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빔히 Jun 22. 2024

시험지를 백지로 냈다

나는 바보야

이번주는 시험기간이었다. 시험은 보통 서술형 문제로 이루어졌다. 백지를 내기 전날, 두려움을 가지고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답을 써 내려갔다.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로 인해 생각이 잘 나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썼다. 내가 봐도 내용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만큼 노력이 부족했다 생각하고 마무리를 하려 했다.

"10줄 이상 안 쓰면 안 보내줍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분량을 중요시한다는 것도 이제 알아버린 1학년은 앞으로가 걱정됐다. 내 생각은 절대 쓰기 싫었고 책에 있는 내용만을 그대로 쓰고 싶지만 기억력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교실에 답답하게 있는 거 조차 힘든 나는 똑같은 말을 대충 반복해서 10줄을 채워 나갔다.

이 일은 생각보다 많이 거슬렸다. 채점하고 기억조차 남지 않을 내 답안들이 뭐길래 나를 이리 비참하게 만드나요. 내 자신이 화가 나고 미웠다. 집에 와서 우울감에 정신을 못 차렸다. 다른 시험을 보고서는 후련했는데 그 시험만큼은 점수와 상관없이 걱정으로 다가왔다.


그 시험을 치른 후 학교상담센터에 가서 상담을 진행했는데 심리검사를 진행하면 좋겠다는 물음에 진행하겠다고 했는데  하지 말았어야 됐다. 내 생각을 담아 체크를 해야 했으니 불안해지며 손이 떨려왔고 결국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말았다. 펜을 들고 나 자신을 피날 때까지 괴롭혔다. 그만큼 굉장히 무서웠다.


이게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할 문제인가?


그다음 날,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갔다. 종이를 받고 이름을 쓰는데 힘이 들어가지 않고 손은 마구 떨렸다. 놀라지도 않았다. 그냥 바로 펜을 내려두고 30분을 멍 때리며 앉아있었다. 그렇게 이름을 꾸역꾸역 쓰고 백지로 냈지만 나는 전날보다 힘들지 않았다.


망설였다. 시험이 하나 더 있는데 그냥 집에 가버릴까도 생각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한심하다는 생각에 어제 책을 보지도 못했는데 내가 무엇을 쓸 수 있나요. 또 놀림거리만 될 텐데 의미가 있는지 부정적인 생각만 맴돌았다. 결국 다시 한번 상담센터에 찾아가 얘기를 했다.


"백지로 냈어요"


나는 온몸을 떨었다. 친구들이 어렵지 않았다는 말에 수긍했으면서 백지로 낸 것이 쪽팔렸다. 괜찮냐는 선생님의 말에 고개만 떨구고 대답 조차 하지 못했다.


2시간 동안 상담센터에서 내 얘기를 들어주신 선생님 덕분에 도망가지 않았고 오후 시간 때 조금씩 쓰면서 마음을 편히 먹고 제출했다. 시험은 망쳤지만 내가 회피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라 생각한다.




현재는 아무 생각이 없다.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접 찾아가 솔직하게 얘기하고, 가족들에게도 얘기했지만 비난으로 돌아온 것이 아닌 점이 크다. 나도 노력했고 주변사람들 덕분이다.


앞으로도 불안한 순간들이 찾아와도 숨기기만 한다면 벙어리가 될 것이라는 더 큰 절망이 두려우니 나는 노력해야만 한다. 남들에게 쉬운 일이라도 누구한텐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만의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괜찮아, 그리고 수고했어. 종강 축하해.


이전 02화 선생님을 원망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