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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an 01. 2024

나의 등대를 향하여

어두울 때, 더 빛나는 

칼 프레데릭 쇠렌센, 등대가 있는 바다 풍경, 1868


밤이 드리운 해안 풍경이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밤하늘에 뜬 달은 지나가는 구름에 살짝 숨었다. 돛을 활짝 편 배는 순풍에 밀려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은은한 물결이 이는 잔잔한 바다가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를 반기는 듯하다. 그리고 언덕 위 등대가 불을 밝히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칼 프레데릭 쇠렌센(Carl Frederik Sørensen, 1818~1879)의 작품이다. 그는 덴마크 출신 화가로 바다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아버지는 선장이자 상인이었고, 그는 어릴 때부터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자연스럽게 바다와 날씨에 큰 관심을 두게 되었고, 다양한 바다 모습을 그린 작품은 큰 인기를 얻었다. 나중에는 덴마크 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유명해졌고,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다 목적지에 닿으려면 바람과 물길을 잘 살펴야 한다. 또 거칠어졌다가 잠잠해지기를 반복하는 파도를 타고 넘어야 한다. 밝은 낮에 순풍까지 더해지면 순조로운 항해가 보장되지만, 언제 어떻게 날씨가 변할지 모른다. 출발할 때부터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출항하기 전에는 뱃길을 꼼꼼하게 조사하고, 경험자들의 조언도 듣는다. 지도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배도 확실하게 점검한다. 그리고 호기롭게 바다로 나간다. 점점 멀어져 가는 출항지를 보며 멋진 항해를 하고 돌아오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났으나 아직도 배는 망망대해를 건너고 있다. 그사이 큰 비바람도 한두 차례 지나갔고, 바람이 없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애도 먹었다.      


바다 한가운데 있으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차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이 배,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덜컥 겁이 난다. 그래도 믿을 건 나밖에 없다. 그리 오래 준비하고 단단히 확인했으니 계속 전진한다.     


그러다 아득히 멀리, 한 점 반짝이는 작은 빛이 보인다.

등대다!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마음만큼 빨리 그 빛에 가까워지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에 비유하면 참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오랜 시간 초중고 정규 교육을 받고, 대학에 대학원에서도 공부한다. 유학, 각종 자격증, 봉사활동 최대한 많은 것을 준비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이제 내가 돈을 벌어 내 인생을 뜻대로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부터 또 다른 시작이다. 망망대해로 들어선 것이나 다름이 없다. 세상은 내 기대와 다르고,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뭔가를 잘못 생각한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난 어디로 가야 하나.      


어두운 밤을 항해할 때는 등대를 따라가면 된다. 그리고 나의 등대로 가는 길은 나만이 알고 있다. 얼마나 오래 생각하고, 얼마나 오래 준비했던가. 내가 뱃머리를 돌리면 그곳이 나의 항로가 된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게 쉬워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다른 배가 지나간 자리는 이미 물결에 쓸려가고 없다.      


어두울수록 등대는 더 잘 보인다.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잘못 생각한 것들, 잘못 맺은 관계들이 선명해진다. 그때는 다시 등대로 가는 길을 점검할 기회가 된다.

안개가 등대를 가리면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는 편이 좋다. 또, 폭풍우가 몰아치는 순간에는 그 위기를 넘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안개나 비바람이 다 지나간 다음에 다시 등대의 빛을 따라잡을 수 있다.     


바다에 지름길은 없다. 곧장 앞으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다만, 길을 잃지 않으려면 등대가 있는 곳을 주시하고, 그 불빛을 따라가야 한다.     


어두울 때, 더욱 빛나는 나의 등대를 향해 계속 항해하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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