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시험기간이었다. 시험은 보통 서술형 문제로 이루어졌다. 백지를 내기 전날, 두려움을 가지고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답을 써 내려갔다.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로 인해 생각이 잘 나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썼다. 내가 봐도 내용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만큼 노력이 부족했다 생각하고 마무리를 하려 했다.
"10줄 이상 안 쓰면 안 보내줍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분량을 중요시한다는 것도 이제 알아버린 1학년은 앞으로가 걱정됐다. 내 생각은 절대 쓰기 싫었고 책에 있는 내용만을 그대로 쓰고 싶지만 기억력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교실에 답답하게 있는 거 조차 힘든 나는 똑같은 말을 대충 반복해서 10줄을 채워 나갔다.
이 일은 생각보다 많이 거슬렸다. 채점하고 기억조차 남지 않을 내 답안들이 뭐길래 나를 이리 비참하게 만드나요. 내 자신이 화가 나고 미웠다. 집에 와서 우울감에 정신을 못 차렸다.다른 시험을 보고서는 후련했는데 그 시험만큼은 점수와 상관없이 걱정으로 다가왔다.
그 시험을 치른 후 학교상담센터에 가서 상담을 진행했는데 심리검사를 진행하면 좋겠다는 물음에 진행하겠다고 했는데 하지 말았어야 됐다. 또 내 생각을 담아 체크를 해야 했으니 불안해지며 손이 떨려왔고 결국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말았다. 펜을 들고 나 자신을 피날 때까지 괴롭혔다. 그만큼 굉장히 무서웠다.
이게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할 문제인가?
그다음 날,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갔다. 종이를 받고 이름을 쓰는데 힘이 들어가지 않고 손은 마구 떨렸다. 놀라지도 않았다. 그냥 바로 펜을 내려두고 30분을 멍 때리며 앉아있었다. 그렇게 이름을 꾸역꾸역 쓰고 백지로 냈지만 나는 전날보다 힘들지 않았다.
망설였다. 시험이 하나 더 있는데 그냥 집에 가버릴까도 생각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한심하다는 생각에 어제 책을 보지도 못했는데 내가 무엇을 쓸 수 있나요. 또 놀림거리만 될 텐데 의미가 있는지 부정적인 생각만 맴돌았다. 결국 다시 한번 상담센터에 찾아가 얘기를 했다.
"백지로 냈어요"
나는 온몸을 떨었다. 친구들이 어렵지 않았다는 말에 수긍했으면서 백지로 낸 것이 쪽팔렸다. 괜찮냐는 선생님의 말에 고개만 떨구고 대답 조차 하지 못했다.
2시간 동안 상담센터에서 내 얘기를 들어주신 선생님 덕분에 도망가지 않았고 오후 시간 때 조금씩 쓰면서 마음을 편히 먹고 제출했다. 시험은 망쳤지만 내가 회피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라 생각한다.
현재는 아무 생각이 없다.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접 찾아가 솔직하게 얘기하고, 가족들에게도 얘기했지만 비난으로 돌아온 것이 아닌 점이 크다. 나도 노력했고 주변사람들 덕분이다.
앞으로도 불안한 순간들이 찾아와도 숨기기만 한다면 벙어리가 될 것이라는 더 큰 절망이 두려우니 나는 노력해야만 한다. 남들에게 쉬운 일이라도 누구한텐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만의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