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주 Apr 11. 2024

우린 혼자 산다.

“YES”라고 대답하면 생기는 일들


“YES”라고 대답하면 생기는 일들

미니어처 박물관을 가기로 한 날은 지겹게 내리던 눈이 멈추고 기온이 올라가서인지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수업에 참석해서 한번 본 영어선생님과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도로 앞을 서성이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는 정반대로 활짝 웃으면 "Good Morning"하는 메리를 만나 박물관 위치를 물어보니 아뿔싸 블루밍턴 도심 안에 있지 않고 꽤 멀리 가야 한다고 한다.


블루밍턴은 30여분이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미국의 전형적인 작은 대학 도시이다. 인구수도 8만 명으로 나와 있으나, 대학생(대학원생 포함) 수가 4만에 가까워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방학 기간 여부에 따라 인구수가 다르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미니어처 박물관이 있는 도시  “카멜”,

블루밍턴에서 한 시간 반정도 떨어져 있다는 것 이외에는 지금도 그 도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YES”라고 답하고 났더니, 하루 종일 원어민과 영어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가 아니라... 출발하기도 전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시 시작된 Q&A(Question and Answer)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질문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메리는 MBTI로 하면 I보다는 E에 가까운 관계지향형에 가까운 사람인 듯 싶다.


잊기 힘든 메리의 질문 중 하나     

(메리) “000 이를 아느냐?”

(나) (한국인이나 그분의 영어식 이름 표현에 못 알아들음) “.....”

(메리) “000 책을 쓴 사람이다.”

(나) (알듯 말 듯) “..…...”

(메리) “신문 기자이다.”

(나)(신문 기자?? 신문 기자가 우리나라에 한두 명인가... 이럴 때는) “I don’t know”

(메리)(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    


메리가 말한 그 기자분은 알고 보니 꽤 유명한 분이셨고, 우리나라에 돌아온 후에 미국인인 메리의 소개로 만나 뵙기까지 했다. 헉.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 등 시시콜콜한 것을 묻더니 갑자기 한국의 정치 상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이 들어온다. 우리말로도 답하기 힘든 험난한 구간을 지나고 나니

결국 다시 나, 더 구체적으로 궁금한가 본데…

     

그렇다면 이번엔 나도 참을 수 없지 나도 궁금한 거는 다 물으리라 했으나, 문제는 ”영어“ 이게 언제나 앞길을 막는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미국인 소원 들어주기

미니어처 박물관의 정식 이름은 Museum of Miniature Houses and Other Collections(111 East Main Street Carmel, IN 46032)이었다.   

  

메리는 예술을 사랑하나, 미술관에 가는 것은 그렇게 까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의 변에 의하면 미술관 작품은 죽어 있는 거처럼 느껴진다 하고  장난감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더 실생활과 관련된 예술 작품들 또는 진심 장난감을 좋아한다.


여기 오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하니, 외국인인 내가 미국인 소원 하나 해결해 준 셈이다.


박물관에는 없는 것 없이 다 전시되어 있었고, 모든 것이 대부분 작았다.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인형의 집(dollhouse) 앞에서는 우리 둘 다 눈을 떼지 못했다.

Museum of Miniature Houses and Other Collections


어릴 적 바비인형 하나 갖는 것도 사치스러웠던 내게 바비가 사는 집이라니, 그것은 오롯이 부잣집 딸이나 가질 수 있는 호사라고 생각했었다.


메리에게도 그런 꿈이 있었는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박물관은 대부분 작은 물건들을 전시했지만, 포스터라든지 과거 미국에서 유행했던 것들도 있었던 것 같다. 벌써 몇 해가 지나서 기억이 아련하지만, 다시 앨범을 열어보니 이런 재미있는 것도 있었다.


[내 딸과 데이트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십계명]

Rules for Dating my daughter (미니어처 박물관, 카멜)

1. 직업을 구해라

2.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라

3. 나는 어디에나 있으니 방심하지 마라

4. 내 딸을 힘들게 하면 반드시 너를 응징할 것이다

5. 집에 30분 전에는 와라

6. 변호사를 구해라

7. 나에게 거짓말하면 죽는다

8. 그녀는 네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나의 영원한 공주임을 명심해라  

9. 네가 감옥에 가도 개의치 않겠다

10. 네가 내 딸에게 무엇을 하든 나도 그대로 하겠다.   


오래전 어딘 가에 걸렸을 포스터인 듯싶으나, 딸바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이다. 딸이 있으신 분들은 지금 사용해도 좋을 것임에 틀림없다!!!


박물관을 나와 "카멜"을 걷다 보니 다양한 조형물과 예술 작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상징하는 유명한 ”수병과 간호사(1945년 8월 14일, 뉴욕)"(표지 참조)가 보여 그 앞에서도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블루밍턴으로 돌아왔다.

- 참고, 사진을 확대하면 표지판에  “Carmel” 도시명이 보인다.


우린 혼자 산다.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찾아낸 우리의 공통점은 ”혼자 산다“였다.   


나는 꽤 오랫동안 ”노처녀“라는 딱지를 갖고 있었으나, 이것도 유효기간이 있는지 지금은 이 단어 자체가 생경하긴 하다.  


메리는 나를 만나기 한해 전에 남편분이 돌아가셔서 혼자 살고 있으며, 초등학교 교사를 오랫동안 하다가 은퇴하였고 지금은 도서관에서 외국인에게 자원봉사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그녀가 태어난 곳은 인디애나가 아니며 여기에서 자동차로는 열 시간 이상 떨어진 뉴욕주 태생이었다.


뉴욕은 알고 있지만, 뉴욕주는 어디인지 모른다고 했더니 뉴욕은 뉴욕주에 포함되어 있으며 자기 고향은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란다.


앞으로 뉴욕(NYC)과 뉴욕주(Newyork State) 정도는 구분하자.


오늘의 마무리는 두통약

운전하는 차 안에 단둘이 있었으나, 오늘 하루는 마치 미국 대학원 시절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필수 과목, ”프레젠테이션“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 시간에는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더 죽을 것 같은 것은 내가 발표할 때 질문을 받아서 답하고 다른 학생 발표에 질문하지 않으면 점수를 못 받는 형식이어서 식은땀 나는 수업이었다.


그 수업 때처럼 뇌를 풀가동 해서인지, 마지막에는 모든 집중력이 고갈되어 자동차 멀미처럼 속이 메슥거리기까지 했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아파트 앞에서 억지웃음으로 ”Good Bye“를 하고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두통약을 찾아서 먹고 침대에 그대로 뻗어 버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