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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퇴근러 Oct 11. 2024

[직장 상사 죽이기] 4. 바꿀 수 있는 것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상황 중 하나는 본인이 바꿀 수 없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할 때 발생한다. 극단적인 예시로 마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맞서 영생을 얻고자 노력하다가 실패하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다. (어떤 특이점이 와서 영원히 살지도 모르겠으나, 최소한 당분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우리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직장 생활에서 우리가 죽일 수 없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죽일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계획을 세우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롭다. 


우리가 직장에서 죽일 수 있는 (바꿀 수 있는) 대표적인 대상은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는 어떤 측면에서는 죽일 수도 반대로 살릴 수도 있다. 여기서의 관계는 자신이 갈등을 겪는 직장 상사와의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경험하는 모든 크고 작은 관계들이 포함된다. 심지어 직장 외에서의 인간관계까지 포함될 수도 있다. 내게 고통을 주는 사람은 한 명일지라도,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을 죽여야 될 수도 또는 살려내야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인간관계는 그래도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목표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은 ‘일의 범위’이다. 이 부분은 일의 유형에 따라 편차가 다소 있을 수 있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업무일수록 개인이 조정 가능한 일의 범위는 제한적이고, 반대로 복잡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업무는 조정 가능한 일의 범위가 꽤나 유동적이다. 물론 누군가는 ‘일의 범위는 조직이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직장은 - 직장 상사를 통해서 - 개인이 해야 할 일을 지시한다. 직장은 개인이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수 있는 편한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개인이 하는 일을 완벽하게 100%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외에는 누구도 없다. 설사 직장 상사가 강박증이 심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매일 온종일 부하 직원 옆에 앉아 있지 않는 한 발생하는 모든 일을 알 수는 없다. 여기서 생겨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하면 일의 범위도 분명 어느 정도 우리가 사정범위 안에 놓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표적인 타깃은 ‘직장의 의미’ 또는 ‘일의 의미’이다. 누군가가 죽이고 싶도록 싫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직장에서 경험한 수많은 사건들과 거기서 느낀 감정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내린 결론적인 생각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를 무례하게 대하는 상사를 보면서 긍정적인 감정이 든다면 그건 다른 의미로 이상한 상태다. 하지만 그런 미시적인 감정들이 아닌 보다 거시적인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우린 모두 언젠가 죽을 걸 알면서도,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하루하루는 열심히 산다. 각자 나름의 삶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직장에 싫은 상사가 있는 걸 알면서도, 그곳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는다면 의외로 잘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자원은 한정적이다. 사실 직장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 자주 든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할 수 있는 방법들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럼 이제부터는 우리의 죽일 대상을 어떻게 처리할지 앞서 언급한 내용들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집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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