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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an 26. 2024

에필로그

하지 못한 말

잘 지내고 있어? 잘 지내겠다던 너의 약속이 지켜졌을지 모르겠어. 나는 그럭저럭 잘 지내. 내가 너를 몰랐을 때 나와 다른 방향으로 걷던 너를 알고 난 후 처음에는 같은 방향으로 너와 같이 걷게 될 기대와 설렘으로 내가 잠도 못 잤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이 기대와 설렘이 너와 나의 이기적인 욕심으로만 가득 차서 우리 서로에게 짜증만 내고 있었더라. 익숙함에 속아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잊어버리지 말자는 흔한 문장 있잖아. 왜 그 흔한 문장도 실오라기 같은 사랑이 남아있을 때조차 우리 곁에 존재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어. 한 뼘 정도의 사랑이 남아있었을 땐 그래도 너나 나나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정신을 좀 차릴 만도 했는데, 그렇지. 그냥 왜 이런 것도 너는 왜 이해를 못 하고 있는지 각자 본인 생각만 하면서 화만 내기 급급했던 것 같아.


나는 다툴 때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나다가, 어떻게든 이성을 붙잡고 네 이야기를 듣고 나면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졌어. 그냥 내가 다 잘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내가 너에게 그렇게 무거운 책임을 지게 했는지, 내가 너에게 그렇게 큰 부담감을 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네 이야기만 듣고 나면 나는 자꾸 나에게서 잘못을 찾게 되더라. 그리고 끝은 늘 비슷한 사과였던 것 같아. 나만 생각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거의 전부였어. 그리고 너와 불같은 싸움을 끝내고 나서도 정이라는 게 참 무서웠던 건지 싸울 때는 네가 너무 미웠는데,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너를 사랑하고 있더라.


너를 너무 많이 사랑했던 그때의 내 모습은 그랬던 것 같아. 내가 너를 이해했던 것만큼 너는 나를 이해했니? 나는 합리화했거든. 네가 나를 사랑하는 총량이 나의 총량과 같은 것이라고. 합리화하지 않으면 내가 너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애써 모른 척했던 것 같아. 내가 너를 너무 많이 사랑했거든. 그리고 너를 놓고 나서는 막말로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너를 버렸으면 좋았겠다는 참 웃긴 말들을 입에 담는다. 그렇게도 네가 없으면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너를 사랑했는데 왜 꼭 헤어지면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야만 한다는 공식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지 모르겠어.


진짜 사랑 많이 했는데, 나는 간사한 인간이라서 너랑 했던 사랑처럼 똑같은 사랑은 하고 싶지 않고, 싸우다가 주고받았던 똑같은 상처를 반복해서 주고받고 싶지 않은 인간이 됐어. 그런데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받은 상처는 어떻게 지울 수 있어? 나는 너랑 헤어지고 시간이 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내 지인들을 뒤로하고 혼자서 너를 열심히 흘려보냈어.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울었고 술이 없으면 잠을 전혀 잘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마음이 아프고 지옥 같았는데 강제로라도 살아야 하는 현실이 야속했고 무너지는 날들을 보냈어. 그 어떤 사람의 위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겉으로는 웃으면서 친구들의 위로에 고맙다고 말하고 있는 내 마음은 그때에도 초 단위로 찢어졌어. 그때 처음으로 난 아무 감정도 못 느끼는 감정 불구가 되고 싶더라.


아, 나는 지금에야 겨우 웃으면서 내 상처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됐어. 그래도 나는 덕분에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죽어도 다시는 사랑을 안 믿겠다던 내가 지금 또 사랑을 믿게 됐거든. 믿고 있거든. 죽을 것 같던 너와의 이별의 고통을 딛고 나는 행복을 되찾았다.


날 그리워하지도, 생각하지도 않겠지만 잘 지내. 그래도 네가 나에게 줬던 것처럼 너의 새로운 사랑에게 같은 상처는 주지 않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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