나에게 '다음에도' 라는 말이 거슬렸다. 상처로 남은 상태에서 졸업을 하고 1년 후에 선생님을 친구들과 찾아뵈었지만 내 이름은 기억에도 없던 나는 공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예민해졌다. 그 사소한 일들이 뭐라고 아직도 벌벌 떠는 건지 누구보다 내가 밉다.
회피하는 습관이 이렇게 무서운 지 몰랐다. 그 후로도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증상은 더욱 악화가 됐지만 나는 이 병이 뭔지도 모르고 계속 고통 속에 빠졌다. 나에게 우울증이 먼저 찾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불안장애가 먼저였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불안이 나아질 수 있는 문제인지가 중요하다.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은 과연 달라질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