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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 Feb 22. 2024

앨리스 킴의 어드벤처

이해하기 힘든 그녀의 능력


잠에서 깨어날 수 없는 그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마지막 모험에서 자신의 목을 당장 치라는 여왕에게 강하게 반발하다가,

원래의 몸 크기로 돌아오고 여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카드로 변해버리면서 긴 잠에서 깨어난다.      


동화의 앨리스처럼 앨리스 킴 “일어나”하면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재까지는 그 어떤 약도, 치료법도 치매를 다스릴 수 없어 보인다.     


At this the whole pack rose up into the air, and came flying down upon her; (중략) “Wake up, alice dear!” said her sister; “why, what a long sleep you’ve had!”          


이 말을 듣자 모든 카드들이 갑자기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앨리스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일어나, 앨리스!" 언니가 말했다. "왜 이렇게 길게 잠을 자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그녀에겐 시도조차 어려운 어드벤처     

앨리스 킴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엔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도 혼자서 나를 보러 미국에 올 정도로 모험심이 높았다. 그런 그녀를 여기까지 와서 호텔에만 있게 하는 것은 그녀의 뛰어난 정신에 위배되는 것 같았다.     


도이수텝이라는 사찰이 올라가는 길이 험하나, 야간에 올라가면 라이트와 함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여행사를 통해 야간투어를 신청했다.     


앨리스 킴을 챙기며 부산하게 움직였지만, 어쩌다 보니 관광버스 타는 시간에 우린 이미 늦었고 다른 분들의 따가운 시선을 좌우로 받아야 했다.


같이 앉을 수 있는 좌석도 없어서 우리 네 명의 여자는 각자 따로따로 앉아야 했으며, 치앙마이 퇴근시간에 걸려 첫 번째 목적지인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사찰에 도착하기 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버스에서 겨우 내린 앨리스 킴은 콜록콜록하면서 화장실부터 가자고 한다.


앞서가는 일행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앨리스 킴을 데리고 그들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그 좁은 버스에 다시 그녀를 태울 일이 막막해져 왔다.


어드벤처인지 모험인지 갑자기 꼭 봐야 하는 여행지 이런 게 무엇이 중요할까 싶어졌다. 성인여자와 리샤의 황망한 표정을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를 불렀다.     


앨리스 킴(의아한 표정), “성인여자와 리샤는 어디 있냐?”

나(지친 표정), “엄마가 너무 힘들어해서 호텔로 우린 먼저 돌아가“     

앨리스 킴(미소 지으며), ”좋다 “     

나(말없이 속으로) 그럼 좋은 것 해야지,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는데...     


이해하기 힘든 그녀의 능력

그들만의 리그, 리샤

앨리스 킴과 리샤는 어쩌다이긴 하나 같이 바둑을 둔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 지인들한테 하면 ”치매가 심하지 않네“하는 반응에 ”글쎄“ 씁쓸해진다.


오묘한 인간의 뇌 구조, 신의 영역이지 않을까?


나와 성인여자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오목 말고는 바둑판을 열어 본 적도 전혀 없으나, 리샤는 아주 어렸을 때 앨리스 킴으로부터 바둑을 배우고 같이 두기 시작했다.


호텔 라운지에 바둑판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성인여자가 발견하고 나서는 우리가 장을 보러 가거나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시간에 둘은 거기서 바둑을 두기도 했다.


이제는 할머니와 손녀로서 같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지만, 같이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감사한 마음을 넘어서 감동스럽기까지 한다.      


참 이쁘다, 이 꽃     

무심코 식탁에서 그녀를 바라보면 어떤 날은 감정이 다 사라진 듯 무표정한 얼굴이 잠깐씩 스친다. 요즘은 그런 표정을 점점 더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겨울인데도 여기는 어디에서나 흔하게 꽃을 볼 수 있다. 호텔 안에 있는 조화도 진짜 꽃인 줄 알았다며 쳐다보는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있다.  


사찰이나 길거리 어디에서든 꽃을 보면 잠깐 멈추거나 손으로 살짝 꽃잎을 만져보려고 하기도 하고, 향기를 맡으려고도 한다.


꽃이 그녀에게 표정을 만들어 준다.

 

다시 찾아 간 도이수텝

앨리스 킴의 유전자를 타고난 것이 때로는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녀의 끝없는 노력의 유전자가 내게도 있어서 한 번 마음먹은 건 웬만해서 포기가 안 되는 것 같다.


이번에는 한 달 넘게 태국에 살고 있는 경험을 최대한 살려 조금 더 편하게 다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현지 길 안내나 앨리스 킴의 기침 멈추는 약도 가르쳐주셨던 친절한 그랩 기사분들을 통해 그분들이 관광을 직접 해주신다는 것도 알게 되어,

벤(표지 참조)을 가지고 계신 현지 그랩 기사님과 우리의 치앙마이 마지막 여행을 다녔다.


”이 큰 차, 오늘 하룻 동안은 우리 차야“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모두가 편안하게 다시 도이수텝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앨리스 킴과 우리도 여느 관광객들처럼 도이수텝을 비롯한 왓 파랏, 치앙마이 대학 등을 돌며 사진도 찍고 많이 웃는 하루를 보냈다.  

도이수텝에서 미어캣, 파랑새, 호랑이, 뺙뺙이와 함께, 리샤




참고하세요

파업한 리샤가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니며, 사진에 블러처리를 도와달랬더니 저렇게 보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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