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을 굴려봐
어린 시절 일 하러 나간 앨리스 킴을 기다리며 거의 집안에만 있었던 나와 성인여자는 별로 할 줄 아는 놀이가 없었다. 고무줄을 해본 유년의 기억이 없다. 리샤가 한때 만나기만 하면 하자고 했던 공기놀이가 우리가 했던 유일한 놀이였던 것 같다.
리샤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할 때 나도 옆에서 만연한 나이에 배우다가 다친 이후로는 시도자체를 하지 않았던 게 여기에 오니 후회 막급이다.
메콩강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쌩하고 달릴 뻔했는데… 아쉽다.
아편으로 한 때 유명세를 달리던 명성과는 다르게 강 주변으로 빛바랜 건물과 상가들, 강을 가로막고 있는 식당들로 인해 첫인상은 철 지난 관광지 이상의 느낌은 없었다.
그러나, 흙탕물 같기도 하고 진한 갈색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 강을 접한 세 개 국가의 경계, 강 건너 우후죽순 건설되고 있는 신축의 높은 빌딩 등으로 인한 어색함과 생경함이 계속 강 주변을 훑게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강물의 색을 통해 태국, 미얀마, 라오스를 육안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는 붐의 설명이 더해지니 확연히 다르게 보였다.
호텔을 찾아 메콩 강을 따라가다 허름한 왼쪽 골목길로 들어서니 오래되어 보이는 흉물스러운 폐차 한 두 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약 영화 한 편 찍어도 될 것 같은 느낌에 세심하지 못한 성격을 탓하면서 방콕을 갔었야 했나 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들었다.
안내하시는 분을 따라 식당을 통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구니를 건네준다. 신발을 담고 정원이 보이는 거실을 지나 이 층 계단을 오르면 방으로 연결된다.
마룻바닥에서 나는 삐그덕 거리는 소리, 문에 달린 경칩, 두 개의 문을 잘 맞춰서 열어야 하는 미닫이 문, 나무 창문, 소박한 커튼 등 무척이나 정갈한 구조이다. 태국 북부 스타일의 건축형태라고 하는데 예전 시골할머니 집을 순간순간 떠오르게도 한다.
정원 뒤쪽으로 들어가니 쪽문이 나온다. 문을 열면 어디가 나올까?
조심스럽게 나무로 된 잠금쇠를 풀고 나가니 다른 세상,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을 연상케 한다.
그 문을 열고 나가면 많은 부분이 사라 졌으나, 선이 아름답고 꽂꽂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Wat Athi Ton Kaew"로 들어가게 된다.
이른 아침엔 아무도 없는 거실 겸 서재에 나와 청명한 하늘 쳐다보기, 정원에서 일하시는 분이나 화분에 조심스럽게 물 주시는 분 쳐다보기, 쓸데없이 여기저기 사진 찍기를 하고
오후엔 리샤와 함께 그녀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나는 책을 읽거나 또 멍하니 저너머 보이는 머리 없는 부처님을 잠깐 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저녁 새 울음을 듣기도 하면서 한가로이 시간을 흘러 보내버렸다.
자전거를 빌려 강으로 나가 아주 잘 타는 리샤에게 애걸해 뒤를 잡게 하고 여러 차례 시도를 통해 페달을 굴려 강바람을 맞으며 짧지만 짜릿한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이번 봄엔 꼭 다시 배우고야 말리라.
늦은 오후가 되면 강 주변은 사진 찍는 관광객들 대신에 돗자리를 피고 음식을 먹는 가족들이나 연인들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무엇을 가지고들 오셨나 싶어 음식물을 뚫어지게 보다가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멋쩍은 웃음으로 때우고 시선을 돌렸다.
소담한 주택에 홀려 이 골목 저 골목을 돌며 몰래 사진을 찍기도 하고 기웃거려 보기도 했다. 낮은 담장너머로 앞마당에 줄을 걸어 빨래 걸린 모습을 보면서 이런 햇볕에 밖에서 안 말리면 자연에 대한 대역죄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긴 습도가 전혀 없는 맑고 청명한 날씨였다.
시간이 멈춰버린 이곳은 잠깐 온 여행객인 나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며, 세상시름을 잊고 온전히 머물 수 있게 하는 마법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다시 한번 와보고 싶은 긴 여운을 주는 도시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