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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퇴근러 Oct 04. 2024

[직장 상사 죽이기] 3. 바꿀 수 없는 것들

무언가를 죽이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대상을 죽일 수 있는지 여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가상의 인물이나 무생물을 죽일 수는 없다. 직장에서의 갈등 해결을 위해서도 제거할 수 있는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인물을 지목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지만, 그 인물과의 갈등에서 내가 제거할 수 있는 (또는 바꿀 수 있는) 요소를 확인하는 것은 한 번 더 생각이 필요하다. 우리가 죽일 수 있는 대상을 정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우선 죽일 수 없는 대상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직장에서 죽일 수 없는 첫 번째 대표적인 대상(요소)은 본인이 속한 ‘조직의 근본적 환경’이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에는 조직의 규모, 성장, 급여 수준, 조직문화 등이 포함된다. 물론 이런 요소들도 개인의 노력에서 출발하여 언젠가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루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조직은 거시적 사회· 경제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이에 따라 직장의 환경이나 조건도 달라지게 된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문화는 장기간에 걸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의 수장조차도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려운 영역이다. 한 마디로 “내가 이 회사를 바꿔보겠어”라는 야심 찬 목표는 의도는 좋지만 결말은 좋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아마도 그 정도 주인의식을 가진 (혹은 실제 주인인) 직장인이 느끼는 갈등은 다른 대다수의 직장인이 느끼는 고민과는 다를 것 같다.


다음으로 죽이기 어려운 대상은 ‘업무의 본질적 성격’이다. 이는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들은 바꾸기 어렵다는 뜻이다. 다른 장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물론 같은 일이라도 그것이 갖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직무 기술서에 명시된 일의 내용이나 조건 등은 어느 정도 범위 안에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50년 된 제조 기업의 공장에서 일하는 것과 신생 IT 스타트업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에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체계적이고 정확한 업무 수행을 요구하는 반면, 후자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업무 방식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서로 반대의 요소를 필요로 하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그 수준의 차이는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갈등이 있는 ‘직장 상사’가 문제인 것인지, 그 사람이 시키는 ‘일’ 자체가 문제인 것인지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업무가 가진 고유한 특성 때문에 본인이 힘든 것이라면, 사람이 바뀌어도 고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가끔은 절이 싫어서 중이 떠나는 게 최선인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죽일 수 없는 대표적인 대상은 ‘개인의 기질적 성향’이다. 여기서 개인에는 나를 괴롭게 하는 상대방은 물론이고, 고통을 받고 있는 본인도 포함된다. 상대방도 안 변하지만, 나도 잘 안 변한다는 뜻이다. 기질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타고난 기품과 성질”로 애초에 잘 바뀌는 것이 아니며, 바뀌더라도 장기간 노력이나 중요한 환경적 영향이 있어야 가능하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타고난 기질과 수십 년 간 쌓여 온 온 성격의 집합체를 상대하게 된 의미이다. 직장에서 우리는 대책 없이 일만 벌이는 사람, 아무 변화도 안 하려는 사람,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 본인한테 이득이 되는 것만 하려는 사람 등 다양한 부류의 인간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중 어떤 것은 정말 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사람에게 자꾸 새롭고 도전적인 과업만 주어진다면, 과업에 따라 사람이 변하는 정도보다는 받게 되는 스트레스 정도가 더 클 것이다. ‘내가 저 사람을 바꿔보겠어’라는 목표는 어느 측면에서는 상대방의 유전자를 바꿔보겠다는 불가능한 목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심지어 상대방이 바뀔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솔직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도 변하는 게 어렵지 않은가.


우리가 죽일 수 없는 대상들만 보면 무기력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을 가져도 좋다. 분명히 우리가 죽일 수 있는 대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에 언급된 부분들은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영역들이다.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준비를 하면 된다. 당신이 작은 손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걸 받아들이고 살아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손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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