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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 Feb 12. 2024

치앙마이에서 닭을 영면시키다.

그녀와 나의 운명


앨리스 킴, 치앙마이 도착     

성인 여자에 이끌려 어렵게 그녀는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20일 만에 나를 만났지만,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넌, 언제 왔냐?”로 시작한다.  

    

“I could tell you my adventures—beginning from this morning,” said Alice a little timidly;  but it’s no use going back to yesterday, because I was a different person then.


오늘 아침부터의 제 모험담을 들려 드릴게요. 앨리스는 소심하게 말했습니다. 어제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무 소용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땐 다른 사람이었거든요.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새벽 기침

새벽 4시가 되자 기침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링거까지 맞고 왔지만, 힘에 부친 비행기 탑승과 낫지 않은 감기로 여행이 문제가 아니라 십여 일을 여기서 견딜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되었다.  


무언가 기력을 회복시켜야 할 것 같은데 하다가 “삼계탕”이 떠올랐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 검색을 해보니 숙소에서 닭 사다가 삼계탕을 요리해서 드신 “위대한 한국인”들이 계셨다.


위대한 한국인, 그리고 우리는 앨리스 킴의 딸들이니 당연히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랩을 불러 마트부터 갔다.  


터키(Turkey)는 사면받고,

닭은 영면을 당하다.

미국 대통령들은 추수감사절에 희생당하는 수많은 터키들을 대신해 성대하게 몇 마리의 터키를 사면한다고가끔 뉴스를 통해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나야 아무것도 아니고 물론 원하지도 않았지만,

얼결에 이곳 치앙마이에서 닭 한 마리를 영면시키고야 말았다.


닭 영면기


1. 림핑 슈퍼마켓에서 생닭 한 마리를 샀다. 닭다리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처럼 온전한 닭 한 마리를 보고 성인여자와 손뼉 치며  좋아했을 때, 그녀(닭 님)가 우리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다.


2. 물로 가볍게 목욕을 시키고, 좀 더 안을 씻기려고 한 순간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3. 그녀는 온전했다. 이미 저 세상에 있으나, 몸 안에 숨기고 있던 그 맑은 얼굴, 영롱한 눈빛을 예고도 없이 드러냈다.


4. 나의 운명, 그리고 너의 운명, 그래 너를 사할 수밖에.


5. 용기 내어 그녀의 눈을 가리고, “한 번에 해주마”


6.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가 온전하다면 유명한 “발”도 숨기고 있음이 분명할 것 같았다.


7. 아 이건 힘들 것 같아 주저하는 순간, “뭐 하냐”


8. 앨리스 킴 왈, “살아있는 닭도 잡아서 했는데, 내가 해주마” 콜록콜록.


9. “Yes, Please”


10. 이번에도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아.

      몸 안 깊숙이에도 온전함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11. 내장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것들을 꺼내고 나니, 성인여자가 부족한 생수를 사가지고 들어온다.

참 너는 운도 좋구나…


12. 뜨거운 물에 그녀를 다시 한번 세례 시키고, 가져온 삼계탕 재료를 넣고 팍팍 끊였다.     


숭고한 그녀(닭)의 희생     

그녀의 영롱한 눈빛과 말간 얼굴에 대한 기억은 저 깊숙한 곳에 가두었다. 그녀의 희생으로 앨리스 킴은 기침도 줄고, 하루 한 곳 정도는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기력을 차렸다.


참고하세요.

닭을 “그녀”로 호칭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나, 그런 이미지가 제게 남아 있어서이니 너그럽게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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