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거 먹으면 좀 나아져~
앨리스 킴이 태국에 올 시간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우리의 긴장도도 더없이 올라가고 있다. 이미 로밍해 온 국제전화의 통화량은 한도를 초과해서 요금 부과 문자가 온 지 오래다.
같이 있을 땐 그렇게 지겹던 전화도 20여 일이 지나니 때에 전화가 안 오면 염려가 되기도 하고,
"오고 있냐?"라고 묻는 질문에
기계적으로 "내일 가요" 하긴 하나,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니다.
이 말은 거짓에 가깝다. 좀 살만하다, 괜찮다 또는 생각이 안 날 때가 더 많다가 진실에 가까울 것 같다.
우리의 어린 시절 앨리스 킴과 성인 여자는 꽤나 잘 지냈었다. 손에 간식거리라도 사 오는 건 내가 아닌 성인 여자였고, 서울에서 한 달에 한번 집에 내려가보면 앨리스 킴의 막내로 성인 여자는 공부도 하지 않고 해 주는 데로 먹고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현재 둘은 항상 전투태세가 잘 갖춰져 기회만 생기면 일촉즉발한다. 성인 여자는 내가 퇴사하기 전 앨리스 킴의 저녁과 소소한 일들을 다 챙겼지만, 절대 같이 잠을 자진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지금은 이번 계약이 성사되면서 성인 여자는 저녁에 같이 자는 것은 물론이고 앨리스 킴의 보호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계약의 당사자이면서 유일한 남자는 무던함과 높은 자존감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니 나름 승자가 된 것 같다.
“말이 없다. 좋다 싫다가 없다. 장모를 봐도 아는 척도 잘 안 하다. 그렇게 잘해줘도 잔정이 없다” 앨리스 킴의 남자에 대한 평가였다.
앨리스 킴이 아프고 난 이후엔 가끔 리샤랑 셋이 저녁을 먹기도 하고, 내가 도저히 못 참고 집을 뛰쳐나가버린 날은 우리 집에 와서 성인 여자대신 앨리스 킴의 저녁당번이 돼주며, 아침을 해 먹이고 주간보호센터를 보낸다.
좀 살았다고 알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은 아닌 듯싶다.
태국까지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자가 성인여자를 도와 앨리스 킴과 동행하는 것이 이번 계약 성공의 가장 큰 조건이었으나,
내일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간사라고 갑자기 남자의 어머님이 수술을 하게 되어 못 오게 되었다.
제 앞가림은커녕 “가만히 여기 계세요”가 안 되는 앨리스 킴을 데리고 성인 여자는 혼자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치앙마이에 무사히 올 수 있을까?
나는 한 달이나 앨리스 킴을 안 봤으니 기꺼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고,
리샤를 포함한 네 명의 여자는 그토록 원했던 따뜻한 나라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초콜릿이라도 하나 먹으면 좀 살만 했다. 지금은 그런 걸 좀 먹어줘야 할 때인 듯싶다.
출발 일주일을 앞두고 성인 여자로부터 걱정스러운 카톡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앨리스 킴은 감기에 걸려 주간보호센터에도 못 나갔고 허리가 다시 심하게 아프기 시작해 집안에서 조차 걷지도 못한다고 한다.
눈에는 눈다래끼까지 나서 퉁퉁부어있는데 돈 한 푼 없는 통장만 찾고 속 터져 죽겠다 한다. 통장 찾기, 목걸이 찾기, 팔찌 찾기, 가방 찾기, 리모컨 찾기 등 그녀의 끝없는 찾기 놀이.
이제야 깨달음이, 이건 시작부터 잘못된 우리의 욕심은 아니었을까?
(표지) 아이스크림가게, 반담박물관, 치앙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