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주 Feb 08. 2024

오고있냐? 내일 가요.

달달한 거 먹으면 좀 나아져~

     

알 수 없는 마음


앨리스 킴이 태국에 올 시간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우리의 긴장도도 더없이 올라가고 있다.  이미 로밍해 온 국제전화의 통화량은 한도를 초과해서 요금 부과 문자가 온 지 오래다.   

  

같이 있을 땐 그렇게 지겹던 전화도 20여 일이 지나니 때에 전화가 안 오면 염려가 되기도 하고,


"오고 있냐?"라고 묻는 질문에

기계적으로 "내일 가요" 하긴 하나,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니다.


이 말은 거짓에 가깝다. 좀 살만하다, 괜찮다 또는 생각이 안 날 때가 더 많다가 진실에 가까울 것 같다.     


살아도 살아도 알 수 없는 인생

    

우리의 어린 시절 앨리스 킴과 성인 여자는 꽤나 잘 지냈었다. 손에 간식거리라도 사 오는 건 내가 아닌 성인 여자였고, 서울에서 한 달에 한번 집에 내려가보면 앨리스 킴의 막내로 성인 여자는 공부도 하지 않고 해 주는 데로 먹고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현재 둘은 항상 전투태세가 잘 갖춰져 기회만 생기면 일촉즉발한다. 성인 여자는 내가 퇴사하기 전 앨리스 킴의 저녁과 소소한 일들을 다 챙겼지만, 절대 같이 잠을 자진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지금은 이번 계약​이 성사되면서 성인 여자는 저녁에 같이 자는 것은 물론이고 앨리스 킴의 보호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계약의 당사자이면서 유일한 남자는 무던함과 높은 자존감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니 나름 승자가 된 것 같다.


“말이 없다. 좋다 싫다가 없다. 장모를 봐도 아는 척도 잘 안 하다. 그렇게 잘해줘도 잔정이 없다” 앨리스 킴의 남자에 대한 평가였다.  

   

앨리스 킴이 아프고 난 이후엔 가끔 리샤랑 셋이 저녁을 먹기도 하고,  내가 도저히 못 참고 집을 뛰쳐나가버린 날은 우리 집에 와서 성인 여자대신 앨리스 킴의 저녁당번이 돼주며, 아침을 해 먹이고 주간보호센터를 보낸다.  

   

좀 살았다고 알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은 아닌 듯싶다.


태국까지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자가 성인여자를 도와 앨리스 킴과 동행하는 것이 이번 계약 성공의 가장 큰 조건이었으나,

내일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간사라고 갑자기 남자의 어머님이 수술을 하게 되어 못 오게 되었다.   

       

제 앞가림은커녕 “가만히 여기 계세요”가 안 되는 앨리스 킴을 데리고 성인 여자는 혼자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치앙마이에 무사히 올 수 있을까?    

 

나는 한 달이나 앨리스 킴을 안 봤으니 기꺼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고,

리샤를 포함한 네 명의 여자는 그토록 원했던 따뜻한 나라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달달한 거 먹고 싶다.”     

브라우니와 크루와상(추이풍)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초콜릿이라도 하나 먹으면 좀 살만 했다. 지금은 그런 걸 좀 먹어줘야 할 때인 듯싶다.  

출발 일주일을 앞두고 성인 여자로부터 걱정스러운 카톡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앨리스 킴은 감기에 걸려 주간보호센터에도 못 나갔고 허리가 다시 심하게 아프기 시작해 집안에서 조차 걷지도 못한다고 한다.


눈에는 눈다래끼까지 나서 퉁퉁부어있는데 돈 한 푼 없는 통장만 찾고 속 터져 죽겠다 한다. 통장 찾기, 목걸이 찾기, 팔찌 찾기, 가방 찾기, 리모컨 찾기 등 그녀의 끝없는 찾기 놀이.


이제야 깨달음이, 이건 시작부터 잘못된 우리의 욕심은 아니었을까?


꿈에서는 맘대로, 리샤 그림


(표지) 아이스크림가게, 반담박물관, 치앙라이






이전 09화 뜻밖의 발견, 치앙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