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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 Feb 19. 2024

시큼하고 달콤하면서 매운 맛

언니, “Angry”


세 여자와 요리

누군가 앨리스 킴이 아프지 않았을 때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어보면 “요리 잘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지금쯤이면 거실 한 곳에서 말리고 있을 찹쌀 풀, 간장, 참기름이 섞인 김부각의 고소한 냄새와 식혜, 수정과 달이는 달콤한 냄새가 집안을 떠나지 않았을 텐데 이제 그런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앨리스 킴 혼자서 주방에 머물렀던 그 긴 세월 동안 기웃거려 본 적도 없고 심부름 한번 제대로 한적 없으나, 먹어본 입맛으로 성인여자 동생과 나는 집에서 매일 요리를 하고 있다.     


공유하는 일과와 같이하고 싶은 일상

태국에 오기 전부터 둘이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오랜만에 해보고 싶었다. 앨리스 킴이 아픈 이후로 우리는 앨리스 킴의 공동육아를 위해 매일 일과를 공유하기는 했지만, 정작 우리끼리의 일상은 없었다.


주말 오후 한때, 느긋하게 차 한잔 마시는 여유도 마음 편히 못해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침 일찍, 집순이 리샤에게 앨리스 킴을 부탁하고 부랴부랴 호텔을 나섰다. 둘만 놔두고 나오자니 불안한 마음에 괜히 쿠킹 클래스를 신청했나 싶었지만,

젊은 외국인 친구들과 잘 안 되는 영어를 쓰면서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타자 그런 기분은 사라지고, 사뭇 설레기 시작했다.        


치앙마이 쿠킹 클래스

우리가 참여한 “ZABB-E-LEE, Thai Cooking Class”(표지 참조)는 오전이나 오후 중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으며, 셰프와 함께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태국 요리를 직접 해본 후에 참가자들이 같이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1. 장 보기, Pratu Chiangmai Market

2. 네 가지 (애피타이저, 볶음요리, 수프, 커리) 종류별로 하고 싶은 요리 정하기

3. 숲 속에 있는 요리 학교로 이동

4. 셰프에게 요리 배우기

5. 먹기, 쉬기, 요리하기, 먹기, 쉬기 반복     



시장의 맛

쁘라뚜 시장에는 더운 나라답게 우리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야채, 허브, 과일들이 다양하게 있었으며 육류, 어패류, 각종 소스, 가지각색의 양초, 진열대 한 공간을 차지한 머리빗, 꽃 등 품목도 다양했다.

요리할 재료들을 담은 바구니

동그랗고 작은 가지부터 길쭉한 큰 가지, 레몬 글라스, 생강처럼 보이나 전혀 다른 갈랑갈, 동그랗게 생긴 카피르 라임 잎들을 실제로 보니 신기해서 허락받은 만큼 만져보기도 하고 킁킁 향을 맡기도 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처럼 먹을 것이 지천이다 보니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도 나고 배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났다.

쫀득쫀득하고 달콤한 스티키라이스

색깔이 알록달록한 스티키라이스와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파는 할아버지 가게 앞에 서서 비닐봉지에 싸인 걸 유심히 보다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할아버지는 사라고 손을 휘저으시나 대화가 되지는 않는다.


상해에서 딸과 함께 참석한 중국인 엄마가 “이거 바나나 튀긴 거예요. 맥주랑 먹으면 맛있어요” 라며 도와준다. 한 봉지 사서 같이 나눠먹고 시장을 더 구경하다가 다시 차에 올라타서 요리학교로 출발했다.     


언니, “Angry”

카리스마 있는 우리의 셰프, “레인”은 영어도 잘하며 가끔 “빨리, 빨리”라고 한국어를 하기도 했으며, 요리하는 내내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레인은 “Angry”라는 단어도 이 팀, 저 팀을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자주 외쳤다. 뜨거운 불에서 팟타이를 타지 않게 빨리하라고 하거나, 돌절구에서 커리 재료를 다질 때 멈추지 말고 힘껏 하라고 하면서 “Angry”를 외치며 우리를 채근했고, 그럼 우린 모두 다 웃었다.


“돌 절구질, 이건 좀 힘들다, 사실 나이 많다.” 했더니, 그때부터는 나를 부를 때면 무조건 “언니”이다.


“언니, angry, more angry”를 그날 많이 들어서인지 지금도 귀에 쟁쟁 울리는 것 같다.     


빨간바지의 레인과 요리 테이블

시큼하고 달콤한, 그러면서 매운맛

우리나라 음식에서 시큼한 맛이 나는 요리가 무엇이 있을까? 언뜻 생각나는 음식들은 시큼보다는 새콤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새콤달콤하면서 매운맛을 더하면 오이 무침, 미나리무침… 그런 맛이 나는 뜨근한 국물 요리는 아예 생각이 안 난다.


시큼하고 달콤하면서 맵고 뜨끈하게 먹는  “똠얌꿍”, 여기에 온 이후로 더욱 그 맛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똠얌꿍을 배우면서 매운맛의 정도를 선택하라고 해서 중간 정도 맵기로 했다가 무언가 맛이 부족하다고 했더니, 레인이 작고 빨간 태국 고추를 두 개 더 준다.


그래 바로 이 맛, “시큼하고 달콤한, 그러면서 오래까지 여운을 주는 매운맛”.


맛있게 먹어주면 기쁘지!

팟타이, 똠얌꿍, 캐쉬너트 치킨

수업이 끝나고 몇 가지 요리를 가지고 왔더니 리샤가 할머니, 앨리스 킴과 오늘도 역시나 “무한도전”을 시청하고 있다.


아직 온기가 있는 똠얌꿍, 파넹커리, 캐슈너트 치킨을 둘이서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있으려니 흐뭇하다. 역시 요리하면서 가장 큰 기쁨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줄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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